최초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개선사업 실시한 서울 성동구
“반지하 주택, 장기적으로 퇴출·단기적으로 안전 확보”
정원오 성동구청장. 성동구청 제공
서울시에 사는 50가구 가운데 3가구(24만5194가구)가 반지하 주택에 산다.
(2024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재해에 취약한 반지하 주택에 수해, 화재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정부와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퇴출’ ‘일몰’ ‘멸실’ 계획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계획마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고, 반지하 가구 수는 줄지 않는다.
40만 가구에 육박하는 거주자들을 다른 주택으로 옮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당장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고 계속 살아야 하는걸까?
서울 성동구는 전국에서 반지하 주택에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자치구다.
2022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반지하 주택의 현황을 전수조사한 뒤, 반지하 주택을 ‘위험 거처’로 정의하고 모두 방문해 위험도를 조사했다.
성동구를 시작으로 2023년 서울시, 2024년 전국으로 전수조사가 실시됐다.
성동구는 한 발 더 나아가 반지하 주택 개선 사업을 실시해, 수해, 화재, 낙상 등의 위험 요소를 없애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월세 현금지원만으로는 위험한 집의 시장가격만 오를 수 있다”며 “안전이 확보된 집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은 정 구청장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왜 반지하 주택에 주목했는지 들어봤다.
ㅡ구청장이 특히 반지하 주택 등 ‘위험 거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서울의 반지하는 기후·건축·복지 등 구조가 맞물린 복합적 문제다.
아울러 점점 더 더워지고 더 예측하기 어렵게 단시간 쏟아지는 폭우 등 이상 기상현상에 대비하여 현장의 최전선은 지방정부인 것처럼 주거는 재난관리의 최전선이라는 인식이 형성된 것이 출발점이었다.
”
ㅡ서울시와 정부가 일종의 ‘반지하 멸실'을 추진하고 있는데, 성동구는 기축 반지하의 거주 환경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방향이 퇴출이라면, 단기적 목표는 안전 확보다.
이 두 가지는 상충하지 않는다.
다만 정책의 단계와 순서가 다를 뿐이다.
2022년 당시 서울에는 여전히 20만 가구가 넘는 반지하 세대가 있었다.
이들을 모두 지상으로 이주시킬 경우 전월세 급등, 저렴 주택의 멸실, 거주 연속성 붕괴 등 부작용이 동시에 나타날 위험이 컸다.
이상적 시나리오는 정책 현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동구는 ‘지금 사는 사람이 오늘 밤 더 안전하게 자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었다.
공간을 없애기보다, 그 공간이 갖는 위험의 특수성을 제거하는 접근이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고 판단했다.
자연재난이 인재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는 것이 행정의 첫 번째 책무였다.
”
ㅡ성동구가 2022년 처음으로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를 한 뒤, 2023년 서울, 2024년 전국으로 전수조사가 확대됐다.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다른 자치구나 서울시,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상황을 기대했나?
“2022년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반지하 일몰제를 한다고 해서 그에 따랐을 뿐이다.
반지하를 모두 없앤다고 하면 현황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기에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시도했다.
‘최초’나 ‘확산'을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사 후에 적절한 정책수단과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더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등급제 조사를 병행했다.
이 조사는 단순 통계가 아니라, 위험 단계별로 어떤 접근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지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장 위험한 곳부터 먼저 개선한다면, 다음 해 폭우가 닥쳐도 최소한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엔 ‘조사 후 실효성 없는 통계로 끝나면 어떡하나’ 하는 책임감이 훨씬 컸다.
”
2025년 10월28일 오전 서울 성동구 송정동 반지하 주택에 안전망이 설치돼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ㅡ반지하 주택 세입자의 경우, ‘사는 동안 안전하고 편하게 해주는 건 감사하지만, 결국 집주인만 덕을 보는 게 아니냐, 세입자에게 월세 지원 등의 지원도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표하는 분도 있었다.
“성동구의 사업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균형을 전제로 한다.
소유자는 자산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세입자는 임대료 상승을 걱정한다.
성동구는 이런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집수리 지원’과 ‘임대료 5년 동결’을 결합했다.
보다 더 질적으로 나아진 주택에서 같은 임대료로 거주하면 간접적인 월세 지원 효과가 발생한다.
월세 현금지원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위험한 집에 현금을 투입하면 시장가격만 오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주택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월세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실제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 대학생 전세임대 지원 이후 주변 대학가 원룸 전세 상한가는 매해 해당연도 LH 대학생 전세임대 지원 금액과 같아진다.
그러나 그 인상된 가격만큼 주거의 질이 올랐다고 확신할 수 없다.
바우처라는 정책이 시장에서 사용될 때 일정 정도 시장 가격의 인상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위험요소가 노출된 주거에 계속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결국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두 가지가 모두 함께 갖춰져야 주거안정이 이뤄진다.
뉴욕의 주거 바우처처럼, 일정 기준 이상(예: B등급 이상)의 주택에만 지원이 가능한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대안을 검토하기 위해서라도 주거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하는 과제가 선행되어야 하기에 추진해왔다.
”
ㅡ2022년 폭우로 인한 반지하 침수 참사로 반지하 주택의 안전 문제가 대두했는데, 이밖에도 주거환경에 치명적인 위험 요소가 어떤 게 있다고 보나? 그래서 주거환경개선 사업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위험거처 개선사업을 하며 등급이 낮을수록 고령자 비중이 높다는 걸 확인했다.
어르신들에게 반지하는 더 젊은 분들에 비해서 더 위험한 곳이 된다.
근력이 약해지면 낙상에 취약하다.
반지하 주택은 진입 계단이 많고, 오래된 다세대주택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오래된 집일수록 문턱이 높지 않나. 그래서 성동구는 어르신 대상 ‘낙상 방지 홈케어 사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신청 후 낙상 위험요소를 분석해 고쳐드리고 이후 분기별로 주택관리서비스를 제공하며, 안부 확인과 함께 전구 교체·방충망 교체 등 간편 수리를 병행한다.
이 사업은 영국의 핸디 퍼슨(Handy Person)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지방정부와 비영리기관이 협력해 소규모 집수리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성동은 이미 2018년부터 ‘착착성동 생활민원기동대’를 운영해온 경험이 있어 영국의 Handy Person 제도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성동구는 낙상 방지를 초고령사회에 맞춰 필수적인 주거안전설비로 바라보고 적극적인 지원 사업을 통해 2023년부터 현재까지 1435명을 지원했다.
”
영국의 핸디 퍼슨 제도는 고령자나 취약 계층, 장애인 등 집안에서 간단한 일을 직접 하기 어려운 사람이 일상 생활에 필수적인 작은 수리나 조립, 안전 보완 작업 등 실질적 도움을 받도록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지원 제도다.
ㅡ반지하 주택환경개선 사업이 근시안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위험거처'인 반지하 주택은 결국 장기적으로 퇴출해야 하는데 개선을 하면 비용이 발생하고, 퇴출이 늦춰진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단 하나의 정책으로 완전한 해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회는 여러 현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인 체계이기 때문에 제도 간 상보성이 중요하다.
반지하 집수리 정책만으로 주거안전과 주거복지를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공공임대주택 확충, 저층주거지 정비, 원주민 재정착 보장 같은 구조적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반지하 등 위험거처 개선사업은 주거안전과 주거복지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여러 제도 중 하나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단기간에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부터 지금까지 성동구청장으로서의 목표는 반지하의 단순한 퇴출이 아니라, 더 안전한 집을 더 빠르고 많이 만드는 것이었다.
반지하를 없애는 일보다 반지하에 존재하는 위험 요소를 줄이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위험한 거처를 방치해 사람이 살지 못하게 두는 것보다,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일정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주택공급의 효과까지 낼 수 있다고 본다.
”
2025년 10월28일 오전 서울 성동구 송정동 반지하 집에 사는 서윤희씨가 화장실에 설치된 손잡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불을 끄자 방안이 칠흑처럼 어둡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ㅡ반지하 주택 개선 정책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이주에 초점을 맞춘 ‘퇴출'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보나? 반지하 주택 거주 가구 감소가 미미한 수준이고, 2025년에도 전국에 40만 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왜 쉽게 줄지 않는다고 보나? 또 퇴출을 위한 사업 계획이나 아이디어가 있는지 궁금하다.
“‘퇴출’보다는 ‘전환’이라는 표현을 제안하고 싶다.
국가가 모든 주택을 일률적으로 공급할 수 없기에 어느 사회든 주택은 위계화될 수 있다.
고급 주택이 있는 것처럼 그렇지 않은 주택도 있는 것이니까. 그럼 중요한 건 이 사회에서 가장 최저 수준의 주택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다.
위험 거처 기준은 그것을 현행 최저주거기준이 하지를 못하니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시도였고 그로 인한 실태조사는 이 최저 수준을 한 단계 우리 성동이라는 지역사회부터 업그레이드해보자는 것이었다.
일부러 위험 거처 기준이라고 한 건 위험한 거처를 만드는 위험요소에 집중하여 궁극적으로 안전 거처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지하 퇴출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한 집을 더 빨리 더 많이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내 고민이다.
반지하, 옥탑방이 없으면 모든 우리나라의 거처가 안전한 거처라고 불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형식으로든 저렴주택을 찾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 생길 것이다.
고시원도 본래 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정말 독서실 같은 곳이었는데 그곳이 점차 하나의 주거형태로 굳어진 것 아니겠나. 그래서 어떤 특정한 물리적 건축 유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건축 유형이 나오게 된 배경과 그 건축 유형이 위험한 이유를 찾고 그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게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본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위험거처 기준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주거환경개선을 통해 위험한 집을 없애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최저주거기준이 보장되는 주택에 거주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에서 위험한 경우 주택에 대해서 안전 설비 설치 의무 및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법제화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위험 거처 기준의 제도화와 고도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성동구의 경험은 이런 접근이 신현상 한양대 교수(경영학), 이지선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가 밝혀주신 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
ㅡ성동구 성수동 등 상권이 형성돼 땅값이 오르고 있는 지역에도 반지하 주택이 몰려 있다.
반지하 주택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 기존에 거주하던 반지하 주택 거주 취약계층에게 부담되지 않을까?
“상가 임대차시장과 주택 임대차시장은 구조적으로 다르지만 주택이 상가로 전환되면 주택 재고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는다.
한편으로 이는 반지하 퇴출의 또 다른 형태일 수 있지만 저렴한 주택이 멸실될 수 있다는 위험 또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정책의 초점은 ‘공간 유지’보다 ‘주거 품질’에 있다.
임차인이건 소유자건 위험한 주택에 거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우리 사회가 합의했다고 본다.
그것이 최저주거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위험 거처 주거 기준은 그 기준을 보다 세분화하고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도구이고 이것을 토대로 등급을 구분할 수 있으며 그 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요소를 제거하면 안전한 거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안전한 거처를 지원하는 것과 더불어 해당 거처에 월세 바우처나 주거급여를 연계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최근 전세에서 월세로의 구조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외 대도시에서 시행되는 월세 지원 모델이 한국에서도 점차 도입될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안전이 확보된 집에 사는 것’이 먼저라는 점이다.
그 토대 위에서 추가적인 경제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
“반지하, 안전한 집 만드는 게 우선” 정원오 성동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