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의 웰빙 풍수] 태어난 곳 기운이 작품에도 영향… 풍수사상 연상케 하는 도시 건축론 남겨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안키아노 마을에 남아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생가. 위키피디아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은 서양 르네상스 정신을 대표하는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걸작이다.
감상자에게 생동감과 역동성, 그리고 신비로움을 안겨주는 두 작품 속 기운을 동양 회화 이론에서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부른다.
작가정신 혹은 예술혼 등으로 표현되는 작가의 기운은 ‘영기(靈氣)’라고도 한다.
중국의 미술 전문가 딩시위안(丁羲元)은 저서 ‘예술풍수’에서 “영기가 있는 그림은 보는 이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말했다.
봉긋한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고향 마을
묘하게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모나리자’에서 배어나는 영기는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있는 ‘최후의 만찬’의 영기와 똑같다.
동양의 목·화·토·금·수 오행론으로 표현하면 생명력을 상징하는 ‘목(木)의 기’와 작가의 예술적 기량을 상징하는 ‘화(火)의 기’가 절묘하게 배합된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빈치 영기의 원천은 무엇일까. 풍수에서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장소로 선조가 묻힌 음택(무덤)과 당사자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양택(생가)을 주로 꼽는다.
음택 기운이 가문 후손 전체에게 두루 미친다면, 양택은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 본인에게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본다.
따라서 개인의 타고난 역량을 살필 때는 생가의 비중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출산이 보통 산부인과에서 이뤄지는 환경에서는 아이가 유년 시절을 보낸 아파트나 단독주택이 바로 생가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다빈치는 1452년 4월 15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빈치(Vinci) 인근의 안키아노(Anchiano)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언덕배기 위, 옛 농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생가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봉긋한 산봉우리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 풍수적으로 대단한 명당 혈(穴)이 형성돼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다빈치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터의 기운을 온전히 누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GETTYIMAGES
이 터의 기운은 다빈치 그림에서 느껴지는 생기(生氣)와도 매우 유사했다.
풍수에는 동기감응(同氣感應), 즉 같은 기운은 서로 반응한다는 원리가 있다.
특정한 터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사람과 그가 탄생시킨 예술 작품에서는 같은 기운이 표출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명당 기운을 받고 태어나 일세를 풍미한 다빈치는 동양 풍수론을 연상케 하는 기록을 적잖게 남겼다.
그가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그림과 메모로 정리해놓은 ‘코덱스(수기 노트)’에는 “산맥은 대지의 뼈고, 계곡은 근육이며, 땅의 혈관으로 흐르는 물은 피”라는 글이 남아 있다.
자연을 이처럼 인체에 비유해 설명하는 방식은 동양 풍수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중국 송나라 때 저작물인 ‘명산론(明山論)’을 보면 “흙은 살이고 돌은 골격이며 물은 피이고 나무는 모발”이라는 대목이 있다.
다빈치는 건축에 대해서도 상당히 풍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그는 “건축물은 바람의 방향과 물의 흐름을 존중하도록 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풍수의 핵심 주제인 바람길과 물길을 각각 가리킨 것이다.
다빈치, 도시 설계 시 자연과의 조화 강조
다빈치는 말년에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요청을 받아 프랑스 수도 이전 프로젝트에 관여한 적이 있다.
1515년부터 프랑스 왕실의 여름 별장인 클로뤼세성에 머물면서 프랑스 중부 로모랑탱에 이상적인 계획도시를 조성하는 일을 구상한 것이다.
다빈치가 건강 악화로 4년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이 프로젝트는 완성되지 못했지만, 다빈치가 남긴 노트에는 동양 풍수사상과 개념이 유사한 도시 건축론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는 도시를 설계하면서 하천, 언덕, 녹지 등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매우 중시했다.
또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 유행의 배경에 열악한 위생이 있었다고 보고, 물을 오염시키지 않으면서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시스템 설계에 집중했다.
물길을 바꾸고 수위를 조절하는 운하, 공기와 물의 순환에 관여하는 풍차, 폐수처리시설 등을 두루 검토했다.
이러한 물에 대한 다빈치의 인식은 풍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풍수에서는 수관재(水管財)라고 해서 물을 건강뿐 아니라 재물과 풍요를 좌우하는 요소라고 본다.
수로와 하천 등은 도시의 번영과 생명력을 상징하기 때문에 물 흐름을 잘 다스리는 것이 도시의 성공에서 핵심이다.
다빈치가 말년을 보낸 프랑스 클로뤼세성 전경과 곳곳에 보존된 다빈치 흔적들. 안영배 제공
‘인걸지령’의 장소 클로뤼세성
필자는 최근 다빈치와 관련해 풍수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그가 말년을 보냈던 클로뤼세성을 방문했다.
이 성 내부에는 지금도 다빈치의 작업실과 침실이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 거장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성 정원에는 다빈치가 설계한 기계 장치와 발명품 등이 실물 크기 모형으로 전시돼 있기도 하다.
이 성은 특별한 인물은 빼어난 땅의 영기와 연결된다는 의미의 ‘인걸지령(人傑地靈)’을 보여주는 풍수 사례지라고 할 수 있다.
또 직선거리로 500여m 떨어진 앙부아즈성과 지하 통로로 연결돼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다빈치의 후원자였던 프랑수아 1세와 그의 누이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가 이 지하 통로를 통해 다빈치를 자주 방문했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진다.
흥미롭게도 클로뤼세성과 앙부아즈성은 터 기운 또한 쌍둥이처럼 닮았다.
터 기운을 읽을 줄 아는 건축가들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배치했을 개연성도 크다.
자연에 대한 다빈치의 관점이나 프랑스의 명당 혈에 세워진 건축물들을 보면서 풍수는 동서양을 막론한 세계 공통의 자연지리학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 거장’ 다빈치 생가는 이탈리아 명당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