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렬의 화학 생활] 농작물 잘 자라게 하고, 피부질환도 호전
※멀고도 어려운 단어 ‘화학’. 그러나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에는 화학이 크고 작은 마법을 부리고 있다.
이광렬 교수가 간단한 화학 상식으로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법, 안전·산업에 얽힌 화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유 자동차의 질소산화물(NO2)이 공기 중에 그대로 배출되면 자외선과 만나 오존(O3)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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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사용 연료를 기준으로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휘발유 자동차와 경유 자동차다.
이때 온도 영향을 적게 받는 휘발유차와 달리 경유차는 엔진 내부 온도가 일정 수준이 돼야 연료가 점화되고 시동이 걸린다.
경유를 연소할 때 엔진 내부 온도는 2000~2500℃에 이른다.
질소산화물+자외선=오존 생성
자동차 엔진 속 연료를 연소하려면 외부에서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
공기 중에는 질소 78%, 산소 21%가량이 포함돼 있다.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휘발유차 엔진 내부에서는 이 둘이 서로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엔진 내부가 뜨거운 경유차에서는 질소와 산소가 반응해 질소산화물(NO2)을 만들어낸다.
이후 질소산화물이 공기 중에 배출돼 자외선을 만나면 NO 화합물과 산소 홀로 있는 산소라디칼(O)을 생성한다.
이 산소 원자는 아주 외로워서 주변 산소 분자(O2)를 발견하면 들러붙어 O3 화합물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오존이다.
오존은 호흡기 건강을 해치는 무서운 분자다.
자외선이 강한 여름날 오존 경보가 발효된 것을 본 적 있을 테다.
야외 활동을 자제해 호흡기 건강을 지키라는 의미다.
그래서 경유차는 반드시 촉매변환기를 설치해 배기가스 안에 있는 질소산화물을 안전한 질소 분자로 변환해야 한다.
다만, 촉매변환기는 팔라듐, 로듐 같은 아주 비싼 귀금속을 촉매로 사용하다 보니 출력이 크고 배기가스 양이 많은 트럭의 경우 촉매변환기를 설치하는 게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럴 때 우리는 요소수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요소가 녹아 있는 물이다.
트럭에 요소수를 사용하면 배출되는 질소산화물과 요소가 반응해 질소산화물이 안전한 질소와 물로 바뀐다.
즉 요소는 공기 질을 안전하게 유지해주는 고마운 화합물인 것이다.
요소는 경유차에만 유용한 게 아니다.
대규모 농업을 가능케 하는 것도 요소다.
농작물이 자라려면 반드시 질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식물은 공기 중 질소를 그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콩과 식물 뿌리에는 공기 중 질소를 붙잡아 자신과 주변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형태(질소화합물)로 바꾸는 뿌리혹박테리아 미생물이 살지만, 대량 기계식 농업에서는 크기, 성장 속도, 수확 시기 등 차이 때문에 콩과 식물을 다른 농작물과 함께 기를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게 바로 요소 비료다.
비료 속 요소가 물과 반응해 질소화합물로 바뀌면 식물은 이를 활용해 단백질, 아미노산 등 중요한 화합물을 만들어서 생장할 수 있다.
요소는 특정 어류 생존에도 큰 역할을 한다.
요소는 상어나 가오리 같은 연골어류의 피부에서 많이 발견된다.
연골어류는 사람처럼 소변을 통해 요소를 배출하는 게 아니라 피부로 몸속 요소를 내보내는데, 이는 바다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한 결과다.
바닷물은 소금기가 아주 많다.
연골어류의 몸속 염분 농도보다 바닷물 속 염분 농도가 훨씬 높다.
여기에 삼투압 원리가 적용되면 연골어류의 피부 수분은 바닷물 쪽으로 다 빠져나가야 한다.
거칠고 쪼글쪼글한 피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어나 가오리 피부가 촉촉한 건 피부 속 요소가 물 분자를 붙잡아 수분이 유지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비료·보습제로도 쓰이는 요소
여기까지 읽고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그럼 요소를 보습제로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잘 짚었다.
요소 성분이 포함된 로션은 아토피, 건선처럼 피부 표면이 거칠어지는 피부질환을 완화하는 데 쓰인다.
낮은 농도의 요소를 함유한 일반 피부 보습제도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만일 피부가 지나치게 건조해 피부과를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다음 방문 때 의사와 요소 성분의 치료제 사용을 논의해봐도 좋겠다.
요소는 참 재주가 많다.
경유차의 유해 배출가스를 정화하고,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며, 피부질환도 호전되게 한다.
참으로 ‘요소 섹시’(You’re so sexy)한 녀석이 아닌가.
이광렬 교수는…
KAIST 화학과 학사, 일리노이 주립대 화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게으른 자를 위한 아찔한 화학책’ ‘게으른 자를 위한 수상한 화학책’ ‘초등일타과학’ 등이 있다.
경유차 유해 배출가스 잡는 다재다능한 ‘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