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베이글 가격 44% 상승… 공정위 밀가루·설탕 업체 조사
빵집 진열대에 다양한 빵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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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을 연 지 9개월가량 됐다.
반경 500m 내에 프랜차이즈 빵집을 포함해 빵집이 10개나 있다.
이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
서울 한 대단지 아파트 상가에서 빵집을 하는 A 씨가 10월 29일 기자에게 한 말이다.
빵값이 가파르게 오르며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지만 정작 빵집 사장들은 “월급으로 300만 원도 못 가져간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1%, 가공식품 물가는 4.2% 상승했다.
이때 빵값은 6.5%나 뛰었다.
가공식품 중에서도 특히 빵값이 크게 오른 것이다.
인기 있는 개별 품목으로 보면 오름세는 더 분명하다.
한국신용데이터(KDC)의 ‘베이커리 시장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6월~2025년 6월 3년간 베이글 가격은 44%, 샌드위치는 32%, 소금빵은 30% 상승했다.
그럼에도 올해 6월 기준 베이커리·제과점 업종의 평균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60% 감소했다.
영업이익률은 10% 적자였다.
빵 소비량 일본의 3분의 1, 빵집 수는 2배
빵플레이션의 수혜자가 빵집 사장이 아니라면 빵값 상승의 주범은 누구일까. 정부는 시장 독점적 지위를 가진 밀가루·설탕 등 원재료 업체들의 담합을 그 원인으로 정조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CJ제일제당,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등 주요 밀가루 업체 7곳을 현장 조사했다.
이 업체들이 출고가 등을 짬짜미했는지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공정위는 앞서 CJ제일제당, 대한제당, 삼양사 등 설탕 3사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조사를 벌였다.
조만간 이들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심사 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가 나간다는 건 (조사에서) 혐의점을 발견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밀가루·설탕 업체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이후 국제 밀·원당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B2B(기업 간 거래) 공급가가 계속 변동되고 있다”면서 “계약 조건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급가는 원재료 시세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빵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재료비 말고도 많다”며 “빵 가격에서 밀가루의 비중은 평균 10% 정도라 밀가루 공급가를 내려도 빵값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밀가루와 설탕을 대량으로 구매해 빵 가게에 소매로 판매하는 유통사들 설명은 다르다.
국내 대형 밀가루·설탕 업체와 거래하고 있다는 한 유통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국제 밀·원당 가격이 계속 내리고 있지만 밀가루·설탕 업체들은 ‘운임비가 올랐다’ ‘환율이 올랐다’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며 밀가루와 설탕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면서 “그나마 우리는 ‘양떼기’(대량을 뜻하는 은어)로 거래해 포대당 500~1000원씩 할인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빵값에 재료비만 반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밀가루·설탕 업체들이 원재료 가격 하락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니 빵값 상승을 가중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빵 고급화’ 트렌드에 비싸도 마진 적어
물론 빵값 상승에는 재료비 상승 외에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빵 소비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빵집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질병관리청과 일본 농림수산성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빵 소비량은 인당 7.1kg(2020년 기준), 일본은 20kg 이상(2012~2022년 평균)으로 일본이 3배가량 많다(그래프 참조). 그런데 전국 빵집 개수는 한국이 2만8070개(2022년 기준), 일본이 1만2084개(2025년 기준)로 한국이 2배 이상 웃돈다.
특히 한국 빵집 가운데 9020개는 프랜차이즈 점포다.
전체 빵집 매출액에서 프랜차이즈의 비중은 49.8%(3조7669억 원)로 절반 가까운 수준이다.
프랜차이즈 중심의 점포 수 증가 및 그들의 높은 시장점유율로 업계에 ‘과당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빵집이 나머지 시장을 나눠서 차지해야 하는 만큼, 매년 높아지는 인건비와 임차료 등을 충당하려면 빵의 개당 판매가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빵집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전략으로 ‘고급화’를 택하고 있다.
떠오르는 디저트 시장에서 소비층을 잡으려면 고품질 재료로 좋은 빵을 선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재료비 자체가 높아 빵값이 비싸다고 빵집 사장에게 더 많은 마진이 남는 것은 아니다.
서울지하철 5호선 공덕역 인근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B 씨는 “수입산 버터를 써야 빵의 풍미가 좋아지기 때문에 수입산만 쓴다”며 “수입산 버터 가격은 지난해 5월보다 50%가량 상승한 상태”라고 말했다.
25㎏에 6만~7만 원 수준인 프랑스 유기농 밀가루만 쓴다는 A 씨도 “다른 곳처럼 싼 밀가루를 섞어 쓰고 수입산 버터 대신 마가린이나 쇼트닝을 사용해 빵값을 낮출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빵의 질이 떨어진다”며 “조금 비싸도 맛있는 빵을 세심하게 만드는 걸 소비자들이 매력적으로 느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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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플레이션’이라는데 빵집 사장들은 “이윤 줄었다”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