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경제와 투자] 미국 증시 강세에 따른 국내 투자자의 해외투자 붐이 원인
10월 29일 게시된 코스피와 달러/원 환율. 뉴시스
최근 한국 증시에 매우 특이한 현상이 출현했다.
한국 증시가 가파른 랠리를 이어가는 가운데 환율도 함께 상승한 것이다.
‘그래프1’은2021년 이후 코스피와 달러/원 환율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최근 들어 “주가와 환율이 반대로 움직인다”는 상식이 깨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달러/원 환율이 1400원대 중반까지 치솟은 가운데 코스피도 10월 27일 4000 선을 돌파했다.
과거 환율과 주가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은 외국인투자자의 순매수 때문이었다.
외국인은 올해 9월 말 기준 한국 주식의 28.7%를 쥐고 있는 사실상 대주주로, 이들의 매매는 주식시장은 물론 외환시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2025년 기준 대기업 집단의 내부지분율(전체 발행 주식 가운데 기업의 소유주나 법인, 특수관계인 등이 보유한 주식 비율)이 62.4%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대기업의 유통 주식은 대부분 외국인이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내부지분은 상장이나 기업 인수합병, 상속 같은 특별한 조건이 아닌 한 시장에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상장기업 모두가 대기업 집단에 속하지는 않기에 일부 기업은 외국인투자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대기업이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 유가증권시장의 흐름은 외국인이 주도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올해 5월부터9월까지 외국인투자자들이 12조6000억 원에 이르는 주식을 매수하면서 강력한 증시 랠리가 출현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안전자산 가능성 부각된 원화 그렇다면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외국인 매수세가 단기간 이뤄진 가운데 환율은 왜 상승한 것일까. 가장 유력한 가설은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투자 붐이 유발한 환율 상승 압력 때문이다.
한국 대외 금융자산은 2016년 1조 달러(약 1433조2000억 원) 남짓이었지만 올해 2분기에는 2조7000억 달러(약 3869조60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해외투자 붐이 일어난 원인은 2가지다.
첫 번째는 미국 증시의 강력한 랠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넘는 기간에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인 데다, 2018년과 2020년, 2022년 주가 폭락 사태 이후 금방 회복된 점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쌓았다.
특히 2022년 말 챗GPT 출시 이후 강력한 인공지능(AI) 붐이 일어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 원인은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이다.
2022년부터 일어난 강력한 인플레이션에 맞서 한국은행은 정책금리를 3.5%까지 인상했지만 미국 정책금리 5.5%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었다.
한국은 금리인상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위기가 발생하며 은행 연체율이 곧장 상승했다.
게다가 당시 미분양 아파트가 계속 증가해 금융위기 가능성이 부각되는 상황이라 정책금리를 미국 수준으로 올리기는 힘들었다.
반면 미국 경제는 5.5% 고금리에도 연 2% 넘는 고성장을 지속했고 지금도 한국보다 더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더 높은 수익을 제공하는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무척이나 당연하다.
막대한 대외 순자산을 보유하고 매년 수백억, 아니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배당 및 이자를 받는 이른바 채권국이 된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다만 채권국가로서 위상이 점점 강화될 경우 이른바 ‘안전자산의 저주’를 겪을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과 대만, 독일 같은 채권국가가 2000년 닷컴버블 붕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랬듯이, 위기 상황이 생기면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자산가격 폭락 시 해외투자 수익률 악화 ‘그래프2’는 미국달러에 대한 대만달러의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로 나스닥 시장이 붕괴될 때 대만달러 역시 급격한 강세를 보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해외로 나갔던 돈이 금융위기 때 자국으로 복귀하는 흐름을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위기가 발생해 경제가 망가지는 순간, 통화가치 상승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해외 수요가 얼어붙고 수출이 부진할 때는 통화가치라도 떨어뜨려야 하는데, 오히려 환율이 반대로 움직여 기업과 가계가 겪는 고통이 몇 배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글로벌 분산투자자 입장에서도 수익을 관리하기 힘들 수 있다.
자산가격이 폭락할 때 통화가치가 상승해 해외투자 수익률이 급격히 악화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원화가 ‘안전자산의 저주’에 빠져들지는 불명확하다.
해외 주식투자 붐이 언제 약화될 지 알 수 없는 데다, 과도한 가계부채와 지정학적 위험 등 한국 경제가 가진 취약성으로 원화가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원화가 안전자산으로 부각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출현했다는 점을 인지하고 투자전략을 점검할 필요는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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