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 선 응원봉들] 룬데인수도방위대연합 기수, 린덴비연
"8세계 서울에서 9세계 룬데인에게,
우리는 성공했어, 너희도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윤석열이 파면된 후 마무리집회에서 린덴비연(만 20세, 여성, 학생, 서울 강남)은 롤링페이퍼에 이렇게 썼다.
그가 좋아하는 웹소설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은 8세계 서울에 살던 편집자 김정진이 9세계의 클레이오의 몸에 빙의해 수도 룬데인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역경을 겪는 이야기다.
그중에는 폐허가 된 서울도 나온다.
8세계를 살아가는 우리가 먼저 대한민국을 살려야 미래에 클레이오가 태어나 살아갈 수 있다.
"그동안 내가 읽은 수많은 웹소설, 웹툰, 드라마 들을 보면 어떤 고난과 압박이 있어도 주인공은 다시 일어나 맞서 싸우고 승리를 쟁취하거든요.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우리가 좀 더 나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파면은 되었지만 여전히 내란 수괴가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광장의 시민들은 모르고 살아가도 될 대통령 권한대행의 서열을 절로 알게 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아직 '우리는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전히 내란당은 대선에 후보를 낼 자격이 있는 것처럼 굴고 그마저 파열음을 내며 진흙탕싸움을 하고 있다.
"이재명이라는 사람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계엄이 이재명을 스타로 만들어주던데요. 대통령 이름은 유난히 뉴스에 많이 나와서 알았죠. 일을 참 못하나 보다 생각했어요. 학생이 그린 윤석열차라는 만평이 문제가 되는 걸 보면서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안 맞는 사람인 것 같았어요."
린덴비연은 세월호를 통해 박근혜를 알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세월호 때는 sns도 하지 않은 어린이여서 도망간 선장이 나쁘다, 정도만 기억한다.
그 후로 수학여행을 갈 때마다 약간의 여파가 있기는 했지만.
이태원참사 때는 sns로 정제되지 않은 영상을 그대로 봤다.
그때 만일 바로 달려갔다면 심폐소생술을 해서 몇 명이라도 살리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생각이고 당시만 해도 뉴스를 알티하면서 안타까워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세월호보다는 한 발짝 나갔지만 여전히 정권의 문제로 넘어가지는 못했다.
12월 3일 내란이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능이 끝나고 좋아하는 웹소설을 보며 놀고 있는데 오밤중에 엑스(트위터)에 계엄이라는 단어가 떴다.
국회로 와달라는 이재명의 라이브를 보다가 국회 라이브도 보았다.
많이 놀라기는 했지만, 계엄 해지가 되었으니 끝난 줄 알았다.
"제정신이 아니야, 라고 생각했지 자칫하면 죽을 수 있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위험성도 잘 몰랐다.
서울 한가운데 장갑차가 서있고 국회에 군인이 들어와 있는 걸 보면서 가스레인지 옆에 신발이 놓인 것 같이 생경해 보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트위터를 통해 그것이 내란이고 처벌을 해야 하는 중대한 사태였음을 깨달았다.
갑자기 나는 의문이 들었다.
트위터가 덕질하기에 좋은 도구이고 가장 빠른 소식통이기는 하지만, 알고리즘으로 뉴스를 접하면 한쪽으로 편향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세뇌되거나 선동당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모든 덕후가 똑같은 말을 했거든요. 원래 덕후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싸워요. 같은 장르 내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설정이랑 안 맞는다고 싸우고 다른 장르와도 싸우고, 동북공정 같은 논란이 있을 때도 꼬투리 잡아서 싸워요. 근데 12월 3일 이후로는 싸움이 없어졌어요. 트위터가 정치판이 되었어요. 오죽하면 덕후 둘이서 머리채를 잡고 있다가 그대로 투쟁장으로 가는 밈이 생겼겠어요."
나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수가 다 옳은 건 아니지만, 수십 갈래로 갈라져 다양성의 끝판을 보여주는 덕후들이 모두 같은 쪽을 가리킨다면 그건 믿을 만하다.
국가정보원도 모든 덕후들을 선동할 능력은 없으니까.
계속 탄핵 관련 소식을 챙겨보던 그는 '북태평양 해저기지 뜨개연합'이라는 깃발 사진을 발견했다.
<어두운 바다에 등불이 되어>라는 웹소설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문구였다.
'나도 우리 장르 깃발을 세우고 싶다!' 그는 처음으로 광장에 나가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을 느꼈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아무 말 깃발의 유래를 모르지 않았다.
박근혜 탄핵 시위 때 배후가 누구냐고 묻자 '내 배후는 고양이다'라는 깃발을 들면서 아무 말 깃발이 시작되었다.
고양이에 이어 온갖 덕질 장르의 깃발이 잇따랐기 때문에 덕후라면 다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 막 수능을 끝내고 집에서 뒹굴거리던 그는 나갈 명분이 없었다.
부모님은 보수적인 분들이라 집회에 대해서는 말도 꺼낼 수 없고 친구 핑계를 대기에도 부모님이 뻔히 아는 관계여서 쉽지 않았다.
딱 하루, 수능 끝났으니 트친들과 놀겠다며 백화점에 가는 척, 여의도 집회로 향했다.
깃발은 미리 준비해 두었다.
'웹소설독자연맹.' 웹소설을 좋아하고 웹소설 독자니까 웹소설독자연맹이 적당할 것 같았다.
"깃발도 작고 깃대도 짧아서 너무 힘들었어요. 광장이 많이 바뀌고 젊어지면서 접근성이 좋아진 것 같아요. 트친들도 한번 가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가 두 번 가고 세 번 가고 계속 참여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 후로는 마땅한 변명거리도 없고 부모님과의 여행 일정도 잡혀있어서 한동안 나오지 못했다.
대신 트위터로 계속 집회 상황을 지켜보았고, 남태령과 한강진을 보면서 차곡차곡 분노가 쌓였다.
정치에 대한 시야도 조금씩 트였다.
드디어 개학을 하고 공식적으로 외출이 가능해지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광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깃발도 새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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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덴비연은 깃발은 나를 대표하는 나, 라고 했다.
ⓒ 영원한기록자
'내게 있던 것? 오직 혁명이지.
룬데인수도방위대연합'
등장인물의 독백인 '내게 있던 것? 오직 사랑이지'를 패러디했다.
마침 광장에 나가고 싶어하던 트친들은 작중에 혁명을 꿈꾸는 캐릭터도 등장하니 시국에 어울린다며 깃발을 환영했다.
클레이오가 지키는 수도 이름이 룬데인이고 실제로 수도방위대에서 활약하기 때문에 그와 트친들은 룬데인수도방위대연합에 속하게 되었다.
기수존이 따로 마련되기까지는 그의 깃발 아래 트친들이 대여섯 명씩 꾸준히 있었고, 많을 때는 열다섯 명이 넘기도 했다.
"세월호 기억식 때는 쌍기를 들었어요. '웹소설독자연맹'과 '룬데인수도방위대연합'을 깃대에 이어 붙였죠. 그때는 이미 팔 힘도 좋아지고 노하우도 생겨서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하하."
이후 룬데인수도방위대연합 깃발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되었다.
깃발이 촉발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광장에 나오는 그의 마음이 가벼운 건 아니다.
부모의 눈을 피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고, 신입생이 되어 자유를 누릴 시간에 거리로 나온다는 건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그는 윤석열이 탈옥(!)한 뒤 매일 집회가 열렸을 때 수업이 끝나는 대로 무조건 광장에 나왔고, 남태령 2차 때도 달려갔고 장애인 철폐의 날에도 현장에 있었다.
남태령에서는 극우들이 많아서 화장실이나 전철에 오갈 때 여럿이 같이 움직이는 '이동서비스'를 동지들과 함께 만들어 운영했다.
그때 극우들의 날것의 반응을 처음 눈으로 확인했다.
여전히 지방으로 간다거나 1박을 하는 투쟁장에는 참석하기 어려웠다.
가끔 엠티나 오리엔테이션 등을 핑계 대기도 했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때마다 그는 라이브를 켜놓고 연대했다.
울산에서 있었던 이수기업 문화제 때는 다치고 잡혀간 동지들을 라이브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너무 괴로웠다.
'연대투쟁가'를 부르며 '너희에겐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집단 경찰과 군대 있지만 우리에겐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함께하는 동지가 있다'라는 대목에 진심을 담아 분노했다.
"동지들이 생긴 뒤로는 내가 잡혀가는 것보다 동지들이 잡혀가서 고통받는 게 더 힘들어졌어요. 나만 집에서 따뜻한 이불 덮고 뭐든 꺼내 먹을 수 있는 냉장고가 있는 곳에서 호의호식할 수가 없어요. 실제로 몇몇 동지들은 내 본명을 알고 가족보다도 나에 대해 잘 아는 면이 있어요. 이제 그들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어요. 내가 없는 곳에서 나의 동지들이 폭력을 겪지 않게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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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투쟁템들
ⓒ 조용미
이전과 달리 경찰이 말벌동지들에게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공포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구시대에 고문실로 사용하던 시설이 잔존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잡혀가는 두려움보다 가족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잘못하면 아예 못 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들의 폭력을 멈추게 하려면 한 명이라도 더 광장에 나와 머릿수를 채워야 한다.
"기수나 활동가분들이랑 대화를 해보면 절대 가벼운 마음이 아니에요. 비장해요. 탄핵이 지연되면서 우리는 점점 비장해졌고요, 구사대와 마트노조 용역들이 칼을 휘두르는 걸 보면서 더 비장함이 불타올랐어요."
그는 탄핵광장에 나오면서 세상이 넓어졌다고 한다.
덕질을 하던 작은 방에 문이 하나 생긴 거다.
그는 언제든지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가 사회문제에 연대할 생각이다.
그러다 지치고 힘들 때가 오면 잠시 방으로 들어와 쉴 수도 있겠지만,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그동안 안락한 방 안에서 팔짱을 끼고 원할 때만 살짝 커튼을 젖히고 창문으로 내다보다가 이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관여를 하게 된 거죠."
그는 광장에서 자주 보던 정당에 가입했다.
노조에 가입할 생각도 있다.
하지만 정당이든 노조든 입고 벗을 수 있는 옷과 같다고 생각한다.
어딘가에 매여 있기보다는 자유로운 연대를 택할 것 같다.
그는 이번 탄핵 과정에서 '80년의 광주가 24년의 대한민국을 살렸다'는 말이 가장 와닿았다.
한강 작가가 제주와 광주를 재조명한 것처럼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글을 쓰고 싶다.
"이번 광장은 소수자가 눈에 띄었어요. 성소수자뿐 아니라 이주민, 노동자, 해고자 등등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이요. 덕후도 원래는 손가락질받던 이들이었죠. 그들이 평등 수칙을 믿고 목소리를 냈어요. 광장에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게 이번 탄핵 정국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광장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정치가 이루어질 때 진짜 '우리는 성공했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8세계에 있던 것도 오직 혁명이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천둥의 브런치 https://brunch.co.kr/@toddle222
정치가 소수자들 목소리 들을 때가 진짜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