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하동 옥종 두양리에서 '은행나무 어르신 부활 기원제'... 참가자들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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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하동군 옥종면 두량리에서 열린 “은행나무 어르신의 부활 기원제”.
ⓒ 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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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하동군 옥종면 두량리에서 열린 “은행나무 어르신의 부활 기원제”.
ⓒ 최세현
"화마를 피하지 못한 900살 은행나무가 죽은 줄 알았는데 줄기와 뿌리에서 새싹이 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이전처럼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빈다.
"
비가 내리는 속에 9일 오후 경남 하동군 옥종면 두량리 언덕배기에 있는 은행나무를 찾은 주민들이 한 말이다.
뜻있는 활동가·예술가들이 모여 '은행나무 어르신의 부활 기원제'를 열었다.
경상남도 기념물(제69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지난 3월 말 발생한 산청·하동 산불 때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가지가 부러지고 나무 밑둥부터 온통 검정색으로 변해버렸다.
이 은행나무는 고려 공신 병부상서 은열공 강민첨 장군이 심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일명 '강민첨 은행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참가자들은 "잔혹한 화마에 심장까지 타버린 은행나무 어르신, 하지만 그 숯덩이 몸통에서도 연초록 새순을 피워 내고 있다"라며 "두양리 은행나무 어르신이 다시 예전처럼 무성한 잎을 만들고 또 은행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원제를 연다"라고 밝혔다.
기원제는 당초 은행나무 앞 언덕배기에서 열려고 했는데, 비가 내려 인근 교회로 옮겨 열렸다.
최세현 활동가는 "오랫 동안 지켜온 한 그루의 나무가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나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천년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며 "은행나무를 살리는 일은 역사를 되살리는 일이다.
나무는 꼭 살아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진호 목사(두양교회)는 "나무가 부활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지역에 사는 다문화가정 어린이들과 자주 이 나무에 와서 놀기도 했다"라며 "나무가 다시 잎을 무성하게 했으면 한다.
안타깝지만 여러 사람들이 와서 힘을 보태줘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임업 관련 일을 하는 백인수 활동가는 "2002년부터 이 나무와 인연이 있었다.
매년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나무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라며 "갑자기 나무가 산불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죽은 줄 알았는데 싹이 나는 걸 보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정기 노거수를찾는사람들 대표활동가는 "눈물이 날 정도다.
노거수 연구자로서 지켜주지 못한 책임에 마음이 무겁다"라며 "수형이 붕괴돼 관상 가치를 잃었으나 900년을 살아온 자연유산으로서 역사문화적 가치는 여전히 살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몸통줄기 밑동에 움이 돋고 낮은 가지에 드물게 새잎이 나오고 있으므로 노거수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이날 기원제에는 강민첨 장군의 후손인 진주강씨 문중에서도 참여했다.
김태린 춤꾼, 우창수·김은희 가수가 각각 나무의 부활을 염원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이원규 시인은 자작시(아래)를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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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하동군 옥종면 두량리에서 열린 “은행나무 어르신의 부활 기원제”.
ⓒ 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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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하동군 옥종면 두량리에서 열린 “은행나무 어르신의 부활 기원제”.
ⓒ 최세현
지금이 바로 그 날이다
- 다시 천년을 시작하는 은행나무 어르신의 경고
충남 예산군 대술면 이타리. 1천년 전에 돌아가신 은열공 강민첨 장군도 놀라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셨으니...
나 여기 이 자리에 천년 동안 서 있었다 / 고려시대 조선시대 다 살아보고 / 임진왜란 동학혁명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다 겪으며 /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 경남 하동군 두양리 우방산 언덕 바로 이곳에서 / 너희들의 인간지사 살림살이와 속사정을 다 지켜보며 / 내 몸속 깊이 겹겹의 나이테를 새겼다 / 위로는 일월성신을 떠받들고 / 아래로는 이 나라 이 민족의 땅과 지리산의 속마음 / 지구의 속살을 꽉 움켜쥐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천년을 살아남아도 단 하루를 버티기 힘들 때가 있더라 / 지금이 바로 그 날이다 / 천년을 살아도 백년을 사는 일이 갈수록 막막하고 / 처년을 살아도 겨우 십볍을 사는 일이 더 혹독하고 / 천년을 살아남아도 단 일년을 고사하고 / 단 하루를 더 사는 일이 이토록 처참하기만 하니 / 다 또한 죽어서 다시 살아야겠다 / 마을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목소리도 사라지고 / 꽃상여 요령 소리도 없이 곧바로 화장터로 가더라 / 보릿고개 넘고 넘어 먹고 살만한데도 / 어느새 오직 돈밖에 모르는 괴물들이 되었구나 / 지난 백년 동안 인류의 탐욕이 도를 넘었으니 / 지리산의 심장과 강의 내장과 바다의 너른 품을 파헤치며 / 허겁지겁 숟가락 칼춤만 추는구나 / 정치도 경제도 법도 모두 동반자살뿐 / 전쟁이 끝나면 더 큰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 천년만에 이런 공멸의 불지옥은 또 처음이다
온동네 온산에 산불을 지르고 / 온나라 온지구에 인류 종말의 화마를 자초하니 / 살아 천년 어찌 나 혼자만 청청 살아남겠느냐 / 죄지은 자들의 참회는 고사하고 / 눈썹 하나 소신공양을 하였을 뿐 / 너무 슬퍼하지 마라 / 우리 이제 제대로 죽어서 다시 살자 / 온갖 탐욕에 찌든 몸과 마음 다 불살라 버리고 / 아직 어린 새싹으로, 첫 마음의 연초록 새순으로 다시 살자 / 나이 먹을수록 속을 텅텅 비우고 / 애간장이 녹다 못해 마침내 시커멓게 탄 내 속가슴을 보아라 / 이제야 알겠느냐 / 그래도 모르고 아직도 모르겠느냐 / 정녕 그 아무 것도 알아채지 못하겠느냐 / 천년을 살아도 죽어 다시 살아나야 할 때가 있느니라 / 그렇다.
바로 지금 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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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하동군 옥종면 두량리에서 열린 “은행나무 어르신의 부활 기원제”.
ⓒ 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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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하동군 옥종면 두량리에서 열린 “은행나무 어르신의 부활 기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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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하동군 옥종면 두량리에서 열린 “은행나무 어르신의 부활 기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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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하동군 옥종면 두량리에서 열린 “은행나무 어르신의 부활 기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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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살 은행나무 까맣게 탔는데 뿌리서 새싹이... 이런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