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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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사 할 마음을 접고 낡고 좁은 집의 짐을 좀 덜어내기로 했다.
짐 정리의 일 순위는 묵은 책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책장 하나를 빼내고자 시작한 일이 책을 넘어 책상, 서랍, 장식장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공연 티켓과 홍보물, 여행지에서 집어온 안내서, 특히 아이들과 추억이 담긴 물건은 어느 하나 버리기가 아쉬웠다.
사진으로 남기고도 오래 들여다 보게 된다.
그나마 버릴 때 조금 덜 아쉬운 것은 쓰임이 다 한 물건들이나 언제 쓰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아둔 쇼핑백, 선물 상자 같은 것들이다.
유독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 ▲ 물건 상자  물건들이 들어있던 상자 ⓒ 전은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요즘 포장 상자나 쇼핑백은 하나같이 튼튼한데다 예쁘기까지 하다.
언젠가 맞춤하게 쓰일 날이 있을 것만 같다.
그 쓰임이 한 달은 고사하고 1~2년 그냥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제때 버리지 못하고 쟁여두었다가 대개 이번처럼 한 번에 버리게 된다.
그런데 차마 내놓지 못한 것이 있다.
지리멸렬한 내 문장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은 몽당 연필, 크기도 다양하고 심지어 금색인 것도 있는 옷핀, 제각각의 크기와 실용성까지 갖춘 선물 포장 상자, 세상의 모든 소식이 실린 신문. 내가 옷핀을 담아 놓은 통을 들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더니 남편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에 든 물건보다 포장 박스에 더 진심인 나를 한 번씩은 아주 이상하게 여기곤 한다.
여하튼 하루 종일 재활용 창구에 책들을 내다 놓은 남편이 마지막으로 피아노 밑에 가득 쌓인 신문을 내놓으려고 할 때였다.
"신문은 안 돼요. 다음에!" 남편의 어이없어 하는 눈빛을 애써 외면했다.
흔하든 값비싸든 누구에게나 유독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있다.
포항의 동네서점 책방 수북의 김강 대표는 책 인심은 후한데 책을 담아주는 종이 봉투는 그렇게 아까워 한다.
내가 책을 살 때면 대표는 꼭 묻는다.
"봉투에 담아줘요?" 그냥 들고 가라는 얘기다.
나는 흔쾌히 그냥 들고 온다.
▲ 책방수북의 종이 가방  책방 대표님이 아까워 하는 종이 가방 ⓒ 전은주 "나는 이 봉투가 왜 그렇게 아까운지 몰라." 대표는 무안해 하며 덧붙인다.
그럴 때면 대표 옆에 있던 편집장이 한 마디 거든다.
"나는 비닐 봉투를 버리지를 못해요. 그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어요." 장을 볼 때면 에코백을 들고 다니고 될 수 있으면 비닐 봉투를 안 쓰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쌓이게 마련이다.
비닐 팩을 재활용하려고 잘 접어 모아두지만 재사용에는 한계가 있어 늘 차고 넘치게 된다.
나도 동의하며 한 마디 보탠다.
"나는 몽당 연필, 물건 상자나 옷핀, 종이 신문은 못 버려요." 다 같이 웃는다.
집에 오는 길에 유독 그 물건들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볼펜보다 연필로 쓰는 걸 좋아했다.
빈방에서 혼자 뭔가를 쓰고 있으면 사각사각, 쓱쓱 연필이 보내는 응원 같기도 하다.
지금도 마음이 어수선할 때 가끔 칼로 연필을 깎는다.
오롯이 집중해서 나무를 다듬는 그 감촉이 좋다.
연필심을 싹싹 갈아 가지런히 꽂아 놓으면 마음까지 단정해지는 것 같다.
더 이상 잡을 수 없을 만큼 짧아진 몽당연필은 내 지난 시간을 다 기억하는 듯해서 한 번씩 쏟아놓고 들여다보곤 한다.
▲ 몽당연필  모아둔 몽당연필 ⓒ 전은주 어릴 적 시골 동네에서 종이 신문을 받아보는 집은 학식이 높았던 5촌 당숙네와 우리집 뿐이었다.
시골에서 신문은 여러모로 아주 요긴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연결해주는 통로였다.
다 읽은 신문은 며칠 묵혔다가(아버지가 간혹 또 찾으시곤 했으니까) 영화 소식이나 내가 좋아했던 스포츠 스타의 기사들을 꼼꼼하게 오려 스크랩 했다.
신문을 읽는다는 자부심에 어깨가 으쓱하곤 했다.
아버지는 신문을 아주 귀히 여기셨다.
그래서 요즘도 나는 신문을 재활용 창구에 막 내놓지 못한다.
모아두었다가 신문이 필요한 분들이 있으면 기꺼이 가져다 드린다.
갓 짠 참기름을 병에 담아 신문지로 돌돌 말아주는 오래된 참기름집 사장님처럼 그 수고로움을 반겨주는 분들이 있어 다행이다.
작고 흔한 것들이 주는 감동 ▲ 신문으로 싼 참기름병  오래된 방앗간에서 갓 짠 참기름을 병에 담아 신문지로 휘리릭 ⓒ 전은주 생각해보면 내가 자랄 때는 모든 게 참 귀했다.
내가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귀한 게 없는 요즘 아이들을 볼 때면 더 비교가 되곤 한다.
선물 상자도 마찬가지다.
여러 형제들이 한 방에서 지내던 당시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물론이고 개인 공간도 없었다.
어쩌다 내 차지가 된 선물 상자나 뚜껑이 달린 철제통이 나의 비밀 공간이 되었다.
친구에게 받은 편지나 코팅한 단풍잎, 네 잎 클로버, 강가에서 주운 독특한 무늬가 있는 돌, 조개 껍질, 머리핀 등 그런 소소한 것들이 나를 키웠다.
반짇고리가 필수품이던 시절에는 단추며 지퍼도 수시로 떨어지거나 고장이 나곤 했다.
그럴 땐 옷핀 만큼 요긴한 것도 없었다.
지금처럼 모양도 크기도 다양하지 않았고 예쁘지도 않았던 은색 옷핀이 난처한 상황에서 나 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여러 번 구해주었다.
그 시절에 요렇게 앙증맞고 자그마한 옷핀이 있었다면 민망한 상황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을텐데.., 혼자 싱긋이 웃곤 한다.
상자들을 정리할 때면 이렇게 튼튼하고 예쁜 상자를 손에 넣었을 때 함박웃음을 지었을 어린 내가 떠오른다.
쌓인 신문 더미를 볼 때면 탯마루에 걸터앉아 신문을 읽던 햇살 좋은 봄날로 돌아간다.
작고 흔한 것들이 때론 진한 감동으로 나를 깨울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유독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물건들이 있게 마련이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테다.
내겐 몽당연필, 신문, 옷핀, 빈 상자들이 그렇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종이신문은 못 버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