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록소설 장준하 79] "7·4남북공동성명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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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이 극비리에 평양을 다녀온 뒤 2개월 뒤인 1972년 7월 4일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날의 신문을 경향신문에서 동판으로 제작해 후일 이후락측에 전달했다.
ⓒ 이동휘
1960년대 말부터 국제정세는 서서히 냉전시대를 벗어나고 있었다.
한반도 주변 상황도 바뀌어 갔다.
1969년 7월25일 미국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여,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 정치·군사개입을 회피하고,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방침을 밝혔다.
이 해 11월17일에는 미·소가 전략무기 제한협상(SALT)을 개시하고, 1970년 3월 19일 동서독 정상회담이 열렸다.
1971년 10월 25일 중국이 유엔에 가입한 데 이어 1972년 2월 21일 미국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이 해 5월 26일에는 미·소 간에 핵무기 제한협정이 조인되었다.
이처럼 국제정세나 한반도 주변상황이 데땅트 무드로 가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안보를 내세운 강권체제가 들어 선 것이다.
이러한 국내외의 조건을 냉엄히 검토한 장준하 선생은 이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기존 야당에 대신할 정치세력으로 70년도 말경 '민주통일국민회의'를 구상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근로자·학생 그리고 서민대중을 상대로 민족문제를 논의하고 실천하는 지성의 유격전, '민족학교'를 지도하였다.
또한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오자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백범사상연구소'의 발족을 서둘렀다.
(백기완, <민족주의자 장준하의 생애>)
장준하에게 정치나 국회의원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다.
그의 성격이나 의식이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 비정치적이었다.
현실의 흙탕물에서 이전투구를 벌여야 하는 정계보다 차라리 재야가 그의 본령이고 그가 베고 누울 돌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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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조카 이동휘씨 가게 '청사초롱'에 걸려 있는 사진.극비리에 북한을 방문한 이후락이 1972년 5월 4일 김일성과 면담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이후락은 권력에서 물러난 후 북한이 자신을 납치하려 한다는 첩보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 박석철
1972년 7월 4일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북한의 제2부수상 박성철이 평양과 서울을 비밀리에 서로 방문하고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원칙'을 비롯하여 상호중상, 비방 및 무력도발의 중지, 다방면에 걸친 교류의 실현 등에 합의하고, 이러한 합의사항을 추진, 남북간의 제반문제를 개선·해결하고 합의된 통일원칙에 기초하여 통일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서울측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평양측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운영할 것에 합의했다.
7·4남북공동성명은 국민들 몰래 정부당국자들간의 밀담을 통해 통일문제를 처리했다는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이 이를 환호했다.
장준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준하가 박정희의 정책에 지지를 밝힌 것은 이것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7·4남북공동성명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거울이다.
" (박경수, 앞의 책, 407쪽.)
라고 찬사를 보냈다.
박정희에 한 두 차례의 투옥, 관권개입으로 총선낙선, 분신과도 같았던 <사상계>의 고사 등 '한 맺힌' 사연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대의(大義)'에는 흔쾌히 지지를 보냈다.
장준하가 이렇게 나오자 박정희 정부에서 사람을 보내 그에게 남북조절위 남측 대표를 맡도록 교섭해왔다.
그러자 장준하는 현재의 독재정권하에서는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일축했다.
7·4남북공동성명은 분단 이후 27년 동안 남북간에 가로막혔던 장벽을 일거에 철거할 것처럼,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왔다.
남북한은 7·4남북공동성명의 규정에 따라 쌍방간의 합의사항을 추진하고, 남북한 간에 발생하는 제반 문제들을 개선·해결하며, 조국의 통일문제를 협의·해결할 목적으로 '남북조절위원회'를 설치했다.
이에 따라 72년 10월12일 판문점에서 제1차 남북조절위원회가 열리고 2차 회의는 평양에서 열기로 했다.
마침내 한반도에도 화해의 데땅트가 찾아오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록소설 장준하]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속임수 7·4 남북공동성명 지지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