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이름을 알린 천현우(35) 작가의 이력은 독특하다.
경남 마산(현 창원)에서 태어나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학 시절 실습을 나가 산업재해를 당했다.
이후 수년간 창원공단에서 용접공으로 일한 뒤, 노동현장의 경험과 퇴락한 공업도시 마산에서 보낸 유년기를 엮어 2022년 '쇳밥일지'란 책으로 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직접 소개하기도 했던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무렵 천 작가는 미디어 스타트업 '얼룩소'의 기자가 되어 서울로 상경했고, 지방 출신 청년 노동자란 정체성으로 칼럼을 쓰며 지식인들 사이 스타가 됐다.
그런데 '얼룩소' 기자 신분으로 찾은 대우조선(현 한화오션) 하청 파업 현장이 그의 생각을 조금씩 바꿨다.
본인이 누구보다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파업 노동자가 '왜 억울한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란다.
긴 고심 끝에 그는 현장서 답을 찾기로 했다.
천 작가는 지금 경남 거제의 조선소 하청 용접공이 되어 있다.
그의 글은 때로 온라인 지상에서 격론의 대상이 됐다.
출신이 독특한 만큼 그의 시선도 독특했던 것일까. 하지만 수도권 인구가 한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 해도 제조업은 여전히 한국의 중심 산업이다.
저숙련·저임금 노동 인구가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계층인 것도 확실하다.
천 작가는 되레 보편에 가까운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과소 대표되는 정체성 몇 겹을 입은 인물. 그래서 그는 서울, 중산층, 문과, 화이트칼라가 과잉 대표되어 이끄는 한국 '지식인 시장'의 도마 위에서 덩달아 과잉 대표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방 소멸, 제조업 붕괴, (사실 여부를 떠나) 청년 남성 우경화 같은 것이 한국의 당면과제로 꼽히는 시절이다.
서울에서 글로 먹고사는 이들이 매일 나라 걱정을 하는 시대, 지방에서 벌어지는 주 6일 '용접 노가다'의 현실과 이에 종사하는 천 작가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수십 년 경력의 조선소 하청 반장들이 원청 2년차만큼도 벌지 못한다"며 "몸을 갈아넣으면 중산층이 된다는 합의가 깨진 것"이라고 했다.
또 "지방 남성 청년들은 아노미 상태에 있다"고도 했다.
본인들이 어릴 적 꿈꾸던 전통적 가족상이 이제 실현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만큼이나 실질적 해결책 모색이 절실해 보이는 이야기들이었다.
천 작가를 지난 7월 1일 조선소가 있는 거제 옥포항에서 만났다.
- 공장 노동자로 살다가 작가, 기자가 됐다.
그리고 다시 거제도에서 용접공 생활을 하고 있다.
"2022년 대우조선 파업 때 좌절감을 느꼈다.
그들은 최저임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파업을 했다.
숙련공이 최저임금을 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는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던 거다.
굴욕감이 너무 컸다.
반드시 조선소에서 일을 해서 이게 어떻게 잘못됐는지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꼭 글을 쓰러 갔다기보단, 내 삶의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면 하자는 생각이었다.
정규직을 시켜주면 응할 것이고."
- 그래서 그 파업의 이유를 찾았나.
"당시는 조선업이 긴 불황 끝에 반등하던 시기였다.
세계적 환경 규제로 한국이 제일 잘 만드는 LNG(액화천연가스)선 수주가 늘었다.
파업을 주도한 유최안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최저임금 수준이던 임금을 올리고 하청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사측은 '이제 수주가 들어오니 참으라'고 했다.
산업 사이클이 오를 때 임금이 올라야 하는데 배를 인도하고 올려주겠다고 하면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조선소 숙련 노동자는 만능이다.
어디 떨어뜨려 놓아도 일을 잘할 수 있다.
산업이 침체된 2015년 이래 경기도 평택 등지로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
기자로서 나름대로 키운 시야를 갖고 조선소에 들어와 겪어보니 이해가 된다.
"
photo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 조선소의 하루 업무 일과가 궁금하다.
"회사 바로 앞에 있는 건물에 사는데 아침 6시40분에 깬다.
대강 세면하고 7시쯤 정문을 통과한다.
밥을 먹어야겠지. 밥은 공짜로 준다.
원래 오전 8시 출근이지만 7시30분까지 사무실로 도착해야 한다.
밑지는 노동시간이다.
7시40분쯤 '작전회의'를 한다.
조선소는 공장이 아니니 매일매일 갈 곳이 바뀐다.
그때부터 일이 시작된다.
섭씨 28도가 넘으면 '서머타임' 휴식 30분, 32도가 넘으면 1시간이다.
이건 노동시간으로 쳐 준다.
조선소는 일이 없지 않으면 보통 오후 6시까지 9시간 일한다.
사내 식당도 저녁을 6시에 준다.
보통 토요일도 하루 8시간 일한다.
매일 아침 30분 일찍 출근하니 매달 56시간을 일하는 셈인데, 일당직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50시간 일하는 평택보다 훨씬 못 번다더라."
- 어떤 공정에서 일하나.
"탑재라고 부르는 일이다.
배 만드는 일을 '외업'과 '내업'으로 나눌 수 있다.
내업은 쉽게 말해 공장 안에서 하는 일이다.
외업은 밖에 나가서 한다.
그중에 배 안으로 들어가거나, 배에 부품이 최종적으로 조립될 곳에 올라가서 용접하는 게 탑재다.
탑재 일을 하는 노동자가 100~120명 정도 된다.
80% 정도가 하청이고. 10명 남짓 규모의 팀(반)이 6~7팀 있다.
외국인 노동자는 반마다 3~4명 정도다.
하청보다는 원청이 일하기 좀 더 수월한 게 사실이다.
이를테면 하청에서는 일이 위험해도 해야 한다.
반장에게 대들면 일감이 끊길 수도 있다.
원청은 노조가 힘이 세니 이야기가 다르다.
건설 '노가다'와 비슷하고 실제로 언어를 공유한다.
이걸 하면서 최저임금 받을 수 있겠나?"
- 원청과 하청의 격차가 그렇게 큰가.
"능력의 천장이 신분을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간관리직 격인 '반장'은 20~30년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원청 봉공(정규직) 2년차 정도 연봉밖에 안 된다.
용접 2년차면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조선업에서 '짬밥'은 정말 엄청난 가치가 있다.
장비를 챙겨서 어딘가로 도달하면 작업이 시작된다.
용접 결과에 대한 검사를 마친 후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그 장소에서의 작업이 끝난다.
조선업에서 실적은 시간 싸움이다.
이 세계에서 직관이 쌓인 숙련 노동자의 역할이 크다.
아예 임금을 못 올리는 구도는 아니다.
그런데 다음 연도에 내 임금이 얼마일지 모른다.
처음에 최저임금을 주는 것은 무조건이고, 매년 협상을 해야 한다.
2015년 이후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되면서 임금이 낮게 유지되기도 했다.
이러면 조선소에 남을 이유가 없다.
흙수저가 '몸을 갈아서' 노동을 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세계적으로도 합의된 룰 아니었나."
- 일종의 참여관찰 연구를 하러 간 것 같다.
"그래도 정규직 시켜주면 할 거다.
(웃음)"
- 정규직이라면 하청회사 정규직을 말하나.
"아니다.
사람이 없어서 난리인데 하청은 자연 정규직이다.
원청 정규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안 뽑아주지 싶다.
회사를 이미 한 번 시끌벅적하게 했다.
회식비를 (월급에서) 공제하는 걸 페이스북에 언급했더니 원청이 시끄러웠다더라. 말도 안 되는 '공제'가 많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 '우비'를 장비로 지급 신청했는데 그게 임금에서 공제됐다.
원청에선 '우비는 필수 안전 장구가 아니다'라고 하더라. 야외에서 일하는데 당연히 안전장구 아닌가. 장비를 분실해도 그 손망실 비용을 노동자에게 물린다.
"
- 지방 청년 인구가 계속 유출되는데 원인이 뭔가.
"지방을 왜 떠나느냐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서울이 얼마나 '쩔길래(좋길래)' 가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지방의 문제로만 보면 '지방은 미개하다'는 식밖에 안 된다.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유지비를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서울이 우위다.
특히 육체노동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방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여성은 더 많이 떠난다.
남자들은 아직 지방에서 육체를 갈아넣는 식으로 '월 350'까지 벌수 있다.
바늘 구멍이지만. 여성은 그조차 불가능하다.
"
- 지방에는 남성 청년만 남는다는 것인데 그래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겠다.
"남자들이 뭉치면 왜 우경화가 되느냐는 게 물음표 아닌가. 그간 존재했던 가족주의의 전통을 계승할 수 없고 심지어 부정당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나는 여성들이 언제 어디서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방에선 그리 살 수가 없다.
여성이 떠나고 남성은 예전 세대처럼 가족을 꾸릴 수가 없다.
사실상 가족주의가 해체된 지금, 지방 남성들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다.
지방은 공장에서 일하며 돈 벌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전통적 가치) 이외의 삶을 실제 경험할 수 없기도 하고."
- 우리 세대 지방 청년 남성들의 생애 모델이란 게 무엇이었나.
"연봉 8000만원에 전업주부와 결혼하고 자식 교육과 내 노후가 해결된 삶. 여기서 자식 교육이 잘 안됐을 때, 남자는 1차벤더(하청)에서 일을 시작하라고 한다.
하지만 딸은 어떻게든 공부시켜 서울로 '탈출'시키려 한다.
"
- 현대자동차 노조의 요구사항들이 떠오른다.
"남자애가 공부를 못하면 내 밑에서 배우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버티면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렇게 대기업 원청 정규직이 쌓아올린 가족 신화가 해체되고 있다.
연봉 8000만원은커녕 4000만원도 안 되니까. 우리 세대는 그런 상상이 해체되고 계급 사다리가 사라진 상태에서 유년기를 보낸 것이다.
"
- 지방 청년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지 않나.
"이게 재밌는 부분이다.
배타적이지 않다.
외국은 이민자 추방하라고 난리인데 우리는 아니다.
최저임금으로 임금이 수렴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외국은 최저임금이 1만원이라면 3만원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데, 외노자들이 단가를 떨어뜨려 반발한다.
그런데 우리는 다들 어차피 최저임금을 받고 있었다.
올라가지 못하는 계급 사다리를 만들겠지만 깎여본 경험은 없다.
체감의 문제다.
"
- 지금까지 지방과 노동현실을 지켜보건대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가.
"균형발전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균형발전은 20~30년짜리 대계(大計)들이다.
수십 년 뒤에 지하철 놔 줄테니 서울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나? 아니다.
이번에 새 정부의 국민주권위원회 국민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운전면허 공짜로 따게 해 달라'는 얘기를 했다.
100만원 가까이 드는데, 서울에서는 굳이 안 따도 되지만 지방은 아니다.
교통에서 일종의 차별을 받는 셈인데 이런 걸 도와주면 된다.
전에는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현장 실습 기간을 고용보험에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아이들이 퇴직금이 생기고 보너스를 더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작은 것들이 쌓여 서울과 지방의 격차, 주류와 비주류의 격차를 좁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