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휴식? 하루 쉬면 3일 죽어난다"
서울 시내 한 쿠팡 배송 캠프에서 택배기사가 배송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부 바뀌어서 '4.5일제'니 '4일제'니 하는데, 우리도 솔직히 쉬고 싶거든." 국내 모 대형 택배사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는 50대 A씨는 혀를 끌끌 찼다.
택배업계가 '주 7일 배송'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가장 먼저 CJ대한통운이 지난 1월부터 도입했고, 한진택배도 지난 4월부터 수도권과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롯데택배도 관련 제도 도입을 위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필연적으로 현장 기사들의 처우와 함께 실효성 문제가 떠오른다.
A씨는 "(최근엔) 차라리 생수 배달하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제아무리 각 실정에 맞게 서로 쉬어가며 일을 한다고 하지만, 이전보다 노동 강도가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택배기사들의 대체적 반응이다.
사측과 휴일 근무에 따른 수수료 문제 등도 아직 봉합되지 않고 있다.
CJ대한통운의 경우 전국택배노조가 주 7일 배송 미참여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 실질적인 주 5일 근무 보장, 휴일배송·타구역배송 추가 수수료 지급 등을 요구한 바 있다.
회사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다.
속도 경쟁에 따른 '물량 감소'다.
경기침체 속에서 이커머스 시장이 쪼그라든 상황이라 택배업계는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여기에 속도 경쟁까지 붙었다.
빠르게 배송하지 못하면 소비자의 만족도를 채울 수 없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 높아지는 노동 강도를 감당해야 하는 택배기사도, 무한 경쟁 속 '물량 타격'을 막기 위해 현장을 쪼는 택배업체도, 모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악순환은 이미 진행 중이다.
'로켓배송'이 발단?… 주 7일제 시동 국내 택배는 굉장히 빠르다.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오늘 주문하면 도서산간(島嶼山間)을 제외하고 2~3일 안에 물품이 도착하는 것은 물론, 밤 9시 이전에 주문할 경우 다음날 해가 뜨기 전에 도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에는 이른바 '로켓배송' 개시로 물류·유통업계 전반을 뒤흔든 쿠팡이 있다.
쿠팡은 2014년부터 주말과 평일을 구분하지 않고 '주 7일 배송'을 기반으로 총알같이 제품을 전달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적자를 감내하며 돈을 쏟아부은 쿠팡은 결국 소비패턴을 바꿨다.
급기야 "로켓배송 아니면 안 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비자들은 빠른 배송에 익숙해졌다.
쿠팡발 속도경쟁으로 택배업계 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커머스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며 택배업계는 주 7일 배송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결국 지난 1월 CJ대한통운이 대형 택배사로는 처음으로 주 7일 배송 시스템인 '매일 오네'를 도입하면서 불이 붙었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리점연합회,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등 이해 관계자들과 주요 쟁점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으며, 결국 올해 초 기본협약을 체결하고서 본격적인 배송에 돌입했다.
이에 질세라 한진택배도 지난 4월부터 수도권과 전국 주요 도시에서 주 7일 배송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주요 고객사를 대상으로 기존 수도권에서 제공하던 휴일배송 서비스를 주요 도시로 확대한 것이다.
한진은 이전까지 네이버 풀필먼트 연합 상품, 미국 직구채널, 테무 등 일부 고객사를 대상으로 휴일배송을 제공했으나 일반고객사에는 주6일 배송 체제를 유지해왔다.
최근에는 롯데택배도 이에 동참할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글로벌로지스와 택배노조는 주 7일 배송 도입과 관련한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석 택배노조 위원장(맨 왼쪽)이 지난 4월 29일 서울 중구 한진 본사 앞에서 열린 한진의 택배노동자 기만, 택배현장 교란행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휴대폰 2개 써가며 배송? 업계에 따르면 가장 먼저 시작한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등은 택배기사들의 휴식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업무 프로그램 로그인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사무직 근로자들의 초과근무를 막기 위해 사무실 컴퓨터를 셧다운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현장의 반응은 전혀 다르게 작용했다.
올해 초부터 기사들이 휴일을 쉽게 보장받을 수 없게 되면서, 이른바 '투폰(휴대폰을 두 개 사용하는 것)'을 쓰기 시작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기사는 "나도 전화기를 2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얼핏 들으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택배기사 한 명이 담당하는 권역별로 주말 물량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쿠팡의 경우 (주말에도) 평일 대비 70% 정도를 유지하지만, 일반 택배사의 경우 20~30%까지 물량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별 기사가 주말에 배송하더라도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실정이다.
결국 우회적인 방법을 찾았다.
바로 다른 권역을 담당하는 기사들끼리 조를 짜서 근무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평일에 택배기사 1명씩 '가'권역과 '나'권역을 각각 담당했다면, 주말에는 각각 돌아가며 '가'권역과 '나'권역을 모두 관할하고, 다른 기사는 쉬는 것이다.
A씨 역시 "우리끼리 3인 1조나 4인 1조 식으로 조를 짜서 서로 지역을 주말 동안 맡아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그나마 적은 물량에 대해 보완할 수 있을지라도, 담당해야 하는 지역이 넓다 보니 근무 시간과 이동 거리 등이 늘며 피로도가 쌓이는 결과를 낳는다.
A씨는 "사실 기름값도 안 나오는데 쉴 수도 없는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하는 입장"이라고 토로했다.
A씨의 말처럼 나름의 생존법을 찾았으나 각 기사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은 더욱 커지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도 딱히 방도가 없다.
무엇보다 물량이 매우 적다.
쿠팡의 경우 다량의 물량을 '풀필먼트센터'라는 시설에 쌓아놓고 운영한다.
풀필먼트센터는 온라인 판매자가 플랫폼 내 판매 물품의 저장·주문을 처리하는 시설로, 쿠팡의 물류 허브 시스템이기도 하다.
그러나 각 택배사는 계약을 맺은 고객사의 상품을 받아 운송하는 탓에, 고객사들이 주말에 배송하지 않을 경우 주말 동안의 물량을 확보할 수 없는 구조다.
적은 물량은 기업의 영업이익과도 맞물려 있다.
예컨대 '주 7일 배송'을 도입한 대한통운의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85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9%나 감소했다.
다만 짧은 기간과 내수 부진에 따른 업계 내 전체적인 물량 감소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기존 경쟁이 심했던 택배업체 입장에선 감소하는 물량을 뺏기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도입했다는 입장이다.
늘어나는 주 7일 배송… 난제 '여전' 한편 각 택배업체별로 주 7일제에 나서면서 노조 등을 비롯한 노사 간의 대립은 이어지고 있다.
우선 지난 4월 '주 7일 배송'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한진택배에서 사측과 노조의 갈등이 불거졌다.
도입 결정 직후 택배노조는 "회사가 아무런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주 7일 배송을 강행한다"면서 반발했으며, 이후 한진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나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 택배기사들은 부분 파업에 돌입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진대리점연합회와 택배노조는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CJ대한통운 상황은 그나마 낫다.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와 택배노조는 지난 1월 14일 기본 협약을 맺은 이후부터 본 협약 체결을 위해 협상을 이어왔다.
그러나 주 7일 배송에 따른 휴일 추가 수수료 인상, 일부 대리점의 고율 수수료 인하, 산재보험료 부담 등의 문제에서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지난 6월 10일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가 교섭을 중단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당시 노조는 "기사 한 명이 토요일에 택배 250개를 배송한다면 일요일에는 두세 명의 구역에 배송할 택배를 합쳐도 100개 정도밖에 안 된다"며 "일요일에 배송할 때는 혼자 두세 명의 구역을 돌아야 하니 시간은 더 걸리는데, 물량이 적어 수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양측은 지난 6월 말 조정 신청을 취하하고 합의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상생방안 냈다는 쿠팡… 현장은 '글쎄' 택배업계 전체적으로 노사 간의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주 7일 배송'과 유사한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역시 쿠팡이다.
이미 쿠팡은 과도한 노동 강도와 미흡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숱한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쿠팡의 택배회사인 쿠팡CLS(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는 지난해 5월 택배노동자 고 정슬기씨의 과로사 이후 장시간 노동환경을 개선하기로 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새벽배송에 대한 격주 주 5일제 도입, 주간배송에 대한 의무 휴무제 시행, 분류작업 문제 해결, 프레시백 회수 강요 금지 및 비용 현실화 등이었다.
정부 역시 지난 1월 쿠팡CLS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분야 기획감독을 진행하고 일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이후 쿠팡 측은 플랫폼 입점업체와 노동자들과의 상생협약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장 반응은 여전히 미적지근하다.
쿠팡은 또 약속했던 상생방안에 대한 진행 여부를 공개하지 않는 상황이다.
기사 개인마다 여전히 엄청난 물량을 감당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앞서 주요 택배업체들을 포함해 쿠팡 역시 지난 6·3대선일 당일 전면 휴무에 돌입했다.
쿠팡의 경우 2014년 로켓배송 도입 이후 사상 첫 주간 휴무였다.
이와 관련해 한 쿠팡CLS 소속 택배기사 B씨는 "이번 대선일에 쉬고 나서 진짜 거의 죽을 정도로 물량이 많이 나왔다"며 "쉬긴 쉬었지만, 이젠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딱 하루 밀렸는데, 한 3일은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물량이 나와 피로도가 오히려 더 축적된 느낌"이라고도 했다.
'하루'만 쉬어도 며칠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노동 강도가 강해지는 쿠팡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량이 적어 난리인 일반 택배사들과 달리, 쿠팡은 오히려 물량이 많아 고생인 상황. '주 7일 배송' 전면 확대가 과도기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 현장 기사들은 여름을 지나고 있다.
앞서 A씨는 이같이 말한다.
"아무리 개인사업자라지만, 우리도 쉬고 싶거든. 그래서 쿠팡에 안 가고 여기서 일반 택배를 하는 건데, 돈이라도 많이 벌고 악착같이 하려면 진짜 쿠팡에 가서 물건 많이 받아가지. 그런데 몸이 박살나고 힘들고 오래 못하니까. 그냥 하던 거니까.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야."
쿠팡發 택배업계 주7일 배송의 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