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 드라마 '앙팡'은 쇼와 100년 압축판
1988년 5월 19일 당시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아카사카어정(赤坂御苑)에서 열린 황실 가든파티 도중 손을 흔들고 있는 가운데 아키히토 왕세자(왼쪽)가 지켜보고 있다.
photo 뉴시스·AP
2025년 일본 풍경 중 하나로 쇼와(昭和) 100주년 축하 기념식을 빼놓을 수 없다.
쇼와는 현재의 일본 천황 나루히토(德仁)의 할아버지, 히로히토(裕仁) 재임 당시 연호다.
정확히 1925년 12월 25일 천황에 즉위한다.
2025년 크리스마스가 쇼와 연호 탄생 100년이 되는 셈이다.
쇼와 100년 행사는 일본 정부가 주도해 전국에서 진행 중이다.
공산당을 비롯한 야당은 평소 천황제도 자체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쇼와 100년 기념행사만큼은 여야 모두의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진행되고 있다.
다만 쇼와를 알지 못하는 외국인이 본다면 이런 기념행사가 치러지는 것 자체도 느끼기 어렵다.
조용하고도 은밀하게 치러지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유우겐(幽玄)'이란 단어가 있다.
'깊이 숨겨진, 조용한'이란 의미를 가진 말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신비롭고도 조용하게 처리하는 문화양식을 의미한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정해진 순서에 맞춰 조용히, 사적인 대화 하나 없이 행하는 신비로운 문화다.
차 한 잔이라도 서로의 정과 애정을 듬뿍 실어 나누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양식이다.
유우겐 문화가 배경에 있지만, 한국이나 중국인 관점에서 보면 쇼와 100년 자체를 간과하기 십상이다.
일본 근대사는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 출현에서 시작된다.
이후 지금까지 전부 5명의 천황이 등장했다.
5명의 천황 즉위 연도를 기준으로 볼 경우 50주년, 100주년, 150주년이란 식의 기념식이 주기적으로 벌어질 듯하다.
그러나 그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왜 히로히토의 쇼와 100년만이 특별하게 취급되는 것일까? 필자가 내린 결론이지만, 히로히토를 대하는 일본인의 '특별한' 기억과 정서가 쇼와 100년 기념에 주목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이 될 듯하다.
한국에서 안중근 의사는 애국의 상징이다.
반면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숨진 초대 일본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우리에게는 국가적 원수처럼 받아들여진다.
일본의 경우는 반대다.
이토 히로부미는 근대 일본 1등 공신이고, 안중근 의사는 근대 일본의 적이다.
천황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선
히로히토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보면 식민지 조선의 총사령관에 해당할 사악한 인물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아주 특별한 인물로 받아들여진다.
즉위 즉시 2·26 군사정변을 겪고, 군부의 만주·중국 침략과 태평양전쟁, 나아가 원폭투하와 이에 따른 무조건 항복, 이후의 수직상승 고도경제시대를 겪고 일본 경제 버블 절정기에 세상을 뜬 인물이 쇼와 히로히토다.
전후 인간선언을 통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국가수반이 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인간이나 신 관계없이 히로히토를 따르고 받들며 살아간다.
쇼와 히로히토는 그 같은 '격동의 역사' 최정점에 선 일본 그 자체다.
기억에 사무칠 경우 인간 유전자도 거기에 맞춰 변하게 된다.
지옥과 천국을 넘나든 쇼와 영고성쇠(榮枯盛衰)는 일본 유전자를 구성하는 '상수(常數)'나 다름없다.
한국적 정서지만, 50여년 전 박정희 시대는 결코 한국 유전자에 포함될 수 없다.
상수가 아니라 '변수(變數)'로서 존재할 뿐이다.
절대권력 대통령도 임기가 끝나는 즉시 잊히면서 한국인 유전자 밖의 존재로 변해간다.
한국 유전자의 특징이지만, 인물의 영고성쇠를 전부 보듬으려는 발상 자체가 드물다.
영(榮)과 성(盛)에는 집착하지만, 고(枯)와 쇠(衰)는 인정할 수 없다.
자리를 지킬 때는 조용하지만, 권력에서 추락하는 순간 살벌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크게 보면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27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황실에 대해서는 예외다.
잘한 것, 못한 것 구별 없이 천황과 함께한 영고성쇠 시대를 숙명이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쇼와 히로히토가 일본인과 일본 유전자의 상수로 정착된 이유이기도 하다.
히로히토의 쇼와 시대는 극적(劇的)이고도 극적(極的)인 시간으로 채워졌다.
원폭 한 방에 수십만 명이 사라지고, 미군 공습으로 하룻밤 만에 100만 이재민과 30만 가옥이 불탄 지옥도 쇼와 시대의 기억이다.
쇼와 100년은 그 같은 파란만장한 역사에 대한 회상이자 회한, 나아가 반성으로서의 무대라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쇼와 100년은 조용히 그리고 내부로 삭히면서 치러지는 유우겐 문화의 현장이기도 하다.
뭔가 딱 부러지게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 '애매함'도 유우겐 문화의 특징 중 하나이다.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애매한 일본'을 수상연설의 주제로 삼았다.
오에 겐자부로는 평화주의·반전주의 작가로 통한다.
'애매한 일본'의 가장 큰 요소로 태평양전쟁과 원폭에 대한 일본과 일본인의 모순된 입장을 지적한 작가다.
일본인이라면 당시 오에 겐자부로의 수상연설에서 애매함의 정점이 무엇인지 곧바로 이해했을 것이다.
바로 천황이다.
쇼와 100년이라고 할 때, 한국인이 가장 관심을 가질 부분은 식민지와 전쟁 책임 문제가 될 것이다.
새삼스럽게 후벼파서 소금을 뿌리자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진실이란 차원에서 히로히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부분이 쇼와 100년 핵심 테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는 그 어떤 행사를 살펴봐도 '히로히토 식민지 전쟁'에 관한 논의가 없다.
영고성쇠 전체 흐름 속에서의 히로히토는 있지만, 고와 쇠에 맞춰진 쇼와 개인에 대한 얘기는 전무하다.
유우겐 문화이자, 오에 겐자부로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말한 '애매한 일본'의 증거가 쇼와 100년 행사에 녹아 있다.
1971년 10월 5일 일본 히로히토 천황(오른쪽)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유럽 순방의 일환으로 버킹엄궁으로 향하는 마차에 함께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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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세계관의 차이
한·일 양국 간 세계관이나 인식에 대한 근본적 차이라고나 할까? 한국은 완벽하지 않으면 죄인으로 몰아가는 '대의명분' 주자학 문화에 익숙해 있다.
반면 일본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야말로 진짜 인간이라 보는 '실천행동 중심' 양명학을 중요하게 여긴다.
지난 6월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공습을 발표했다.
백악관 회견 당시 트럼프 뒤에는 J D 밴스 부통령,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3명이 서 있었다.
사실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는 보기 쉽지 않다.
밴스 부통령과 루비오 국무장관은 트럼프를 맹공격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밴스는 2016년에는 트럼프를 예측 불가능하고 천박하며 입으로 정치를 하는 인물이라 말했다.
루비오는 트럼프를 불안하고 약삭빠른 비즈니스맨이라 부르면서 이민정책도 정반대 노선에 섰던 정치가다.
트럼프는 한때 적이라도 마음을 바꿔 동참할 경우 친구로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물론 반대로 아주 친하다 해도 생각이 다를 경우 곧바로 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일본 문화는 한국보다 트럼프 인재등용 방식에 익숙하다.
적이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친구라도 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 문화다.
흐름에 맞춰 세상을 대할 뿐, 처음부터 '왕후장상(王侯將相) 씨가 따로 있다'는 식의 세계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고나 할까?
일본 절목 이벤트의 특징 중 하나지만, 문화적 소양을 높이는 데 주목한다.
상대의 악행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피해와 논리에 주목하는, 선언과 정치로서의 이벤트가 아니다.
담담하게 도쿄공습 사진을 보여줄 뿐, 미군의 잔악상을 부각하는 사진 전시전이 극히 드물다.
옳고 그르고, 잘했고 잘못했고의 역사가 아닌 흘러가는 시대로서의 '절목' 이벤트다.
핵심은 현재와 미래다.
비극을 또다시 재현하지 않는다는 결의와 준비가 이벤트의 중심이다.
일본 격동 시대의 쇼와
6월 한 달 내내 일본에 머물면서 NHK 아침 8시 드라마 '앙팡(あんぱん·단팥빵)'을 지켜봤다.
드라마 타이틀이 앙팡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앙팡은 한국의 단팥빵으로, 화혼양재(和魂洋才)의 산물이다.
일본은 빵이 아닌 쌀에 기초한 식문화다.
19세기 말개국과 함께 서양 빵이 들어온다.
모두 멀리하던 중, 사무라이 출신 장사꾼이 빵 안에 팥을 넣어 일본인 입맛에 맞춘다.
NHK의 '앙팡'은 일본 만화 '호빵맨(アンパンマン)'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만화 '호빵맨'은 1969년 등장했다.
주인공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배고픈 사람을 위해 자신의 얼굴을 뜯어준다.
문자 그대로 살신성인(殺身成仁)이지만, 괴이하고도 엽기적이다.
그러나 지금도 인기를 끄는 클래식 일본 망가다.
NHK 드라마 주인공은 '호빵맨' 작가 야나세 다카시(柳瀬嵩)의 부인, '고마츠 노부(小松暢)'를 모델로 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참전 남편의 죽음, 신문사 여성기자, 야나세와의 재혼, 만화 호빵맨 캐릭터 완성에 이르는 개인사와 시대상이 6개월 장편 드라마를 통해 열도 전체에 방영되고 있다.
7월 초부터 이 드라마는 미군 주둔하의 1945년 직후 일본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필자의 유년기 기억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특히 주목하고 있다.
1970년대 필자의 유년기는 미군부대 주변에서 시작됐다.
당시 미제 물건은 선진 문명품으로 통했다.
초콜릿 맛이 아니라, 최첨단 미제 물건에 대한 환상이 유년기 필자의 기억 속에 꽉 차 있다.
드라마 '앙빵'도 마찬가지다.
미군이 던져준 초콜릿, 껌, 과자를 대하는 전후 일본인의 모습이 자세히 그려지고 있다.
필자 역시 그러했듯이, 드라마 속에는 가난타령이나 반미, 피해의식도 없다.
당시 대부분은 그 같은 삶을 운명이자 일상으로 받아들였고, 그속에서 나름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다.
누구 탓이 없고, 남을 탓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 얼굴을 뜯어서라도 상대방을 도우려는 호빵맨 캐릭터도 그 같은 공기 속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어려울수록 저주와 불만으로 가는 사람이 많다.
반면 힘이 들수록 한층 더 세상을 밝게 만들려 노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드라마 '앙팡'은 쇼와 100년 행사와 무관한, NHK 자체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러나 일본인 대부분은 '드라마 앙팡=쇼와 100년 압축판'으로 대할 듯하다.
도둑질, 거짓말, 배신, 죽음도 드라마에 넘친다.
그러나 웃음, 보람 그리고 행복한 순간도 향신료처럼 드라마 '앙팡'에 녹아 있다.
격동과 영고성쇠의 쇼와 100년. 한국이 겪은 지난 100년의 역사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웃 일본의 연중 유우겐 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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