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5일 한반도선진화재단과 주간조선 주최로 열린 ‘The 새로운 생각 세미나’에서 곽노성 연세대 글로벌인재대학 교수가 ‘침몰하는 한국, 생존을 위한 선택’이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photo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대한민국이 '침몰'이라는 단어 앞에 마주 선 지금, 중요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위험을 피할 것인가, 아니면 생존을 위한 모험을 선택할 것인가.' 곽노성 기술혁신회장·연세대 글로벌인재대학 교수는 최근 발간한 '침몰하는 한국, 생존을 위한 선택'을 통해 이 물음에 직면하라고 요구한다.
지난 6월 25일 한반도선진화재단과 주간조선 주최로 열린 'The 새로운 생각 세미나'에서도 의료계, 법조계, 정책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한민국 생존이란 주제를 놓고 심도 있게 고민했다.
이날 '침몰하는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선택' 발제를 맡은 곽노성 교수는 인구 감소, 산업 경쟁력 하락, 정치 무능이라는 삼중 위기를 지적하며, 한국 사회가 구조적 전환 없이는 더 깊은 침체로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중소기업 중심의 취약한 일자리 구조, 미국·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제 질서 속에서의 전략 부재, 노동시장·공공부문 개혁의 지연 등은 이미 청년 세대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곽 교수는 제조업 기반의 AI 융합 전략, 다민족 국가로의 이행, 과감한 지배구조·노동시장 개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자신을 '86세대의 막내'라고 소개한 곽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의 무기력함은 '잃어버린 22년'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3년 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국민연금, 건강보험, 신규 공무원 임금 등 현재와 똑같은 문제가 논의됐다"면서도 "지금도 그대로다.
구조를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재유출 심각한 수준
가장 절박한 위기는 출산율과 인재 유출이다.
통계청의 2023년 전 국가 출생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출산율(0.78)을 기록 중이며, 고급 인재 순유출에서도 이스라엘 다음으로 높다.
곽 교수는 "청년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나마 남은 이공계 고급 인재마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면서 "AI 인재 유출 순위에서도 우리는 이스라엘에 이어 두 번째"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이 전쟁과 안보 문제로 인해 특수 상황에 처해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유출 수준은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고급 인재의 이탈은 교육투자 손실로 그치지 않는다"면서 "장기적으로 기술력 자체가 사라지고 이는 혁신의 기반 붕괴로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한국 R&D 정책의 근본적 문제로 '성과 부재'도 짚었다.
그는 "SC급 논문은 넘쳐나지만, 글로벌 선도기술은 오히려 줄었다"며 "2012년과 2020년 사이 최고기술 등재는 0건, 선도기술은 36건에서 4건으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는 매년 수십조원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투입하고 있지만, 실질적 경쟁력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공 시스템 전반에 드리운 위기감도 언급됐다.
곽 교수는 특히 공직사회, 의료, 교육, 군대 등 공공 시스템 전반에 '위험 기피' 현상이 드리워져 있다고 진단한다.
"의욕을 가진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외과, 응급의학과 등 주요 의료영역은 환자가 잘못될 시 발생하는 법적 책임 부담으로 인한 기피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 스트레스와 지나친 간섭으로 수학여행과 체험학습을 줄이고. 공무원들은 정책을 추진하다 정권이 바뀌면 직권남용죄로 몰릴까 소극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곽 교수는 "의사, 교사, 공무원, 군인까지 모두 '열심히 일하면 위험해진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곽 교수는 이어 사회적 불안정성의 핵심에는 부동산이 있다고 분석했다.
청년들의 출산율과 혼인율이 떨어지는 이유에는 부동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열심히 일해도 내 힘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는 절망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수도권 쏠림 현상과 지방 소멸로 인한 일자리 부족이 결합되며 청년들이 도시에 몰리지만, 그곳에서 가난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주택 가격과 출산율은 명백히 반비례하며, 도시 집중도를 낮추는 것만으로도 출산율이 0.4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고 밝혔다.
IMF 이후 멈춘 구조개혁
정치 시스템의 한계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리셋되고, 공무원은 판단을 유보하며 대통령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집중된다"며 "정치가 구조화되지 못한 채 검투사식 대결 정치 구조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야 구분 없이 개헌, 규제개혁, 복지 확대 등을 모두 외치지만, 실질적 실행은 없다고 꼬집었다.
곽 교수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22년을 "기회 상실의 세월"로 규정했다.
그는 "우리는 IMF를 극복했다고 자부하지만 단기 유동성 문제만 넘긴 것"이라면서 "이후 구조개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위기를 직면할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임은 더 이상 정치가가 아닌 국민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조업 기반의 수출 전략과 인재 유치, 구조 개혁이 반드시 병행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전문가들은 보수진영 내부의 한계, 정책 실행력 부재, 세대교체, 교육 시스템 등 다양한 쟁점에 대한 비판과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손숙미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한반도선진화재단 대표는 "10년 전부터 '위기'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한국은 계속 성장을 이어왔다"며 "무조건적인 위기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비관적으로만 가기보다 국가에 대한 시각을 균형 있게 가져야 한다"면서 "잃어버린 30년의 기로에 있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은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이병혜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는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반영한 것"이라며 지금의 선택이 시대정신과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를 인식하는 관점 자체가 이념에 따라 다르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보는 시선이 다르다"며 보수 내부의 문제 인식 부족을 꼬집었다.
이날 참석한 하태경 전 국민의힘 의원은 "보수는 전통적 지지층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청년층과 중도층으로의 확장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어르신 세대는 자연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집권을 위해선 양보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며 "세대 간 토론과 양보가 전제되지 않으면 중도층·청년층 흡수가 어렵다"고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인수위원회 출신인 주현철 미국변호사는 보수진영의 권력 구조가 공무원 중심으로 고착되어 있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그는 "보수의 지도부는 공무원들이 많다"면서 "공무원들하고 끝없이 일하는 걸 세력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다"고 했다.
그는 "변화를 준다기보다는 있는 걸 유지하는 형태로 움직이는 게 강하다"면서 "이로 인해 정치를 보수 쪽에서 하시는 분들의 기회가 많이 없어진다.
공무원들이 중용되기 때문에 그만큼 자리가 없어지고 정치인들이 보수 쪽으로 유입되는 통로가 차단이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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