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둘째 날 CP6 인근. 비가 내리는 사이 선수들이 CP를 향해 뛰고 있다.
당시 등산로는 진흙탕으로 변했다.
주최 측은 선수들의 안전을 고려해 저녁 7시 20분쯤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장수트레일레이스 70km 부문에 출전했다.
대회 한 달 전에야 운동(매일 10km 달리기, 월간<산> 홈페이지에 훈련기 4편을 연재함)을 시작해 불안한 마음이 컸다.
기록이나 순위에 목표를 두지 않고 부상 없이,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코스를 완주하자는 의지를 굳혔다.
짧았지만 효과적인 훈련 덕분인지 나는 예상보다 평온하게 경기를 치렀다.
도중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데도 별 탈 없었다.
54km 지점에 있는 여섯 번째 체크포인트(이하 CP)에 도착한 다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CP에 있던 자원봉사자가 말했다.
"지금 이 시각부터 CP 운영이 중단됐어요. 도착한 선수들은 여기서 경기를 마쳐야 합니다.
"
결국 나는 DNF(Did Not Finish, 자의든 타의든 경기를 끝내지 못한 선수를 뜻함) 당했다.
골인지점까지 14km 남았고, 체력은 충분했다.
방수 재킷과 레인 팬츠를 입었고, 트레킹폴까지 손에 들었다.
배낭 주머니에 에너지젤도 가득했다.
어떤 오르막이 나와도 단번에 오를 자신이 있었고, 진흙길로 변한 코스를 통과하는 데 문제될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아쉬웠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안전을 위해 주최 측이 내린 결정이니 따라야 했다.
경기가 끝나고 이틀 정도 지나서야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대회 디렉터인 박하영씨를 만나 인터뷰하고 나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긴박했다.
비교적 평온하고 태평했던 나의 70km 주파기를 전하기보다 대회 운영자 박하영씨의 입장에서 대회 분위기를 설명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다음은 박하영씨가 본 제5회 장수트레일레이스다.
대회 첫날, 경기장 근처에서 '쉐이크 아웃런'이 열렸다.
짧은 거리를 달리면서 가볍게 몸을 푸는 이벤트였다.
팀 스카르파 선수들(흰 티셔츠)과 참가자의 단체사진.
둘째날 오전 6시 50분쯤, 출발점 광경. 70km, 38km 참가자들과 여러 스태프들까지 합쳐 1,000여 명이 경기장에 모여 시끌벅적했다.
아뿔싸! 보급 실패
4km 버티컬 레이스(경사가 급한 짧은 코스를 빠른 시간 안에 완주하는 종목)와 쉐이크 아웃런(후원업체 스카르파에서 연 이벤트, 외국 초청 선수와 5km 코스를 천천히 달리면서 몸을 푸는 용도)이 열린 대회 첫날(4월 4일)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바람이 살짝 불었지만 날씨가 쾌청했다.
대회를 치르기엔 안성맞춤인 날이었다.
흥겨운 분위기는 선수등록을 마감하는 밤 9시까지 이어졌다.
불안한 마음이 아주 살짝 있긴 했다.
70km, 38km, 20km 경기가 열리는 둘째날 날씨 예보에 '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하영씨는 예보 내용을 자세히 살폈다.
비는 오후 12시부터 5시 정도까지 내린다고 했고, 그 양도 강수량 1mm즈음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껏 장수에 살면서 별 일 없었고, 경기가 치러진 작년과 재작년에도 큰 소란은 없었다.
다음날은 분명 짧은 소나기가 내릴 것으로 추측했다.
박하영씨는 걱정을 지우고 첫날 대회 진행에 집중했다.
다음날 아침 6시 30분, 70km와 '38km-P(38km는 두 코스로 나누어서 진행됐다.
38-J 코스는 출발 시간이 오전 8시였다) 코스 선수들이 경기장에 모였다.
대회장엔 몸을 풀거나 선수 등록을 하거나 대회장에 마련된 간이 부스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시끌시끌했다.
박하영씨의 기분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따질 여유가 없었다.
이윽고 7시가 됐다.
선수들이 출발점에서 뛰어 나갔다.
잠시 시간 여유가 생겨 숨을 돌리고 있었다.
얼마 후 갑자기 CP1에서 소식이 날아들었다.
"보급 식량이 모자라요! 많은 선수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다음 CP로 출발했어요!"
믿어지지 않았다.
박하영씨는 놀란 마음을 안고 어떤 보급품이 얼마나 부족한지 따졌다.
그리고선 읍에 있는 식자재 마트로 가서 바나나, 쌀과자 등의 식량을 쓸어담고 CP2로 출발했다.
CP1로 가기에는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CP로 가면서 음식이 예상보다 빨리 동난 원인을 생각했다.
작년에 치른 대회 때는 보급품이 많이 남았다.
당연히 쓰레기가 많이 발생했다.
당시의 기억을 참고해 CP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를 냈다.
포장지 쓰레기를 줄이느냐, 음식 쓰레기를 줄이느냐! 고민 끝에 음식의 개별 포장지를 뜯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하면 누구라도 남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대회가 끝난 뒤 포장을 벗기지 않은 음식은 기부라도 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음식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방식이 음식 부족 사태를 부른 요인이 됐다(물론 더 넉넉하게 음식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지만). 선수들이 포장지를 뜯지 않은 보급품을 두어 개씩 배낭 주머니에 더 챙겨 넣은 것이다.
그 때문에 후발주자들이 CP에 도착했을 땐 바구니에 음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기온이 낮은 날씨 탓도 있었다.
추위 때문에 체력이 떨어진 선수들은 다음 CP까지 불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평상시보다 더 많은 에너지 보충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 박하영씨는 머리를 싸맸다.
보급 실패를 인정했다.
비바람에 마비 직전까지 간 사무국
CP2에 도착하니 선두권 주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보급품은 넉넉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바나나와 쌀과자, 오렌지, 초코바를 추가했다.
그리고선 바로 CP3로 갔다.
입상권 주자들이 CP를 통과하고 있었다.
CP1에서 모든 보급품이 동난 것을 생각하면 주먹밥 양이 넉넉하지 않을 듯했다.
박하영씨는 부랴부랴 떡집에 전화해 밥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떡집에선 1~2시간 걸린다고 했다.
무조건 빨리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 사이 CP2에서 보급품이 다 떨어졌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CP3에 새로 지은 밥을 가지고 도착했을 때 주먹밥은 부족함 없이 선수들에게 공급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30분 만에 없어져 버렸다.
컵라면, 카스테라 등 대체 보급품을 가지고 CP2와 CP3에 또 올라갔지만, 몇몇 선수는 잔뜩 화가 난 채 산으로 올라간 뒤였다.
그들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폭풍 같았던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정오가 됐다.
날씨 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는 수준이라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오후 2~3시 사이 각 CP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비바람이 강해진 이후부터였다.
"저체온증 환자가 발생했어요!"
"DNF 하겠다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 분들 어떻게 옮기죠?"
상황실은 또 정신없이 돌아갔다.
환자와 DNF 선수가 발생한 곳에 급히 수송차량을 보냈다.
기껏해야 6~7명 탈 수 있는 수송차량들은 한 CP에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
각 CP마다 이동 시간은 편도로 길게는 1시간 정도 걸렸다.
환자와 DNF 선수들은 CP에서 한참 동안 수송차량을 기다렸다.
수송용으로 쓰인 스태프들의 개인 차량은 진흙 범벅이 됐다.
날씨는 점점 더 고약해졌다.
비가 그칠 것이란 예보는 빗나갔고, 기온은 예상보다 더 떨어졌다.
산길은 진흙탕, '뻘밭'으로 변했다.
골인하는 주자들의 신발은 온통 진흙 투성이였다.
코스에서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다친 사람도 있었다.
조치를 취해야 했다.
논개 활공장과 이어진 가파른 코스를 폐쇄하고 '플랜 B'를 가동했다.
가파른 산길을 돌아서 경기장에 들어오게 하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CP에서 변경된 코스를 잘못 알려 주는 바람에 일부 주자들이 다른 길에서 헤맸다.
그 주자들에게 얼른 가서 길을 제대로 알려 주거나 차로 실어 오거나 해야 했다.
비는 점점 쏟아지고 선수들은 갈팡질팡 길을 헤맸다.
스태프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CP6에서 CP7로 출발하는 선수들. 여기서 골인지점까지 14km 정도 떨어져 있다.
CP6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한 선수.
경기장도 난리가 났다.
비바람 속에서 선수나 스태프가 머물 공간이 부족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천막에 가림막을 설치하느냐 마느냐를 갖고 천막 설치 업체와 옥신각신했다.
가림막을 설치하면 바람길을 막아 천막 대다수가 날아갈 가능성이 컸다.
또 경기장에선 천막을 땅에 고정하는 펙을 사용할 수 없었다.
무거운 모래주머니에 천막을 묶어둘 수밖에 없었는데, 그 지지대가 너무 약해 가림막 설치가 불가능했다(바람에 취약하기 때문에). 가림막이 없어도 경기 전날 천막 몇 개가 바람에 날아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박하영씨는 가림막 설치를 하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여러 사건 사고들로 운영팀은 어지러웠고, 스태프 모두는 완주하지 못한 선수와, 기록이 잘못됐다고 따지는 이와 여러 환자와 계속 몰아치는 비바람과 흙탕물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엎친 데 덮치고 또 그 위에 뭔가 또 덮치는 상황이 계속 발생했다.
박하영씨의 멘털은 붕괴 직전까지, 사무국은 마비 직전까지 갔다.
그 와중에 박하영씨는 몇 년전 인터넷에서 본 중국 트레일러닝 대회 기사를 떠올렸다.
당시 그 대회에 참가한 선수 몇몇이 기상악화 때문에 경기 도중 사망했다.
대참사였다! 그 참사가 장수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박하영씨는 경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운영자들과 재빠르게 회의를 한 끝에 각 CP의 컷오프 시간을 단축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경기 중단이나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중단되고 나서도 문제는 계속됐다.
DNF 선수들의 행방이 묘연했던 것이다.
선수 명단을 확인하면서 한 명 한 명에게 전화해 연락이 될 때까지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결국 모든 주자가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고 박하영씨를 비롯해 스태프들은 그제야 마음을 살짝 놓았다.
밤 늦게 '나'를 찾는 전화
(다음부터는 윤성중 기자 이야기) 내가 CP6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저녁 7시 20분쯤이었다.
장안산을 넘어 진흙탕이 된 내리막을 지나 계곡으로 내려왔다.
사방이 깜깜했다.
헤드랜턴을 켜고 가다가 거꾸로 올라오는 스태프와 마주쳤다.
그가 말했다.
"경기가 취소됐어요. DNF 처리될 겁니다.
CP6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조심히 내려가세요."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
얼마 안 가 멀리서 CP6의 불빛이 보였다.
달려서 CP6에 도착했다.
스태프들이 종을 흔들면서 반겼다.
그중 한 명이 스마트폰으로 내 배에 붙은 번호표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DNF 선수 명단을 작성하려는 듯 보였다.
CP6 분위기는 차분했다.
몇몇 선수는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들 모두 아쉬운 표정은 아니었다.
양수열 사진기자와 정유진 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놀랐지만 차분하게 그들을 맞았다.
"오, 왔구나."
그들이 나를 위로했다.
양수열 기자는 내가 다음 CP로 출발하려는 것을 막으려 단호하게 말했다.
"너 DNF래. 더 못 가. 차 타고 내려가자. 컵라면 먹고 갈 거야? 그냥 내려가서 저녁 먹자."
나는 화답했다.
"응, 그래."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왔는데, 정유진 기자에게 장수트레일레이스 운영자 김영록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다급하게 물었다.
"윤성중 기자님 어디 계시죠? 지금 전화가 안 돼요! 아직 산에 있나요?"
정유진 기자가 대답했다.
"아니오, 지금 우리랑 같이 숙소에 있어요!"
나는 이때까지 스태프들이 붕괴 직전인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 생각의 근간에는 이상하게 태평했던 내 주변 상황에 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달렸더라면, 아니면 더 느리게 달렸더라면 저 어지러운 태풍 속으로 휘말렸을 텐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태풍에 휘말린 사람들은 얼마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회 참가 후기 대부분이 호평이었다.
'신속한 경기 중단'이 큰 사고를 막았다는 것이다.
그것보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운영진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회가 열리는 곳이 차량이나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산이고, 그 안에 여러 CP가 설치된 한편 많은 자원봉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산 속에 있는 CP로 여러 음식을 가져다가 나르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선수들은 나름 인식하며 불편하더라도 참고 이해하는 것이 분명했다.
트레일러너라면 체력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들 아닌가? 게다가 어느 도시에서든 가깝지 않은 장수까지 와서 대회에 참가하는 이들이라면 트레일러닝 대회 참가 경력이 어느 정도 있는 실력자들이 절반 이상일 것이다.
이들은 어느 정도 변하는 상황에 대비해 장비를 갖췄고(주최 측에선 선수 등록 전 필수 장비 검사를 철저하게 진행했다.
나는 여기서 두 번 탈락한 끝에 겨우 통과했다.
붕대와 아스피린 등의 긴급구호용품을 장수읍에 있는 마트와 약국, 문구점에 몇 차례 들락거린 끝에 구했다), '이것이 바로 트레일러닝의 묘미'라고 말하는 여유를 갖게 한다.
팀 스카르파의 염주호 선수에 따르면, 일반 마라톤은 클래식 음악과 같으며 트레일러닝은 재즈와 같다.
특히 장수트레일레이스는 쿠바 재즈에 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지역 사람들이 응원단에 참여하는 것에서 그렇다.
트레일러너들은 자신들이 조용한 클래식 음악 감상실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만히 연주자의 연주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끄럽고 지저분한 재즈바에 있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다.
그 속에서 엄청나게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면 대충 넘어가거나 즐기는 것이다.
즉 트레일러너는 즉흥과 변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경기 기간 동안 비바람이 몰아치는 속에서 큰 사고가 없었던 이유는 주최 측의 노력이 크게 작용한 것도 있지만 트레일러너들 각각의 대처가 능숙했고, 한편으론 운이 좋았다.
기분 좋은 DNF
스태프에게서 경기 중단 소식을 듣기 전에 나는 뭔지 모를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깜깜한 계곡이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다.
불꽃이 눈에서도 발사됐기 때문이다.
그 불꽃은 자신감을 원료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지금까지 출전한 트레일러닝 대회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내고 있었고, 체력도 충분히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나의 이때 상황을 두고, '울고 싶은 데 뺨 때린 격'이라고 했다.
이 말이 어느 정도 맞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울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아, 까딱하면 울 뻔했다.
그것은 고통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감격에 의한 것이었다.
나는 달리면서 내내 나아진 실력에 감탄했다.
'와! 작년엔 이러지 않았는데, 몸이 어쩜 이렇게 변했지? 와, 대단하다!'면서. 그 감정은 엄청나게 크게 성장한 나 자신을 마주하면서 증폭했다.
산에서 본 키가 커진 '나'는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저렇게 멋진 것을 진흙탕 속에서 발견할 줄이야! 이처럼 커다랗게 부푼 감정의 풍선을 피니시 지점을 통과할 때 빵 터뜨리려고 했다.
그것이 눈물이 되어 나타날 것 같았다.
그 기대가 그만 CP6에서 '피시식' 꺼져 버리고 말았지만 내 가슴 언저리는 휘발유나 경유 같은 에너지로 가득 차 찰랑댔다.
아주 좋았다.
경기 중단 직후 윤성중 기자의 모습. 비바람과 사투를 벌인 흔적이 역력하다.
9월에 장수에서 100km 대회가 열린다.
또 도전할 계획이다.
(이번 대회 70km 부문엔 500여 명의 선수가 출전했고, 이 중 완주한 사람은 3분의 1에 그쳤다.
)
트레일러닝 대회 70km 코스 필수 장비
비바람 속에서 이 장비들 덕에 살았다!
사진 김준호
트레일러닝 대회 시작 전 참가 선수를 대상으로 장비 검사를 실시한다.
전문가들이 참가자가 챙겨온 물품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체크하는데, 대회 주최 측에서 공지한 장비 목록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참가 등록을 할 수 없다.
장비검사에 통과하더라도 경기 중 CP에서 다시 검사를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빠진 게 발견되면 실격처리될 수도 있다.
대회 주최 측의 꼼꼼한 체크 덕분에 안전하게 경기를 치렀다.
이번 장수트레일레이스 주최 측이 만든 장비 목록표와 내가 실제로 챙긴 장비들을 참고하면 장거리 트레일러닝대회에서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❺ 스카르파 스핀 플래닛
팀 스카르파의 염주호 선수는 이 신발을 8켤레나 신었다고 했다.
그 말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진흙탕과 계곡을 통과하면서 발에 무리가 갈 법했는데, 물집이 심하게 생겼다거나 뒤꿈치가 쓸렸다거나 하는 외상이 없었다.
이 신발을 신고 아주 편한하게 산길을 갔다.
❶ 블랙다이아몬드 스톰라인 스트레치 아노락
자체 방수 소재로 제작된 재킷. 심실링 처리가 되어 있어 효과적으로 비바람을 막는다.
투습 기능도 좋다.
몸의 열기와 땀 때문에 내부에 습기가 찰 수 있다는 우려를 말끔히 지웠다.
움직이는 데 불편함도 없었다.
무게가 가벼울 뿐만 아니라 작게 구겨서 패킹할 수 있어 4L 용량 트레일 베스트에 쏙 들어갔다.
❷ 블랙다이아몬드 스톰라인 스트레치 레인 팬츠
펄럭거리는 이 바지를 입고 산에서 달릴 수 있을까? 살짝 걱정했지만 전혀 문제 없었다.
이 바지가 없었다면 비가 내리고 얼마 안 가 DNF했을 것이다.
방한바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유용했다.
경기 중 진흙탕 위에 몇 번 넘어지기도 했는데, 바지에 진흙이 잔뜩 묻어도 신경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물로 씻으면 금방 지워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❸ 블랙다이아몬드 트레일 하프 핑거
4월 초였지만 한겨울 때처럼 손이 시려웠다.
손가락을 덮지 않은 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이 장갑 마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❹ 블랙다이아몬드 디스턴스 카본 Z 폴
트레킹 폴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오르거나 내리막에서 빠르게 갈 때 큰 도움이 됐다.
내가 쓰는 것은 길이 조절이 되지 않는 것으로 120cm(윤성중 기자 키 171cm) 길이의 폴을 사용했다.
한쪽 무게가 140g이라 들고 뛰어도 큰 무리가 없다.
트레킹 폴이 없었다면 큰 부상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
❻ 응급구조키트
압박붕대와 일회용 반창고, 지혈제(후시딘)와 아스피린 등으로 구성했다.
70km 필수 장비
없으면 페널티 or 실격!
베스트 혹은 벨트
- 트레일러닝용 배낭으로 몸에 밀착된다.
용량 4L 이상이면 된다.
트레일러닝화
- 트레일러닝화 외 일반 러닝화를 신고 경기에 참가하면 실격이다.
물통 1.0L 이상
- 양 어깨 주머니에 들어가는 소프트플라스크(물통) 용량이 500ml다.
개인컵
- 구겨지거나 접히는 컵이면 된다.
이 컵이 등장하기 전까지 CP에선 일회용 컵을 쓰기도 했다.
하이드라팩 스피드컵대회에서 개인컵은 필수다.
이 컵은 접거나 구겨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
아주 간편하다.
방풍재킷
- 방수되는 것이 좋다.
장비검사 시 심실링(방수처리) 처리되어 있는지도 확인한다.
심실링 처리가 안 되어 있다면 불합격이다.
긴팔 상의
- 얇은 것이면 좋다.
긴팔 상의를 챙기면 든든하면서도 유용하다.
방한바지
- 방한바지 대신 레인 팬츠도 허용된다.
방수바지
- 방한바지도 허용되지만 가급적 방수되는 것이 좋다.
장갑
- 손가락을 덮는 것이 좋다.
서바이벌 블랭킷
- 어느 대회 건 필수 장비다.
실제로 경기 중 이 블랭킷을 두른 사람을 많이 봤다.
응급키트
- 붕대와 반창고, 일회용 반창고, 지혈제, 두통약(아스피린) 등으로 구성된다.
약국에서 구할 수 있다.
비상식량
- 에너지젤이나 초코바 등을 따로 한두 개씩 챙겨 놓는다.
헤드랜턴
- 건전지가 충분한 것으로 준비한다.
장비 검사 때 이 사항도 체크한다.
헤드랜턴 보조배터리
- 헤드랜턴은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이를 대비해야 한다.
보조랜턴
- 여분의 헤드랜턴을 하나 더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안전등(점멸등)
- 선수의 등쪽에 부착한다.
깜깜한 산길에서 선수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다.
개인 수저
- 개인 수저까지 체크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좋다.
장수트레일레이스 70km
코스 대부분 금남호남정맥으로 이뤄져
장수트레일레이스 70km 구간 총 거리는 68.5km, 총획득고도 4,565m에 이른다.
이 코스를 19시간에 걸쳐 가야 한다.
천상데미봉(1,020m), 팔공산(1,151m), 신무산(896m), 사두봉(1,014m), 장안산(1,237m) 등 해발고도 1,000m 이상 되는 산을 여럿 넘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오르막이 은근하게 이어지며 대부분 흙길이라 미끄럽기도 하다.
비가 오면 이 산길 대부분이 진흙길로 변하는데, 미끄러워 넘어지기 쉽다.
대회 때는 흰색 리본이 코스 곳곳에 달려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대회가 끝나면 이 리본은 회수된다.
그래도 일반 등산객은 이 길을 비교적 손쉽게 찾아 갈 수 있다.
이 길은 원래 금남호남정맥이기 때문이다.
장안산에서 시작하는 이 능선은 진안 부귀산(806m)에서 끝나며 거리는 65km로 정맥치고 비교적 짧아 많은 등산 마니아들이 찾는다.
이 코스를 19시간 만에 완주하기 위해선 꾸준히 체력을 관리해야 한다.
1~2개월 동안 달리기와 산행을 통해 누적거리 400km 정도를 채우면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식량보급 비상, 저체온증 속출…완주율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