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국립공원 카운트다운 (7)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이자 부산 알피니즘의 요람이다.
대부분의 부산 산악인들이 금정산에서 첫 등반을 배운다.
국립공원 지정을 앞두고 금정산이 키운 산악인들을 새롭게 만나봤다.
이번에 소개하는 이들은 조금 특별하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등반가가 아니라 오히려 이들을 위해, 그리고 부산 산악계를 위해 조용히, 묵묵히 헌신한 이들이다.
처음에는 인터뷰를 고사했지만, 부산등산사를 대표하는 39인 산악인들의 인생을 엮어 <부산 산악인 열전>을 펴낸 바 있는 홍보성 대장이 이들의 등을 밀어줬다.
_편집자 주
"산악행정가는 너무 거창하고 그냥 살림꾼이라고 해주세요."
부산산악포럼 양학술 이사는 자신의 주특기를 '허드렛일'이라며 한껏 본인을 낮췄다.
하지만 그가 있어야 부산산악계가 돌아간다.
20여 년에 걸쳐 부산산악연맹과 부산산악포럼에서 사무국장과 총무이사로서 헌신했다.
양 이사는 경남공고 산악부 출신이다.
첫 산행으로 찾아간 곳이 금정산 북문. 산 위는 추웠다.
오리털 침낭 안에서 동기와 껴안고 잤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북문 공터에 장비가 쭉 펼쳐져 있다.
로프, 카라비너, 미군 야영장비, 줄사다리 등 어떻게 쓸지 감도 오지 않는 장비들이 보였다.
"능선을 넘어가서 무명바위에서 첫 등반을 했어요. 몸에 안자일렌을 하고 리지등반을 했죠. 암벽화도 아니고 운동화여서 다리가 덜덜 떨렸어요. 선배들은 처음엔 50cc, 더 떨면 100cc 오토바이라며 놀렸죠."
2003년 가을 굴갈포리 베이스캠프. 맨 우측 양학술 이사.
그렇게 정신없이 등반을 하고 통과한 암릉을 다시 보니 믿기지가 않았다.
좌우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전축 틀고 놀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무서운 걸 한다니 산악부를 그만둬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묘했다.
무서움의 이면에 묘한 만족감과 승리감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첫 히말라야로 동계 다울라기리 등반을 갔습니다.
굉장한 바람이 불어서 힘든 등반이었죠. 산에 다닌 지 10년도 채 안 됐는데 그저 만년설을 보고 싶다고 철없이 갔죠. 저는 7,000m 조금 못 미치는 위치까지 갔고 우리 대원은 8,024m까지 진출했죠. 같이 갔던 동기는 동상에 걸려서 발가락을 반 마디씩 절단해야 할 정도로 힘든 원정이었어요."
굴갈포리 정면 등반도 했다.
이 원정에선 선등을 맡아 등반했다.
그런데 눈사태가 발생해서 베이스캠프의 텐트와 장비가 다 손실돼 제대로 정상 공격도 못 해보고 원정을 접어야 했다.
베이스캠프를 너무 벽에 가깝게 붙인 욕심 때문이었다.
1986년 12월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에서 스페인 원정대와 함께. 우측에서 3번째가 양 이사.
"선후배들이 좋아서" 20년 봉사
그렇게 등반을 하다가 눈에 들어 덜컥 부산산악연맹 사무국장 일을 맡게 됐다.
그는 "산에만 다닐 줄 알았지 이런 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사무'를 보는 일이 아니었다.
의외로 험하고 힘쓰는 일이 많았다.
연맹 사무실이 6층에 있었는데 행사를 하면 접이식 의자를 들고 6층까지 일일이 날라야 했다.
"등산대회 하면 버스 대절해야 하고, 좌석이 모자라면 렌트카 빌려서 제가 운전해야 하고, 강연회 같은 행사 있으면 장소 섭외해야 하고, 원정 간다고 하면 예산도 집행해야 하고, 행사 열린다고 하면 참석 여부를 알기 위해 80번씩 전화해야 하고, 사무실 잡비들 가령 잉크, 전기, 전화 등 부대비용 얼마나 나오는지 다 체크해야 하고. 뭐 이런 일들이죠. 이걸 혼자 다 하려니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
히말라야 원정 중 히말라야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는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를 만났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걸 20년을 했다.
그는 "선후배들이 좋아서"라고 했다.
좋아하는 이유를 "그냥 고등학교 산악부 출신이라 그런지 선배들을 잘 따르고 후배들은 예뻐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보니 가난했던 시절의 고마움이 그 말의 밑에 깔려 있는 것 같았다.
"공고 산악부잖아요. 그 시절 공고에는 가난한 학생들이 많았어요. 졸업 후 빨리 취직해서 집안 경제에 도움을 주라는 의미죠. 그래서 학교에서 산악예술제 같은 걸 하려고 해도 장비가 없어서 뭘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 밖으로 나갔다.
부산산악계 원로 산악인들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고 직접 찾아가서 장비를 빌려왔다.
평소에 전혀 써보지 못하는 장비들이라 예술제를 마치고도 조금 더 써본 뒤에 돌려주고 그랬다.
돌려주기 직전까지 학교 옥상에서 하강기를 쓰고 나서 반납할 지경이었다.
2016년 서성호 산악인 3주기 추모산행 중 故김창호 대장과 함께 걸었다.
물론 원로 산악인 입장에서는 돈이 없는데도 순수하게 산에 대한 열정으로 자기를 찾아와 등반 기술을 연마하는 이들이 예뻐 보였을 터다.
그래서 그들이 장비를 빌려 산에서 쓰다가 파손되거나 잃어버려도 아무 말도 안 했다.
이때의 기억이 양 이사의 마음에 깊게 남았다.
그래서 아무리 궂은일이더라도 선배들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또 그때 그 선배들처럼 후배들을 위해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20년 넘게.
그는 "산악계를 위해서 한 일들이라 유세 떨 것도 없다"고 짧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저 선배들이 연세가 많아서 다 건강하셨으면 할 뿐"이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렇게 끝까지 그는 자신의 봉사가 당연하다고만 말했다.
경남공고OB산악회
1986 동계 다울라기리1봉 등반
2001~2004 부산산악연맹 사무국장 및 총무이사
2003 랑탕히말 굴갈포리 등반
2008~2019 부산산악포럼 사무국장 및 총무이사
2020~2024 부산산악연맹 감사
2020~2022 부산산악포럼 감사
2023~현재 부산산악포럼 이사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부산산악계 살림꾼…20년 넘게 궂은 일 도맡아 [ 금정산이 키운 산악인 양학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