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국립공원 카운트다운 (8)
조창래 대륙산악회 회장은 부산 등산교육의 대부다.
대륙등산학교와 부산산악연맹 산하 부산등산학교, 그리고 부산등산시민 아카데미까지 총 3곳의 등산학교에서 일반산행과 기술등반을 무려 40년 넘게 가르치고 있다.
그것도 강사비를 받지 않고.
조 회장이 몸담고 있는 대륙산악회는 1958년 창립된 부산을 대표하는 산악회다.
1964년에는 부산일보와 공동으로 제1회 부산등산대회를 개최했고, 부산산악연맹 창립에도 기여했다.
그리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륙등산학교도 1979년부터 운영했다.
"제가 1기 수료생입니다.
이게 지방산악회로는 최초로 무료로 연 등산학교였어요. 대학생 때인데 마침 부산에서 등산학교가 열린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바로 찾아갔어요."
그렇게 암벽을 배우고 난 뒤 그는 활발한 등반을 펼쳤다.
먼저 산서를 통해 알피니즘의 발상지 알프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유럽 3대 북벽과 드류 서벽, 몽블랑 원정을 한 번에 다녀왔다.
팀으로서는 모두 완등했고, 조 회장은 마터호른 북벽과 아이거 서릉, 몽블랑을 올랐다.
열정과 패기가 넘치던 때였다.
대륙등산학교에서 교육생들과 함께 등반을 마친 조 회장.
2000년에는 북미 최고봉 매킨리 원정에 참석, 정상에 올랐다.
그것도 가장 최고령 대원이었다.
새천년을 맞아 한 해에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자는 목표로 결성된 원정이었는데 마흔 넘은 나이에 훈련대에 참석, 선발됐다.
이어 2006년에는 에베레스트 원정을 갔다.
원래는 행정 지원이 주 임무였지만 불타는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래서 7,000m까지 올라갔다.
한계를 한번 시험하고 싶어서 밀어붙여본 등반이었다.
더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다른 정상공격 대원이 등정에 성공해서 충분히 만족하고 기분 좋게 철수했다.
등산은 가능하면 어려워야 한다
그리고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등산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산행에 새롭게 입문하는 시민들이 눈에 들어왔다.
2003년의 일이다.
"부산산악연맹 소속 분들과 4명 정도 모였었어요. 당시 등산이 엄청나게 대중화되던 시대였습니다.
온갖 사람들이 다 산으로 들어오니 무질서해지더라고요. 안전하고, 품위 있고, 예절바른 산악인들을 키워야 하지 않겠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4명이서 만든 것이 부산시민 등산아카데미입니다.
"
제44기 대륙등산학교 수료식에 참여한 조 회장. 앞줄 왼쪽 세 번째.
현재까지 33기 총 1,500명이 이 아카데미를 통해서 산을 배웠다.
기수별 활동도 여전히 활발하다.
무엇보다 전부 무료다.
강사도 재능기부로 가르치고, 학생들도 수업료를 내지 않는다.
수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예절. 등산은 놀이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내면의 세계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기술적인 요소보다 등산예절을 먼저 가르친다.
가령 산행하다가 타인을 앞지를 때 "실례하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정상석은 밟지 말아야 한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거나 휴식을 취하면 안 된다는 등 건전한 등산문화를 위한 기본들이다.
"가장 뿌듯한 건 저한테 교육받은 분이 나중에 강사가 돼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있을 때입니다.
저는 등산을 잘 모르고, 못 하는 분들을 더 좋아해요. 처음엔 배낭도 제대로 못 싸다가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복장이나 옷차림새도 달라지고 변화하는 게 보이거든요. 그럴 때 더 보람을 느껴요."
최고령 대원으로 참여해 북미 최고봉 매킨리를 등정했다.
계속 무상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건 동창회 덕분. 먼저 등산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크고 작게 도와준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손이 모자라면 손을 내준다.
조 회장은 "넘칠 정도로 지원을 해준다"고 했다.
아카데미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대륙등산학교나 부산등산학교는 조금 궤가 다르다.
전문등반가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좀 더 엄하고, 도전적인 기준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스스로에게도 적용한다.
등산은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모토다.
"일본 알프스를 단독 종주한 적이 있어요. 혼자 항공권 발권하고, 대중교통 정보도 검색해서 찾아 갔죠. 여행상품으로 가거나 다른 사람 따라가면 훨씬 편하겠지만 이렇게 가야 직성이 풀려요.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을 더 느끼죠. 가능하면 산행은 힘들게 해야 합니다.
"
단독 일본 알프스 종주 중 기념사진.
산악구조대원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도 산악구조대원으로 약 4년간 일했다.
전국산악구조대 합동훈련 주관, 한일친선교류 구조시범주관 등을 해서 대한산악연맹 우수 구조대원상도 받았다.
한편 조 회장은 20대 초부터 대륙산악회에 가입해 47년간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회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여전히 암벽등반도 한다.
해외원정도 갈 수 있는 난이도면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다.
이유는 산이 인생과 꼭 닮았기 때문이란다.
2006년 에베레스트 원정. 조 회장은 7,000m까지 올라갔다고 전했다.
"인생굴곡이랑 똑같은 것 같아요. 암벽등반을 하다 보면 어려운 부분을 추락하지 않고 딱 뛰어 넘을 때 희열감과 안도감을 느끼죠. 또 바짝 긴장한 채 등반을 마치고 바닥에 닿으면 땅의 소중함이 확 찾아들죠. 그런 순간들 때문에 계속 산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너무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수도 있지만 조 회장은 "다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물론 젊었을 땐 꽤 무리하는 스타일이었지만 나이를 들면서 확 바꿨다.
그는 "한계다 싶으면 절제한다.
그것도 능력"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절제의 미도 모두 산에서 배울 수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1979 대륙등산학교 1기 수료
1986 부산산악연맹 우수 산악인상
1992 유럽 알프스 3대 북벽 및 드류 서벽 원정(한마 유럽 알프스 원정대장)
1994 대한산악연맹 우수 구조대원상
1995 대만 옥산 등정
2000 북미 매킨리 등정
2003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공동 설립
2004 부산산악연맹 공로상
2006 에베레스트 원정
2011~2014 부산산악연맹 부회장, 구조대장, 기획이사
2022 금정대상
현 대륙산악회장,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부산산악포럼 이사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기술보다 등산예절 갖춰야" 부산 등산교육의 대부 [금정산이 키운 산악인 조창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