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일 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 위기는 올해 6월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이어졌다.
정권 교체 직후 내란 특검 정국이 이어지면서 2025년의 캘린더는 유례없이 촘촘했다.
정치·사회적 격랑 속에서도 산업 현장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 관세 전면전, 대형 보안 사고가 한꺼번에 쏟아지며 한국 산업 지형은 이전과 전혀 다른 판으로 재배치되는 한 해를 보냈다.
계엄 사태 이후 정책 기조 전환 속에 디지털데일리는 각 분야 결산을 바탕으로 2025년 한국 산업의 흐름을 종합 정리한다.
<편집자 주> [사진=Pixabay] [디지털데일리 이건한기자] 2025년 인공지능(AI)은 기술, 정책 양면에서 모두 숨가쁜 성장과 변화가 따랐다.
특히 지난해까지 AI가 '사람 말 잘하는 똑똑한 사전' 같은 느낌이었다면, 올해 AI는 추론 역량 강화를 통해 '진정한 생각 파트너'로 진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가 인류를 또 한 단계 발전시킬 AGI(인공일반지능)로 거듭나는 여정이 본격화된 것이다.
다만 이런 AI를 패권 확보와 견제의 도구로 바라본 국제 정세는 한층 냉혹해졌다.
◆ "잠깐, 생각 좀 해볼게"... 추론의 눈을 뜬 AI 우선 올해 AI가 깊이 사고하는 추론(Reasoning) 능력의 고도화는 AI의 고질병이었던 환각 문제와 신뢰성 문제를 완화하고, 국가와 기업의 핵심 시스템 깊숙이 AI가 접목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지난 8월 오픈AI가 공개한 GPT-5와 지난 11월 공개된 구글의 제미나이 3가 대표적이다.
특히 GPT-5는 더 이상 사용자가 질문에 따라 '빠른 답변 모델(Instance)과 '더 좋은 답변을 위한 사고형 모델(Thinking)' 선택조차 고민하지 않도록 자동으로 질문을 분석해 최적 모델과 연결하는 자동(Auto) 기능이 탑재돼 눈길을 끌었다.
단적인 예지만 제미나이 3는 현재 가장 고난이도 학술 문제 해결 능력을 검증하는 '인류의 마지막 시험(Humanity's Last Exam)' 벤치마크에서 37.5%의 정확도를 기록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현세대 AI 기술의 원조 명가인 구글이 절치부심한 끝에 기존 1위 xAI의 그록4(25.4%), 2위 GPT-5(25.3%)와 비교해도 단번에 큰 격차를 만들어낸 사건이다.
이처럼 AI가 점점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정확하게 풀어낼수록 AI에 맡길 수 있는 일도 늘어난다.
이와 관련해 올해 미국이 정부 시스템은 물론, 첨단 국방 영역까지 자국 AI 빅테크 기업들과 협업해 AI 접목에 나선 행보가 특히 상징적이다.
또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AI를 '공동 연구자'로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오픈AI는 “2026년 AI는 인류가 찾지 못한 지식을 발견하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놔 기대감을 더했다.
◆ 코딩의 종말? No! '바이브 코딩'의 등장 AI 모델의 향상된 지식 수준, 추론 성능은 50년 이상 발전한 인류의 코딩(프로그래밍) 패러다임도 한 순간에 바꿨다.
"코드는 잊고 느낌(Vibe)만 챙기라"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의 등장한 것이다.
이는 복잡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인간이 직접 익히고 타이핑하는 대신, AI에게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줘"라고 의도만 전달하면 AI가 직접 코드를 짜고 실행까지 하는 코딩 방식을 의미한다.
현재 대부분의 IT 기업, 디지털 서비스가 코딩을 통해 개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코딩 시간과 노고를 대폭 줄여주는 바이브 코딩의 등장은 말 그대로 파격적인 혁신이었다.
이는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시장 수요도 만들어냈다.
실제 바이브 코딩 선두 서비스 '커서(Cursor)' 개발사 애니스피어의 기업 가치도 올해 1월 26억달러에서 11월 기준 293억달러로 15배나 급증했다.
또한 이 흐름을 타고 AI가 스스로 계획을 짜고 도구를 써서 업무를 완수하는 '에이전트(Agent) AI' 또한 기업 현장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이는 올해 AI가 단순한 질의응답 봇에서 회사의 핵심 솔루션을 개발하는 동지이자, 업무를 대신 처리해주는 사원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세상을 이해하는 AI 로봇, 공장과 일상으로 일상을 공유하는 AI 로봇의 등장도 멀지 않아 보인다.
올해는 화면 속에만 있던 AI들 중 일부는 팔다리를 얻어 현실 세계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들은 인간처럼 현실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눈(Vision)과 두뇌(Brain)형 AI 기술이 탑재돼 이전보다 더 많은 물리적 업무 지원이 가능해진 '피지컬 AI(Physical AI)'라고 한다.
이들 로봇은 현재 물류 창고를 비롯한 일부 공장 업무 투입 논의, 초보적인 격투기가 가능한 스포츠 로봇, 인간과 직접 소통하는 엔터테인먼트 로봇 등으로 세분화되며 발전하는 추세다.
특히 이 영역은 미국에 이은 AI 2인자 중국이 피지컬 AI용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을 담을 '몸(로봇 하드웨어)' 경쟁에서 압도적인 격차를 만들며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한국은 로봇 기술력과 자본 격차 문제로 소프트웨어인 RFM 개발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 중국의 AI 굴기, 쇄국 경쟁이 시작된 글로벌 AI 로봇 하드웨어 외에도 중국은 올해 1인자 미국의 장기인 AI 모델 영역에서도 거센 추격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 1월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는 혜성같이 등장해 당시 오픈AI 최고성능 모델 수준의 AI 모델을 공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는 미국의 중국 AI 산업 제재가 점차 고도화되기 시작한 시점에 일어난 일로 실리콘밸리에 큰 충격을 안겼다.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AI 모델 기술마저 언제든 중국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조성된 것이다.
이에 미국 정부는 한때 중국으로 유입되는 엔비디아의 AI 반도체(GPU) 수출을 전면 차단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미국 기술에 종속되지 않겠다"며 화웨이의 국산 AI 반도체 사용을 강제하는 등, 독자 생존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AI 빅테크들의 기류도 변화하고 있다.
초기 생성형 AI 기술은 오픈소스 문화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AI 기업들은 더 이상 AI 모델 오픈에 관대하지 않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는 'AI 쇄국'을 통한 경쟁 국가 견제가 노골적으로 필요해질 만큼, 더 이상 그들에게 기술 격차에 대한 여유가 많지 않다는 의미다.
◆ 한국과 유럽의 생존법... “독자적 강점으로 G2 틈바구니 뚫어라"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G2 패권 다툼' 가운데 한국과 유럽연합(EU)은 독자적인 생존 역량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주로 압도적인 자본과 데이터를 보유한 미·중과 정면 승부하기는 대신 각자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전략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우선 EU는 AI 기술력은 상대적으로 뒤처지지만 넓은 시장과 강력한 '규제'를 무기로 글로벌 AI 질서의 한 축을 쥐려 하고 있다.
지난 2024년 세계 최초로 포괄적 성격의 'AI 법(AI Act)'을 통과시킨 EU는 올해 일부 법 집행 단계에 들어서며 유럽 시장 공략을 노리는 글로벌 빅테크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 중 EU의 일관된 의도는 중국 시장을 놓친 미국 기업들이 유럽 시장에서 사업하려면 '유럽 기준에 철저히 따르라'는 것이다.
특히 AI 모델의 투명성 강화 주문, 시스템 위험 완화 계획 수립 요구 등은 갈수록 패를 드러내기 어려운 AI 빅테크들에게 유럽 사업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역시 'AI G3(주요 3개국)' 도약을 목표로 민관 원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AI 반도체(HBM 등 메모리 부문) 경쟁력과 자체 LLM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라는 강점을 십분 활용 중이다.
또한 정부는 진흥 중심 AI 기본법 구체화에 서두르는 한편, 규제보다는 기업들의 기술 개발과 해외 진출 독려에 힘을 실었다.
나아가 제조·통신·금융 등 기존 산업에 AI를 접목하는 'AX(AI 전환)' 속도전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원천 기술력과 중국의 가격 경쟁력 사이에서 한국 특유의 우수한 제조업 기반, 데이터를 응용한 AI 서비스와 국산 AI 반도체 시너지 등을 통해 독자적인 풀스택 AI 생태계 구축 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도 당당히 어깨를 겨룰 만한 특화 영역을 개발한다는 실리적 접근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2026년은 결국 미·중의 고래 싸움 가운데 제3의 국가들이 얼마나 독자적인 AI 기술 주권과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판가름 나는 해가 될 전망이다.
[2025결산/AI] 기술·패권·주권... 복잡한 셈범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