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을 보며 21세기 초반을 지배한 이 위력적인 히어로 프랜차이즈를 떠나보낼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마블 영화와 작별을 고하는 마음으로 ‘나의 <보이후드>를 떠나보내며’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아 글도 썼다.
물론 그 후로도 마블 영화가 나오는 대로 직업적 의무감에 체크는 했지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한 가지 예상 못했던 건 속도다.
예고된 몰락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가라앉을 줄은 몰랐다.
마치 잘못된 시대에 표류한 것 마냥 길을 잃은 행보를 보며 새삼 영화와 시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피어난다.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21세기 영화산업의 산물이다.
안정적인 속편을 갈망하는 할리우드 프랜차이즈는 CG라는 선택지를 만나 새로운 이야기 창고를 발굴하기에 이른다.
기존의 기술로 구현하기 힘들었던 만화적 상상력은 컴퓨터그래픽의 ‘그리는 영화’의 시대가 도래하여 비로소 빛을 얻었다.
이후 이 안정적인 모델이 예상하지 못했던 경로로 접어들며 또 한번 상황이 바뀐다.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단순 프랜차이즈 처럼 각각 이어지는 속편에 그치지 않고, 거대 하게 연결된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한다.
이윽고 한편의 영화가 더이상 한편으로 끝맺음 짓지 못하게 되자, 정보의 축적이 주는 재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으로 쌓여갔다.
바야흐로 영화가 에피소드화 되고 시리즈가 영화를 닮아가는 시대, 콘텐츠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 한가운데에서 있다.
한편 영화산업의 지형 변화에 맞춰 극장 역시 빠르게 변화 중이다.
단지 ‘극장에 사람이 없다’ 는 관객의 축소, 극장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복합문화공간에 간 김에 영화를 보는, 멀티플렉스 시대가 저물어간다.
이제 ‘영화를 본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관객들을 공략해야 하는 상황이며 근래 예술영화, 재개봉 영화의 약진이 이를 증명한다.
또 다른 돌파구는 불특정 다수 에게 ‘극장에 가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과거엔 블록버스터, 21세기엔 콕 집어 히어로영화가 그 기능을 어느 정도 수행했다.
이젠 마블 영화라는 이유로, 또는 의무감에, 또는 이제까진 본 내용들이 아까워서 마블 영화를 찾아 보는 사람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의 저조한 성적은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썬더볼츠*>가 혹평과 함께 외면 받는 걸 보니 확실히 시대가 바뀌 었음을 절감한다.
5월8일,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가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침체된 영화산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경쟁력 확보 방안이라고 하는 데, 이로써 국내 영화업계는 CGV와 함께 양강 체제로 재편될 전망이다.
이번 변화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아직 짐작하긴 어렵지만 상황이 바뀌었으니 응당 판도 바뀌어야 한다.
<썬더볼츠*> 중 은퇴 당한 퇴물 히어로 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은 방황하는 옐레나(플로렌스 퓨)를 붙잡고 말한다.
“달아나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아.”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그저 잠시 길을 잃은 사람이지만 멈추면 그걸로 끝이다.
2025년의 한국영화계 역시 잠시 숨 고르기 중일 따름이니 우리가 기어이 돌파구를 찾아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그 길이 단순히 규모를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극장에 올 각각의 이유를 만들어줄 불씨로 번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Not Super, Not Giving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