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발언은 국회‧법정 ‘증언’과 같은 무게
● 대선 후보 허위 발언에도 ‘무죄추정 원칙’ 챙긴 2심
● 맥락 무시하고 발언 5개로 잘라 찾아낸 무죄
● 대법원 “유권자 기준으로 공표된 발언 의미 해석”
● 공직선거법상 허위 발언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위증’
● 국민이 무죄라 믿어도, 법과 규칙에 따라 판결해야
조희대 대법원장이 5월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며 입술을 다물고 있다.
공동취재단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김문기(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 1처장) 관련 발언 중 골프 발언 부분과 백현동 관련 발언, 피고인의 공직 적격성에 관한 선거인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중요한 사항에 관한 허위사실의 발언이라고 판단되므로 후보자의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허용될 수가 없습니다.
”
5월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에 대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발표한 선고 취지 요약문 중 한 대목이다.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발언”과 “백현동 부지 선정에 관해 국토교통부 협박이 있었다”는 발언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죄에 해당하지 않으며 무죄라는 2심 판결을 파기한 것이다.
1심에서 유죄로 판단된 부분이 모두 유죄로 확인됐으니, 원칙적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량이 동일하게 나와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이 후보의 출마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민주당은 지난 대선 비용 국고 환수를 걱정할 처지에 놓인 셈이다.
민주당은 ‘사법 쿠데타’가 벌어졌다며 대법원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불과 한 달여 전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인용했을 때 민주당의 태도는 어떠했던가. 판결문을 두고 ‘천하의 명문’이라며 환호했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다른 기관이지만 사법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헌재에 환호했던 민주당이 대법원에 분개한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법원 판결 앞에서조차 ‘내로남불’이 끊이지 않는 현실이 다른 각도에서 확인되고 있을 따름이다.
정치가 하루아침에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국민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일지 모른다.
그러자면 이번 대법원 판결의 쟁점이 무엇인지, 왜 고등법원의 무죄가 뒤집힐 수밖에 없었는지, 고등법원뿐 아니라 이번에 반대 의견을 제시한 두 명의 대법관이 주장하는 논리의 허점이 무엇인지, 국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은 바로 국민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발언 잘라서 무죄 추정하다 보면 사실과 멀어져
1심 유죄, 2심 무죄, 대법원 유죄. 이 스펙터클한 법정 드라마에서 핵심 쟁점은 ‘선거 후보자의 발언을 해석하는 기준이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1심과 대법원은 선거 후보자의 발언이 ‘국민’ 혹은 ‘유권자’를 향한 것이라는 전제하에, 법원 역시 유권자의 시각에서 그 발언을 이해해야 하며,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무죄를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그 핵심 주장을, 판결문을 통해 읽어보자.
“발언의 의미를 확정할 때는 사후적으로 개별 발언들의 관계를 치밀하게 분석‧추론하는 데에 치중하기보다는, 발언이 이루어진 당시의 상황과 발언의 전체적 맥락에 기초하여, 일반 선거인에게 발언의 내용이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기준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특정된 하나의 주제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행해진 일련의 발언 내용이 흐름상 특별한 주제 전환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연결된 발언 전부의 내용이 일반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공표된 발언의 의미를 해석하여야 한다.
”
너무도 상식적인 이야기다.
선거운동 기간 후보자는 유권자를 상대로 발언하고 선거운동을 한다.
그러므로 후보자의 발언은 유권자의 눈높이, 아니 ‘귀높이’에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당연한 점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이 정반대의 해석론을 택했기 때문이다.
2심은 보편적·평균적 유권자가 아니라 법원의 관점에서 후보자의 발언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 후보의 백현동 발언을 총 다섯 개의 부분으로 쪼갠 후, 그 각각이 사실에 관한 기술인지 단순한 의견 표명이나 해석인지 등을 따져, 결국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을 마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대화는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
대법원은 그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연결된 발언의 내용을 사후에 인위적으로 분절한 다음 각 구간의 개개 발언을 구분하여 각각의 의미를 파악하고, 다시 각각의 의미를 합치거나 재조합하여 연결된 발언 전부의 의미를 새기는 것은, ‘하나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발언의 의미’를 일반 선거인이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
2심의 판사들, 그리고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반대의견을 낸 이흥구, 오경미 재판관에게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리, 혹은 ‘무죄추정의 원리’라 부르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상, 이 후보의 발언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가 아니라고 볼 수 있을 때까지, 그의 발언을 쪼개고 쪼개는 일이 가능하며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거기에는 큰 맹점이 있다.
법원이 피고인의 발언을 토막토막 쪼개서 ‘무죄’로 만드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법원이 피고인의 발언을 토막토막 쪼개서 ‘유죄’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옳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법원이 국민의 말을 정상적인 의사소통 상황이 아닌 어떤 가상의 단어 맞추기 퍼즐로 만들어버린 후 재판하는 일이 허용된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
군사독재 시절 벌어졌다고 알려진 한 에피소드를 떠올려 보자. 대학생을 반공법 위반으로 잡아넣기 위해 취조하는 경찰이 종이 한 장을 내밀고 ‘김치’, ‘일본’, ‘성냥’, ‘만두’, ‘세금’을 쓰라고 강요한다.
학생이 종이에 그 단어를 적자 경찰은 앞 글자만 쭉 따서 '김일성 만세'를 만들어내고는, ‘너는 김일성 만세라고 썼다’며 학생을 고문하여 자백을 받아냈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교훈은 분명하다.
법은 우선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피고인에게 이익이냐 손해냐를 따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
사람의 말은 맥락 속에 존재하며 그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설령 피고인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누군가의 말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용납될 수는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피고인의 이익’은 ‘법원이 거짓말을 용납하는 세상’의 신호로 여겨질 수밖에 없고, 결국 ‘국민 전체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직선거법상 허위 발언, 표현 아닌 증언
고등법원과 소수의견이 근거로 삼는 또 하나의 대의명분이 있다.
‘표현의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공정하게 하기 위해 판결문에서 반대의견의 핵심 대목을 인용해 보자.
“다수의견은 김문기 관련 발언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는 정도는 그 표현의 주체와 대상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공직을 맡으려는 후보자가 자신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공표하는 국면에서는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더 제한될 수 있다는 법리를 선언하였다(이하 ‘후보자 발언 제한 법리’라 한다). 일반인보다 후보자의 발언이 갖는 파급효과나 선거인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이유로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선거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 헌법 체계와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법리이므로 이에 동의할 수 없다.
”
원론적으로 옳은 말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표현의 자유’란 기본적으로 국가와 사인(私人) 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김수영이라는 사람이 사적인 시공간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쳤다고 해보자. 비록 대한민국은 여전히 북한과 적대관계를 이루고 있으나, 김수영이 ‘김일성 만세’를 외칠 자유는 있어야 하며, 그 자유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 후보가 국민이 듣는 것이 전제된 발언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필자는 공직선거법상 허위 발언 처벌 문제는 ‘표현의 자유’가 아닌 ‘위증’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선거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심판관’으로 삼아 그 앞에서 후보자들이 평가, 즉 재판을 받는 자리에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선거란 무엇인가. 전체적으로 보면 민심의 선택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지만, 후보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의 인생, 정책, 지향 등을 드러내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과정이다.
이는 누군가가 일개 자연인으로서 자기 생각을 밝히고 드러내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일이다.
선거 후보자로서 등장하는 방송 등 공식석상은 한 사람의 시민이나 학자로서 발언하는 무대가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국회나 법정에서의 증언 등과 더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2015년 1월 당시 성남시장이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오른쪽)가 뉴질랜드에서 찍은 사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이 후보 왼쪽),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왼쪽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이기인 개혁신당 최고위원 제공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한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국회나 법원에서 증인 등에게 선서를 요구하고 거짓이 있을 경우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 후보 발언의 중요성은 그런 경우보다 크면 컸지 작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야솅 황(Yasheng Huang)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경제학과 교수도 2016년 “대통령 후보의 진실 서약(A Presidential Truthfulness Oath)”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대통령 후보들이 TV 토론에서 버젓이 거짓말을 하도록 용납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해로울 수밖에 없으니, 그들이 토론을 앞두고 선서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모든 국민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반드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주장, 심지어는 허위사실을 이야기할 권리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진실을 말해야 할, 진실만 통용되어야 할 상황과 맥락이 분명히 있다.
곧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몇 명의 사람이 미디어를 통해 온 국민에게 그들의 생각과 뜻을 밝히는 자리라면 분명히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로 옹호하는 것은 법질서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며, 결국 표현의 자유 그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법원은 민의보다 원칙에 따라야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어쩌면 가장 중요한 논점이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반대의견을 개진한 이홍구 대법관은 그에 대한 보충 의견을 통해, 다수의견이 “피고인의 발언이 본질적으로는 그 취지가 잘못되지 않았음에도 구체적인 사실에 관한 주장이 다수의견이 확정한 의미와 다르므로 형사처벌 할 수 있다고 한다”며 “민주주의 정치의 공론의 장을 허물 수도 있는 위험한 해석으로 연결될 수 있으므로 민주주의 수호를 사명으로 하는 법원이 지향할 방향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대법관은 이 후보의 발언이 애초에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하지만 그 차이를 전제하더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과연 법원의 사명이 “민주주의 수호”일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법원의 역할은, 때로는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민주적’으로 죄인이라 보는 누군가라 해도 그를 유죄로 볼 증거나 법조문이 없다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법원의 판단은 대중의 편견과 다를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단호하게 달라야만 한다.
상당수의 국민이 무죄라고 믿거나 무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피의자에게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
그렇게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법원이 있을 때, 민주주의 역시 비로소 정상 작동 가능해진다.
대선 후보의 허위사실 발언, ‘표현의 자유’ 아래 허용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