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주 칼럼] 美 정보기관의 ‘오피셜’과 ‘뇌피셜’로 진단한 김정은의 속내
● 트럼프 2기 행정부 첫 보고서에 나타난 김정은 평가
●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 강화, 중국 의존도 감소에 치중
● 북방한계선 무력화 위한 해상 도발 감행 가능
● 파키스탄, 인도 같은 핵강대국 지위 받으려 할 것
● 시나리오별 북한 대응책, 대러시아 전략 촘촘히 짜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직후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들의 훈련기지를 방문하고 종합훈련을 지도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미국 국가정보국(DNI)이 3월 25일 33쪽 분량의 ‘2025 미국 정보공동체의 연례위협평가(Annual Threat Assessment of the U.S. Intelligence Community)’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 국가정보국은 18개 미국 정보기관의 수장 기구다.
다양한 정보보고를 취합해 미국 대통령과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제공한다.
  연례위협평가에는 국내외 다양한 위협에 대한 미국의 중장기 전략은 물론 현안 해결에 필요한 정세 판단이 담겨 있다.
보고서 내용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책결정자의 두뇌를 지배할 수도 있고, 고위 정책결정자들의 인식이 보고서 내용을 상당 부분 지배할 수 있다.
그래서 보고서는 미국 대외정책의 현재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창이다.
물론 공개하고 난 후 관련국의 지도자, 전략가들이 실시간으로 열람하기 때문에 보고서에는 은폐와 기만의 의도가 담겨 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11월 당선 직후 하와이 출신 하원의원인 털시 개버드(Tulsi Gabbard)를 국가정보국 국장으로 임명했다.
개버드 국장은 하원의원 시절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 이행을 지속적으로 촉구했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직접 대화를 지지한 바 있다.
  3월 25일 발간된 2025 연례위협평가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낸 첫 번째 보고서여서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18개 정보기구 정보와 트럼프의 대외 인식을 융합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평가가 한몫했다.
정보기관들의 객관적 정세 분석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위협 인식, 정세 인식이 녹아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예년보다 더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2025 연례위협평가 내용은 바이든 정부의 보고서와 프레임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트럼프 정부의 대외 위협 평가와 대응이 극적 변화보다는 이전 정부 정책과 연속성을 담보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익을 직접 위협하는 국가로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을 적시했고, 위협 능력 크기 측면에서 중국을 가장 주목했다.
마약, 초국가적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초국가적 범죄단체들을 ‘비국가 위협 세력’으로 규정해 위협 정도를 평가한 점은 눈에 띈다.
  우리가 면밀히 살펴볼 지점은 한반도 관련 내용, 특히 김정은에 대한 평가다.
우리 체제의 안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고서 내용은 ‘북·러신조약 체결’ 등 팩트를 중심으로 한 오피셜 분석과 분석기관의 주관적 정서를 반영한 ‘뇌피셜(뇌+오피셜·자기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일컫는 말)’로 구성돼 있다.
이 보고서 내용을 오피셜과 뇌피셜로 나눠 소개한다.
  2월 1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가정보국장으로 임명한 털시 개버드(가운데). 뉴시스 오피셜 평가 4가지와 비관적 뇌피셜 평가 김정은 체제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오피셜’ 평가 구조는 △전략 목적, △전략 조정, △조정 평가, △변화 전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정은은 현상 유지보다 변화를 전략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전략 조정과 재래식 군사력 증강을 도모하고 있다.
둘째, 전략 조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김정은 체제의 의존도를 감소시키는 데 있다.
러시아와 협력을 통해 군사적 측면은 물론 재정적 지원을 담보하고, 궁극적으로 핵보유국을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
셋째, 조정 평가 결과를 통해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북한 경제에 대한 국가 공급 능력을 회복하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감소시켜 외부 간섭을 줄이려 하고 있다.
넷째, 변화 전망과 관련해 김정은 체제가 핵 보유를 스스로 폐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울러 미국 정보 당국은 동맹국들이 △북한 체제 약화, △북한 주권과 권력 붕괴, △핵능력 증강 방해를 시도할 경우 김정은이 군사력을 사용해 도발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서 상정한 군사력에는 핵무기 사용까지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북측이 전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북방한계선을 무력화하려는 해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국가정보국이 3월 25일 공개한 2025 연례위협평가 보고서. 미국 국가정보국 홈페이지 2025 연례위협평가는 “김정은이 그동안 추구한 전략적 목적을 실현(enable)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김정은 체제가 처한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직격하고 있다.
미국 정보 당국 분석가들은 “김정은 체제의 오피셜 전략들이 북한 주민의 희생을 토대로 하고 있다”면서 몇 가지 도전 요소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체제 유지 실태와 전망에 대해 비관적 뇌피셜을 감추지 않고 있다.
보고서는 △체제 내부의 만성적 식량난, △점증하는 범죄로 인한 사회질서의 와해, △북·중 관계 악화에 따른 부작용 등이 김정은 체제 유지를 힘들게 하는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사회질서 와해(eroding civil order)”라고 분석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최근 통일부 등 우리 정부 당국과 북한 전문가들은 탈북자 증언을 바탕으로 “북측 체제 내부에서 ‘노동당의 권위’가 현저하게 약화하고, ‘장마당의 힘’이 반비례적으로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다”면서 북한 체제의 내구력이 약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통일부 당국의 주장은 대중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진 못했지만 필자를 포함한 국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노동당, 장마당’이라는 북한식 양자 체제가 북한 체제의 미래를 진단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는 주장을 미 정보 당국이 수긍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이 봤다면 뜨악했을 내용이다.
  33쪽짜리 2025 연례위협평가 보고서는 기밀 문서가 아니다.
인터넷에 공개돼 누구나 볼 수 있다.
북측 전략가는 이 문서를 읽고 또 읽었을 것이고, 김정은 또한 그 내용을 보고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정은은 미국 정보 당국의 오피셜 분석 내용 중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실현돼 가고 있다”는 분석에 크게 만족할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뇌피셜을 토대로 김정은은 다음 몇 가지 방향으로 후속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에 대한 김정은의 후속 조치 전망 첫째, 핵보유국 지위를 확고하게 인정받는 대외전략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트럼프와 직접 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와 직접 대화 기회를 성사시키는 자체가 ‘핵보유국 인정’ 목적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것이다.
핵 질서를 위한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따라 북측이 공식적 핵보유국이 될 수 없지만 미국으로부터 파키스탄, 인도와 같은 실질적 핵 강대국 지위를 받는 대미 행보를 보이려 할 것이다.
‘핵보유국끼리 대화하자’는 북·미 핵군축 회담을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도전 요소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다.
외부 사조가 북측에 유입되는 것을 더욱 철저히 활용하려 할 수 있다.
탈북자와 탈북자 가족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가혹해지고 체제 단속용 정치 숙청도 잦아질 것이다.
장마당 경제에 대한 대대적 단속, 주민들의 사적 경제활동에 대한 단속, 공포정치가 심화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폐쇄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소리(VOA)’가 폐쇄 위기에 있다.
미국의 소리는 미국 연방정부 산하 독립 기구인 USAGM(옛 BBG)에서 운영하는 국제 방송이다.
김정은은 미국의 소리 중단 상황을 자신의 전리품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미국의 소리 중단은 김정은과 북측 주민에게 나쁜 메시지를 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셋째, 서해 북방한계선에 대한 ‘치고 빠지기식 비대칭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미 정보 당국이 예상한 만큼, 미국이 이에 전면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리라 오판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연평도 포격, 천안함 도발 당시 우리가 대응하는 과정을 학습하며 북측은 보복 범위에 대한 한미 간 미묘한 입장차를 인식하고 있다.
  넷째, 북·중 관계를 더는 손상시키지 않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강구할 것이다.
1315㎞에 이르는 긴 국경선과 중국에 대한 북한 주민의 전통적 정서를 고려할 때 북·중 관계 악화를 방치하는 것은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인식할 것이다.
김정은은 중국과 소련의 분쟁 당시 김일성이 추진한 중국과 구소련에 대한 등거리 외교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감춰진 내용으로 ‘뇌피셜’ 발휘할 때 우리에게는 보고서에서 공개된 내용보다 감춰진 내용이 더 중요하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논의된 내용과 관점을 온전히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정부 기관과 미국 정보기관 간에 정보 신뢰가 확보돼야 한다.
‘민간국가 지정’ 논쟁과 관련한 상황을 보면 우리가 만족할 만한 정보 신뢰가 구축돼 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보 당국의 해명성 주장에도 불구하고, 한미 정보기관 간 정보 신뢰 구축을 위한 더 많은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북한 체제와 관련한 의미 있는 정보 공유가 절실하다.
  아울러 보고서에 공개된 내용에 대한 대응책을 시나리오별로 마련해야 한다.
첫째, 미국이 북한 당국을 파키스탄 또는 인도처럼 핵보유, 핵강대국으로 인정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둘째, 서해에서 치고 빠지기식으로 이뤄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를 더 촘촘하게 짜야 한다.
셋째, 북·러 관계를 극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한 대러시아 전략을 짜야 한다.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가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경공업 제품 공급 잠재력을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해 한·러 관계를 러·우 전쟁 이전으로 복원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넷째, 트럼프 행정부에 ‘미국의 소리’를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협의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4월 4일 김정은은 특수작전부대를 시찰하고 싸울 준비를 강조했다.
이 부대는 특수작전 종합전술훈련과 저격을 전문으로 하는 훈련 부대다.
“김정은 체제가 한반도 역내의 현상을 바꾸려는 목적을 갖고 있고, 그것이 실현되고 있다”는 분석가들의 평가가 우리 정치인들에게 경고음이 되기를 바란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김정은의 ‘2025버전 북한 체제 지키기’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