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오그래픽] 5월 러시아 전승절에 김정은-푸틴-시진핑 나란히?
● 2024년 러시아 방문 北 주민, 전년 대비 12배
● 러 첨단 군사기술 지원받아 북한군 현대화 추진
● 김정은, 푸틴 전용기로 모스크바 전승절 참석 가능성 ↑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가운데 왼쪽)이 3월 15일 평양을 방문해 최선희 외무상(가운데 오른쪽)과 회담하고 있다.
뉴스1
북한과 러시아는 2024년 6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대한 조약’ 체결을 계기로 전 분야에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러시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러시아를 방문한 북한 주민은 1만3221명으로 전년 대비 12배 급증했으며,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인도 6469명으로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북·러 밀착의 현주소다.
의료·과학 등 부문별 협력 논의 활발
최근에도 전설룡 부상 등 북한의 보건성 실무대표단이 3월 17일 러시아를 방문해 의료 분야에서 협력을 협의했다.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에 따르면 북한 대표단의 방러를 통해 양측이 “평양 병원들의 여러 업종 의사들이 계속 실습을 진행한다”는 데 합의했으며, 러시아는 “조선제약 현대화”와 “현대적인 항생제 생산 계획 실현”에 협조하기로 했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2020년 3월 평양종합병원을 착공했지만 대북제재 등의 영향으로 올해 10월에야 개원을 앞두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올해 강동군 등 3개 군의 병원 건설을 시작으로 내년부터 ‘지방발전 20X10 정책’에 발맞춰 매년 20개 군에 병원을 순차적으로 건설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북한 보건성 대표단의 방러를 통해 평양종합병원 등에 러시아가 의료 기자재를 지원하는 문제 등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같은 날 북한의 윤정호 대외경제상도 북·러 정부 간 ‘무역경제 및 과학기술협조위원회’의 북측 위원장으로서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지난해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11차 정부 간 위원회에서 합의된 사항을 점검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에너지·보건·교육·농업·관광 등 부문별 회담을 개최했다.
대표단에 포함된 북한의 실업계 인사들은 정부 회의 일정 외에 러시아의 기업과 과학연구소를 참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협상이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이 3월 15일 평양을 방문해 최선희 외무상과 김정규 외무성 부상을 차례로 만나 회담을 진행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양측이 지난해 6월 북·러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합의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대한 조약’의 정신에 맞게 “쌍무 교류와 협조를 적극 추동하고 국제 무대에서 호상 지지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실천적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토의하고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 보도했다.
러·우 전쟁 휴전 동향과 북한군 포로 등 최근 변화된 상황을 반영한 양국 관계 발전 방안이 논의됐을 개연성이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 20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 참관 하에 ‘최신형 반항공(지대공)미사일 무기체계’의 종합적 전투성능검열을 위한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뉴스1
북·러 군사 협력도 가속화
북·러 간 군사협력도 가속화하고 있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이 올해 1∼2월 러시아에 3000명 이상의 병력을 추가 파병했으며,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170㎜ 자주포, 240㎜ 방사포 등을 지원했다.
파병 초 전투력에 문제가 있던 북한군은 최근 현대전에 빠르게 적응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세에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 북한군이 쿠르스크 전장에 처음 투입됐을 당시 우크라이나군의 쉬운 표적이 됐지만 올해 2월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러시아는 북한군의 지원을 활용해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군의 기습으로 상실했던 쿠르스크 지역의 95% 이상을 회복했다.
3월 19일 러시아 타스통신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부상당한 러시아 병사 수백 명이 북한 의료시설에서 재활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주러시아 북한대사관에서 열린 ‘소련·북한 경제문화협력협정’ 체결 76주년 리셉션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며 “북·러 관계의 형제적 성격을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도 2월 러시아 매체 ‘로시스카야 가제타’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다친 러시아군 수백 명이 북한 요양원과 의료시설에서 회복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동향이 러·우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습득한 현대전 경험을 북한에 전수하는 등의 군사협력을 은폐하기 위한 시도일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더 큰 우려는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이 북한으로 이전되고 있을 가능성이다.
이미 관련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 미사일총국은 3월 20일 군수공업기업소에서 김정은 위원장 참관하에 본격 생산에 들어간 ‘최신형 반항공(지대공)미사일 무기체계’의 종합적 전투 성능 검열을 위한 시험발사를 진행했다.
김 위원장은 “자랑할 만한 전투적 성능을 갖춘 또 하나의 중요 방어무기체계를 우리 군대에 장비시키게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발사한 지대공 미사일은 ‘북한판 패트리엇(PAC)’으로 불리는 ‘별찌-1-2형’으로 유엔 대북제재 위반에 해당하는 탄도미사일은 아니지만 첨단기술과 고도의 제작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북한이 자체 개발할 수 있는 쉬운 무기체계가 아니다.
‘별찌-1-2형’은 러시아의 최신형 지대공 미사일 S-400 개량형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기술지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 주장대로 첨단 지대공 미사일이 본격 생산 단계에 접어들었다면 우리 공군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북한이 조기경보통제기를 공개한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관영 매체들은 3월 27일 김 위원장이 ‘무인항공기술연합체’와 ‘탐지전자전연구집단’을 지도했다는 소식과 함께 공중조기경보통제기로 추정되는 기체에 탑승해 간부들에게 지시하는 사진을 보도했다.
이 항공기는 고려항공이 보유하고 있던 러시아제 일류신(IL)-76 수송기를 개조해 레이돔(radome)을 올린 형상이다.
레이돔은 항공기 외부에 부착한 레이더 안테나의 방수·방진용 덮개이며, 러시아 역시 동일한 항공기를 활용한 A-50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운용해 왔다.
중국과 인도의 경우도 일류신(IL)-76에 레이돔을 올린 형태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기반 기술이 러시아의 A-50이다.
북한 공군의 전투임무기는 810여 대로 숫자상 남측에 비해 2배 규모에 해당하지만 6·25전쟁 때 사용된 미그(MiG)-15, 미그-17 등 노후 기종까지 운용하고 있을 정도로 열악한 공군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북한이 자체적으로 제작해 운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러시아의 기술지원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 해군 현대화 과정에도 러시아의 군사기술이 이전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3월 8일 ‘핵동력 전략유도탄 잠수함’, 즉 핵추진 전략유도미사일 잠수함 건조 현장을 시찰했다.
현재 핵추진잠수함을 자체 건조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에 불과하다.
미국과 영국은 2021년 호주와 오커스(AUKUS) 동맹을 맺어 호주의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돕기로 결정했다.
핵추진잠수함 건조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의 전폭적인 기술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호주가 자체 건조한 핵추진잠수함의 첫 진수 시기는 2030년대 중반이다.
핵추진잠수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잠수함용 원자로는 작고 효율적이며 수중에서 방사선 피폭 없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고도의 차폐 기술이 적용돼야 한다.
북한 자체 기술로 잠수함용 원자로를 근시일 내 완성할 수 있다는 가정은 비상식에 가깝다.
북한이 공개한 핵추진잠수함은 5000~8000t급으로 추정되는 대형 선체라는 점에서 자체 건조 능력에도 의문이 있다.
북한은 1970년대 중국의 지원을 받아 1800t급 구형 로미오급을 건조한 바 있으나 선진 기술이 적용된 대형 잠수함을 건조한 적이 없으며, 조선업도 열악한 상황이다.
2023년 로미오급을 개조해 진수시킨 북한의 전술핵공격 잠수함인 김군옥함은 지금까지도 정상 운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외부의 기술지원 없이 자체로 대형 핵추진 잠수함으로 건조하기는 어렵다.
결국 러시아의 기술지원을 의도한 행보일 개연성이 있다.
북한은 2024년 12월 위상배열레이더를 장착할 것으로 보이는 5000t급 신형 구축함을 공개한 바 있다.
공개된 구축함은 함대지, 함대공, 함대함 공격 능력을 갖춘 최신형의 외형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의 최대 수상 전투함은 현대전에 어울리지 않는 구형 1800t급 나진급 호위함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해군력 현대화를 위해 최근 건조한 호위함인 압록급과 두만급도 1500t에 그친다.
북한이 자체로 첨단 위상배열레이더를 장착한 대형 전투함정을 건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기술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사실상 핵무기를 손에 쥔 김정은 정권이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을 지원받아 북한군을 현대화할 경우 우리의 재래식 전력 우위를 상쇄할 수 있게 된다.
북·러 신냉전 외교를 통해 김정은 정권이 노리는 바다.
러시아 전승절 계기, 김정은 방러 가능성
북·러 관계가 밀착하는 가운데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3월 17일 안드레이 루덴코 외무차관이 북한을 방문하는 동안 “고위급 및 최고위급 정치 접촉 일정을 포함해 양자 관계 발전의 현안에 대해 철저히 의견을 교환했다”고 언급했다.
‘최고위급 정치 접촉’은 북·러 정상회담을 의미하며 지난해 6월 푸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는 점에서 올해 김 위원장의 방러 일정을 협의했을 개연성이 있다.
루덴코 차관의 방북에 이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쇼이구 안보서기가 3월 21일 평양을 방문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3월 27일 러시아 타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루덴코 차관은 ‘러시아와 인도-양국 관계를 위한 새로운 의제’ 콘퍼런스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러시아를 방문하며, 방문 내용, 시기, 프로그램에 관해 협상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지난해 6월 방북 당시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초청한 바 있으며, 김 위원장 방문 시기와 장소는 5월 모스크바 방문설이 유력한 상황이다.
5월 9일은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80주년이며, 러시아는 코로나와 러·우 전쟁 등으로 몇 년 동안 중단됐던 열병식을 대규모로 개최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중국 시진핑 주석을 포함해 러시아에 우호적인 여러 국가의 정상들을 초청했으며, 북한군도 열병식에 초대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2019년과 2023년 두 차례 러시아를 방문했지만 모두 극동 지역이었으며, 모스크바를 방문한 적은 없다.
김 위원장이 오는 5월 9일 러시아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할 경우 푸틴 대통령 및 시진핑 주석과 함께 나란히 주석단에 자리하는 모습을 연출해 정치적 상징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러·우 전쟁의 장기화로 전쟁 피로감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에 누적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주도의 휴전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조기 종식을 위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묵인 및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유보 등 푸틴 대통령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휴전이 성사될 경우 푸틴 대통령이 전승 80주년 열병식에서 러·우 전쟁 승전을 선언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자리에 김 위원장이 함께할 경우 병력을 파병한 북한도 함께 전승국의 효과를 도모할 수 있다.
더욱이 북·러 간 군사협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방러 교통편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2018년 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이 제공한 항공기를 이용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바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할 경우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전용기를 제공해 북·러 관계를 과시할 가능성도 있다.
러·우 전쟁이 종식 또는 휴전 상황으로 접어든다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및 나토와의 군사적 긴장 관계는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의 입장에서 북한과 군사협력의 필요성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반도 안보 환경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미 기정사실처럼 된 2025년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를 계기로 북·러 양국이 관계 발전과 함께 군사협력을 강화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오는 6월 출범할 대한민국의 새 정부가 이 점을 유념하고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푸틴·김정은 브로맨스, 레드라인에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