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경의 Into the Arte]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의 작품 ‘콘클라베’
● 5월 7일 열리는 콘클라베 다룬 영화 ‘콘클라베’
● 원작엔 없는 등장인물, 사건 통해 긴박감 높여
● ‘교황’이라는 권력 앞에 흔들리는 성직자들
● 암투와 정쟁 이긴 포용 강조 연설
영화 ‘콘클라베’의 스틸컷. 네이버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지 15일 만인 5월 7일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린다.
콘클라베는 교황의 사망 또는 사임 후 열리는 교황 선출 행사다.
교황 궐위 15~20일 이내에 최대 120명의 추기경(만 80세 이하)이 외부와 단절된 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른다.
여기서 3분의 2가 넘는 표를 받은 사람이 신임 교황이 된다.
콘클라베가 열리자 지난해 12월 개봉한 동명의 영화 ‘콘클라베’도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영화 콘클라베는 2025년 제97회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했다.
믿고 읽는’ 로버트 해리스(68) 원작 소설의 탄탄한 이야기에 작가 피터 스트로언(57)의 각색이 더해졌다.
스트로언은 원작의 치밀한 정치적 음모와 긴장감은 충실하게 유지하면서도 강렬하고 감각적 미장센으로 확장시킬 수 있도록 장면을 배분했다.
신속하고 공정하게 교황 뽑는 ‘콘클라베’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 선출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앙과 정치, 도덕성과 권력 사이에서 인간의 탐욕에 대해 다룬다.
영국의 대표 소설가이자 전직 저널리스트인 해리스는 영화 원작인 동명의 소설 ‘콘클라베’에서 권력, 도덕성, 탐욕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에드바르트 베르거(55) 감독은 종교 의식이라는 엄숙한 주제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인간성과 권력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전달한다.
콘클라베에 참석한 추기경들은 철저한 보안 속에 매일 두 차례 투표를 진행한다.
결과는 흰 연기(교황 선출)와 검은 연기(실패)로 외부에 알린다.
영화에서는 두 색상을 강렬하게 대비해 긴장과 희망의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영화 ‘콘클라베’의 스틸컷. 네이버 영화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 선출 때부터는 흰 연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종소리를 추가했다.
영화에서도 종소리가 등장한다.
적막감과 긴장감을 유지하며 연기와 종소리가 교차하는 장면은 독창적 영상미학에 감정적 깊이가 더해진 이 영화의 백미다.
모든 교황이 콘클라베라는 비밀회의를 통해 교황으로 선출되지는 않았다.
초기 교황은 지역 성직자와 시민들의 합의로 선출됐다.
이후 가톨릭 교세가 확대되자 교황 자리를 두고 다툼이 벌어졌다.
교황 선출 방식을 두고 시행착오를 거친 뒤 1179년 교황청은 추기경단 중심의 선거 방식을 정립했다.
그러던 중 1268년 추기경들이 3년 가까이 새 교황 선출을 결정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자 화가 난 지역 주민들이 추기경들을 강제로 한 방에 가두고 빵과 물만 주면서 압박해 교황을 선출하게 했다.
이것이 콘클라베(라틴어로 ‘열쇠로 잠긴’, 즉 ‘갇힌 방’이라는 의미)의 기원이다.
콘클라베는 정치적 혼란과 외부 간섭을 줄이고, 신속하고 공정한 교황 선출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였다.
2013년 3월 13일 바티칸 교황청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1세의 선출을 알리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 권력 두고 벌이는 추기경들의 암투 소설은 독자의 해석에 의존하며 추상적 주제를 다룰 수 있다.
반면, 영화는 시청각적 표현과 제한된 러닝타임 때문에 더 명확하고 직관적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통상 소설 원작 영화는 소설의 전개를 고스란히 따라가지 않는다.
  ‘콘클라베’도 영화와 소설이 다른 지점이 있다.
소설은 추기경들 간의 밀실 정치 알력과 교황 선출 과정에 집중하다 보니 아그네스(이사벨라 로셀리니 분) 수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아그네스 수녀는 교회 내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침묵의 목격자’로 약 8분간 등장한다.
영화는 그녀를 통해 남성 중심의 교회 구조에서 여성들의 제한된 역할을 조명하고, 교회의 성별 규범에 대한 변화와 포용의 필요성을 암시한다.
또한 영화에서 반전의 기점이 된 자살 폭탄 테러는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테러라는 자극적 행위를 통해 긴박감을 추가하며 강력한 몰입감을 던진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은 이탈리아 출신의 야코포 로멜리 추기경이다.
내부 갈등과 윤리적 딜레마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하게 선거를 이끌어가는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모습이 강조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미묘한 상황에서 고인이 된 교황과 관련된 비밀을 파헤치며, 테러 사건까지 얽힌 ‘음모의 실타래’를 신중하게 해결하는 섬세한 모습을 부각한다.
이를 위해 주인공을 영국 출신의 로렌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스 분)으로 바꿔버렸다.
  영화는 교황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서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두운 조명과 침묵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추기경들이 고인의 곁에 모이는 장면은 종교적 경건함을 전달한다.
바티칸은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콘클라베를 소집한다.
추기경단 학장인 로런스 추기경이 콘클라베를 주관한다.
그는 중립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이내 정치적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은 신앙적 요소뿐만 아니라 이념, 지역적 이해관계, 개인적 야망 등 다양한 ‘정치적 요인’이 작용한다.
‘주님께서 정할 일’이라는 공식적 명분 이면에 추기경들 간 암투가 벌어진다.
  베르거 감독은 신비스럽고 엄숙한 모습을 부각하기 위해 어두운 조명과 제한된 공간을 활용했다.
베르거 감독은 자연광과 촛불 조명을 정교하게 조절하며 인물 사이 미묘한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 118명은 비밀리에 투표를 시작한다.
미국 출신의 진보적 벨리니 추기경(스탠리 투치 분)은 교회의 개혁을 지지하며 자유주의적 가치를 강조해 교황 후보로 부상한다.
캐나다의 중도파 트람블레 추기경(존 리스고 분)은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을 보이지만 교황 자리를 갈망하는 야심가다.
나이지리아의 보수적 아데예미 추기경(루시언 음사마티 분)은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교황이 될 가능성을 지닌 인물로 많은 관심을 받는다.
여기에 이탈리아의 강경 보수 전통주의자 테데스코 추기경(세르조 카스텔리토 분)이 있다.
서로 다른 이념과 지지 기반을 가진 각 후보는 교황 선출을 위한 물밑 작업에 한창이다.
  투표가 시작되기 전 로렌스는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죄는 확신”이라며 가톨릭 최고위 성직자를 선출하는 중요한 의식인 만큼 다양성을 받아들일 것을 역설한다.
드디어 첫 번째 투표함이 열리지만, 누구도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아데예미가 약간 앞서 있을 뿐이다.
교황 선출 과정은 서서히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한다.
영화 속 각 인물들은 자신의 신념과 야망을 보란 듯 드러낸다.
트람블레는 지지자를 포섭해 최대한 표를 모으려 노력한다.
테데스코는 전통 교리와 가톨릭교회의 역사적 가치를 강조하며 한 표를 호소한다.
   영화 ‘콘클라베’에서 시스티나 성당 밖 광장에서 발생한 테러로 혼란에 빠진 모습.IMDb 홈페이지 음모와 갈등보다는 협력과 중재  한편 로렌스는 고인이 된 교황이 트람블레를 해임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벨리니는 강경파 테데스코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아데예미를 지지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데예미의 당선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에 트람블레는 아데예미가 과거 한 수녀와의 관계에서 자녀를 낳았다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린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아데예미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참회하고, 로렌스는 이를 함구한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아데예미의 지지세는 급격히 추락하고 주요 후보군에서 그의 이름은 사라진다.
  이에 놀란 벨리니가 이번엔 트람블레와 정치적 동맹을 맺고 그를 지지한다.
로렌스는 교황의 아파트에서 트람블레가 다른 추기경들에게 뇌물을 줬다는 증거를 발견한다.
‘부패 스캔들’로 트람블레 평판도 이내 무너진다.
이제 남은 당선권 후보는 테데스코와 로런스뿐. 강경한 테데스코의 극단적 태도는 많은 추기경 사이에서 반감을 샀다.
권력의 향방은 로렌스 쪽으로 기우는 듯 보인다.
  다섯 번째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바티칸 인근에서는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그 충격으로 시스티나 성당 일부가 파손되고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다.
격분한 테데스코는 이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으로 규정하며 종교 간 전쟁을 주장한다.
반면, 멕시코 출신 추기경 빈센트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스 분)는 테데스코와 정반대의 주장을 편다.
테러를 저지른 사람은 상대가 적이라는 망상에 빠진 것이니 성직자는 그에 증오로 맞서기보다는 이들까지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연설은 추기경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최종 투표에서 베니테스는 압도적 지지로 ‘교황 인노첸시오 XIV(14세)’로 선출된다.
  이때 갑자기 창문이 깨지며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장면으로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신이 등장하는데, 영화 내내 억눌렸던 긴장감은 단박에 해소된다.
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이미지와 함께 그의 당선으로 교회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음모와 갈등보다는 협력과 중재가 필요하다는 중요한 메시지도 함께 전달된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려는 찰나에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난다.
전임 교황이 베니테스에게 스위스에서 여성 기관(자궁)을 제거하는 의료 절차를 받도록 했다는 충격적 비밀이 드러난 것이다.
그가 선천적으로 남녀 생식기를 모두 가진 양성으로 태어났으며 “하느님이 만든 그대로 남겠다”며 자신의 여성 기관 제거를 거부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베니테스는 이 사실을 밝히며 로렌스에게 “저는 이 세상의 확신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압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감화된 로렌스는 베니테스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는다.
광장에 모인 신자들이 새 교황을 열렬하게 환영하고, 로렌스는 고독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군중의 환호를 듣는다.
  영화는 교황 선출 결과를 넘어 권력에 부화뇌동하는 성직자를 보여주며 인간 본연의 모순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더불어 바람직한 지도자는 선명한 이념보다는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녀야 한다는 진리를 시사한다.
이 영화는 대선이 코앞인 우리에게도 “당신은 어떤 지도자를 뽑겠습니까”라고 정면으로 묻고 있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영화 ‘콘클라베’ 통해 그려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