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의 텔레스코프] ‘관세왕 트럼프’ 만든 경제 책사 2명 속내 들여다보니…
● 한·중·일 수출국 불공정무역관행에 美 ‘흔들’
● 강달러 유지, ‘협상 수단’인 관세 활용해 시정
● 미국 제조업 살리고 주요 공급망 재배치가 목적
● 韓, 대중국 전선 함께 서면서 경제적 피해 최소화
● 국제질서 재편 속 보조적 핵우산 하나 펼치자
4월 2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로즈가든에서 세계 각국에 대한 관세율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현지 시간) 행정명령으로 발표한 전방위 관세율 인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트럼프는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막상 예상이 현실화하니 머리가 어지럽다.
미국은 4월 5일부터 모든 국가에 기본관세 10%를 부과하고, 약 60개국에 달하는 이른바 ‘최악의 위반국’에 20%에서 49%에 달하는 관세를 추가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우방국인 유럽연합(20%), 일본(24%), 한국(25%), 대만(32%)이 들어 있다.
이외에 인도(26%), 중국(34%), 태국(36%), 인도네시아(32%), 베트남(46%), 캄보디아(49%) 등도 해당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9일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 대해 상호관세 적용을 90일 유예한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총 관세율은 앞서 발표된 125%에 대해, 합성 마약 펜타닐 대응 명목의 추가관세 20%까지 포함돼 실제로는 14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국경을 접하는 최대 무역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이민자 문제와 펜타닐(일명 ‘좀비 마약’) 유입 문제의 해결 노력을 존중해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고율의 관세 부과가 단순한 보호무역 조치가 아니라 다른 연계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특기할 만한 점은 중국이 관세장벽을 우회할 수 있는 제3국가에도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이번 조치의 주요 타깃이 중국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주먹구구식 미국의 관세율 계산
미국의 관세는 상대국의 기존 대미 관세에 대응해 부과된다는 의미에서 상호관세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공식 관세율에 더해 무역장벽까지 포함하고 있어 미국의 관세율 계산이 객관적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또한 미국이 최악의 위반국 범주에 해당하는 국가에 부과한 관세율 계산이 그 국가의 대미 무역흑자액을 대미 수출액으로 나눈 후 그 값을 다시 반으로 나눈 것으로 밝혀져 주먹구구식 관세율 계산이라는 경제학자들의 비난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는 관세가 단순한 보호무역 조치가 아니라 다른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러한 전방위 글로벌 관세율 인상에 대해 국내외 논평가들은 “세계화의 종언” “미국 리더십의 종언” “미국 패권 질서의 종언”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종언” “다극 질서로의 전환” “1930년대 대공황으로의 회귀” 등 날 선 비판을 내놓았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포함해 수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미국의 고물가, 투자 감소, 고용 감소, 소비 감소, 경기침체 등을 예상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최악의 수를 두었다고 비난했다.
만약 중국, 유럽연합(EU) 등과 고관세 무역 전쟁이 벌어지면 1930년대 대공황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도 미국이 부과한 관세에 대응해 4월 12일부터 대미 관세율을 125%로 높였다.
한국에서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끝나고 다극 질서로 전환하고 있다는 논평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더불어 “이제 미국을 믿지 말고 자강 외교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의 궤도에서 벗어나 자국에 가까이 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친미적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중국에 우호적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통령 당선을 기대하면서 동아시아 질서를 중국 중심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유럽의 동맹국에 대해 “방위비 비용 및 역할 분담도 제대로 하지 않는 무책임한 국가”라고 비난해 왔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손을 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유럽 국가에 관세까지 부과해 이들이 앞으로 어떤 대응조치를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은 아시아의 동맹국에 대해서도 방위비 분담과 대중(對中) 억제에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하는 추세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세계질서, 안보 질서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정말 세계화는 종식되고 세계질서는 재편되고 있는 것인가. 재편된다면 그 방향은 어떠한가. 미국은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과연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뉴시스
트럼프가 원하는 세계질서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세계화의 종식과 대안적 세계질서를 원할까. 그렇다면 그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정말 세계질서는 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핵심 인사가 쓴 주요 논문과 글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글은 다음 두 개다.
하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에 임명된 스콧 베선트(Scott Bessent)의 2024년 10월 23일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고문, 다른 하나는 트럼프 행정부 경제자문회의 의장에 임명된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이 2024년 11월에 발표한 ‘세계무역 시스템 구조조정 안내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라는 보고서다.
전자의 글은 트럼프 대외 경제정책의 전반적 개요를, 후자의 글은 왜 관세(tariff)가 중요한 수단이 되는지를 분석한 글이다.
먼저 베선트가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미국은 자유시장경제 중심의 세계질서인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 질서 안에서 미국에 불공정하게 짜인 국가 간 경제 관계를 재조정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장 중 특기할 만한 점은 미국의 안보와 경제를 밀접하게 연계하려 한다는 점이다.
다만 그 연계 논리가 정교하지 않은데 이는 안보를 경제 관계 재조정을 위한 협상 수단으로 사용하려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베선트는 미국 시장의 개방과 세계화가 우방국뿐만 아니라 라이벌인 중국을 부강하게 만들어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중국공산당이 더욱 강해졌고,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을 무기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화는 미국의 탈산업화를 가져와 제조업 기반의 미국 방위산업을 흔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중국이나 일본,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 성장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 때문에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들 국가의 관세나 비관세 장벽, 환율 조작, 전략산업에 대한 보조금, 기술이전 강요, 지적재산권 탈취, 구조적 저소비가 수출 경쟁력을 왜곡하는 불공정한 무역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불공정한 무역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가의 경제 시스템이 서로 정합성을 가지도록 조정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양자적 조정이 아닌 글로벌 어프로치(접근)다.
중국과 같은 거대 불공정 무역 국가에 대한 양자적 조치는 제3국과 같은 무역 우회로의 존재로 인해 그 효과가 상실되기 때문에 양자보다 전 지구적 시정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이러한 조치가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조금이나 산업정책 같은 정부지출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있는 국가들이 더 적극적으로 미국의 시정조치를 따라야 서로 윈윈하는 경제 관계가 구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안보 및 경제권 밖에 있으면 중국 과잉생산의 희생양이 될 뿐이며, 중국이 이들 국가에 자국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베선트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미국 중심으로 경제질서를 재조정하되 그 방향은 미국의 재산업화 및 무역 불균형 해소이며,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주요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배치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른바 안보 논리를 동원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화를 버리거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버리는 것도 아니고, 단지 재배치(Re-wiring)가 목적인 것이다.
관세는 기축통화 ‘달러’ 지키는 매력적 수단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관세다.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한 논문이 미란 의장의 보고서다.
미국의 재정적자를 줄이고 달러의 기축통화를 지키는 방향에서 쓸 수 있는 수단으로 관세는 매우 매력적 수단이라는 것이다.
미란에 의하면 강달러 유지가 기축통화국 지위를 보호하고 미국 중심의 경제 및 안보 질서가 유지되는 길이다.
이를 위해 고관세를 부과하고 상대국의 통화를 절하시키는 방향으로 조정을 취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수출국에는 관세 인상 부분만큼 화폐가치 절하가 그 효과를 상쇄해 줄 것이며, 그 상쇄 효과로 미국에서의 인플레 우려와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 관세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해 미국으로의 재산업화, 불공정무역관행 시정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이 같은 조치의 유효성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2018~2019년 중국에 대한 고관세 부과 후 미국 거시경제 영향 분석에서 증명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얼마나 그 효과를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미란은 이론적으로, 그리고 2018~2019년의 경험에 근거해 관세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 두 개의 글과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방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세계화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중심으로 제조업과 주요 공급망을 재배치해 미국의 일자리를 늘리고, 강달러를 유도해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불공정무역관행을 제거해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즉 관세라는 수단을 통해 미국의 재정 부담을 덜려는 의도다.
이러한 정책의 궁극적 타깃은 결국 중국이다.
불공정무역관행으로 세계 경제질서를 교란시켰고, 해외 상품을 소비하는 세계시장 구실도 하지 않으면서 첨단산업에서까지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기 때문에 중국 중심으로 세계 경제질서가 재편되는 것은 미국의 경제적·안보적 이익을 침해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지금까지 미국이 희생한 것처럼 이제 동맹국도 희생에 동참하기를 강요하고, 안보 비용도 분담하기를 원하며 쓸데없는 전쟁은 종식시키려 하는 게 트럼프의 저의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도 무너지고, 중국 중심의 닫힌 세계 경제질서가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저변에 깔려 있다.
이 같은 트럼프의 글로벌 공급망 재배치 전략이 성공할지 여부는 우선 동맹국의 원활한 협조에 달렸다.
또 시장의 불안정을 견뎌낼 수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지구력, 관세 전쟁이 장기화하는 것을 막을 능력에도 달려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의 반격이다.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물가가 오르고, 고용이 감소하면서 소비까지 줄어 빠르게 경기침체에 들어서면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정치 자본이 떨어지면 추진력도 떨어진다.
글로벌 가치사슬로 복잡하게 얽힌 세계시장을 포기할 수 있는 국가와 국민은 없다.
무역을 포기하는 것은 경제활동 범위가 축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反)세계화나 탈(脫)세계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종언, 혹은 다극 질서로의 전환과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공포 마케팅에 불과하다.
시장 질서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문제는 공급망과 무역 관행의 재조정이 트럼프가 원하는 만큼 빠른 시일 내 이뤄질 수 있을까에 달려 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경기침체가 오는 속도를 국제 경제질서를 재배치하고 재조정하려는 속도보다 늦출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일부는 운의 영역이다.
현재로서는 성공 가능성이 반반이 아닐까 싶다.
이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미국의 대(對)중국 전선에 함께 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경제적 피해의 최소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이상은 상상력과 창조적 사고의 영역이다.
섣불리 중국과 연합해 미국에 대응하려 한다면 강력한 경제제재와 함께 미국과 심각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가능하다면 미국과 함께하는 재배치 혹은 재조정의 범주에 우리 정부도 안보 논리를 동원해 우리의 핵무장 카드를 넣으면 좋겠다.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 핵우산에 보조적 핵우산을 하나 더 펼 수 있다는 논리로.
이근
● 1963년 출생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 외교안보연구원(국립외교원) 교수
●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위원회 의장
●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 레벨’ 外
美 ‘안보 우산’ 국가와 대중국 공동전선, 국제질서 재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