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의 투자공방] PER·PBR? 복잡한 적정 가치 계산의 세계
● 가치·가격 균형은 일시적…매 순간 달라져
● 기업가치, 같은 공식 사용해도 답 다르게 나와
● “이 기대는 정당한가, 그리고 지속 가능한가”
●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에 돈이 기다리고 있지만…
안성재 셰프가 2024년 10월 17일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열린 ‘엘르 스타일 어워즈’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1987년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주인공 고든 게코는 “탐욕은 선이다(Greed is good)”라고 외친다.
게코의 발언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동시에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투자자는 돈을 욕망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로 성공하려면 매 순간 내린 선택에 따라 한 걸음, 아니 반걸음이라도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발걸음을 온전히 내딛기란 쉽지 않다.
게코가 말한 어쩌면 추악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저서 ‘안티 오이디푸스’(1974)에서 탈코드화에 대해 다뤘다.
거칠게 요약하면 왕(봉건적 질서)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돈(자본주의적 질서)이 차지했다는 내용이다.
돈은 왕의 지위를 얻었지만 그 자리에 머물지 않으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원하며 끊임없이 돈을 모은다.
돈은 쌓여 자본이 되고, 자본은 다시 돈을 만들어낸다.
혹자는 배금주의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투자자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은 돈에 의해 움직이고 돈은 순환한다.
특히 투자자는 돈의 흐름에 편승해야 성공할 수 있다.
욕망이 사람을 움직인다 욕망은 사람을 움직이고,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든다.
생각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은 글을 쓰게 만들고,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악기를 다루게 한다.
피아노를 치든, 기타를 치든 그들은 잘하고 싶을 것이다.
잘하고 싶은 욕망은 끊임없이 연습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은 자본을 증식하도록 할 것이다.
여기서 주어는 내가 아니라 욕망이다.
욕망이 나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투자를 결정짓는 가늠자다.
어떤 투자자는 투자에서도 이데아를 꿈꾼다.
저마다의 회사는 ‘궁극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 주가가 널뛰다가도 결국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가치는 없다.
가치는 끊임없이 변하며 가치와 가격의 균형 역시 일시적이다.
더 큰 문제는 평가자의 시선에 따라 매 순간 가치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현실에서는 타인의 시선이 가치를 만들어낸다.
공정하면서도 전문적인 사람을 꿈꾸는 시대다.
2024년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는 셰프 열풍을 일으켰고, 그 중심에는 국내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모수 서울’의 안성재 셰프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븐하게”라는 그의 한마디에 열광했고, TV쇼는 안성재라는 사람을 통해 미식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소개했다.
  안 셰프가 혜성처럼 등장한 배경에는 ‘미슐랭 가이드’가 있다.
‘미슐랭 가이드’는 전 세계 수많은 요리사가 갈망하는 인정욕구의 상징이다.
1900년 ‘미슐랭 가이드’가 처음 출판된 이후 미슐랭 형제는 음식을 향한 욕망을 ‘별’로 평가해 왔다.
별이 강등되면 레스토랑의 존폐가 위협받았고, 별이 승격하면 세프의 명성과 레스토랑의 품위가 올라갔다.
지금도 많은 엘리트 셰프가 미슐랭의 별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별 세 개를 향한 욕망이 음식의 맛과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을까. “그래봤자 음식 맛이 얼마나 좋아졌을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 역시 솔직한 마음이다.
평가자도 사람인 만큼 미슐랭이 인정한 가치가 절대적일 리 없다.
사람들이 비싼 가격의 코스 요리에 선뜻 지갑을 여는 것은 음식에 돈 이상의 욕망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욕망에 기반한 평가가 객관적 가치가 될 수는 없다.
물론 돈을 내고 더 비싼 음식을 구매한 것이 그른 행동은 아니다.
미식에 대한 기준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투자 역시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며, 상대적 기준에 휘둘린다.
내가 투자한 주식을 다른 이들도 좋아할 것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타인의 시선을 반영한 객관적 지표를 찾으려고 열심이다.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외계어로 들릴 수 있는 ‘멀티플(multiple·배수)’이란 단어가 종종 활용되는 이유다.
멀티플은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지표를 포괄하는 용어다.
배수라는 의미에서 나타나듯 멀티플은 14, 21, 28 등 숫자로 표시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멀티플을 ‘절대적 기준’으로 오해하고 있다.
  아쉽게도 멀티플은 객관적이며 정태적인 숫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대중의 기대와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직 가격(price)이 특정 기준에 비해 얼마나 높은지, 혹은 낮은지를 보여줄 뿐이다.
가령 주가수익비율(PER)은 이익(earnings) 대비 가격의 배수를 의미한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순자산(book value) 대비 가격의 배수다.
주가매출비율(PSR)이란 주가를 주당 매출액으로 나눈 것이다.
PER이 10배라면 “회사가 벌어들이는 이익의 10배에 해당하는 가격이 형성돼 있다”는 뜻이고, PSR이 5배라면 “연 매출의 5배가 시가총액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의미다.
투자자는 돈을 욕망하는 존재로 시대의 욕망을 좇으며 끊임없이 좋은 투자 기회를 찾는다.
Gettyimage 투자자는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을 봐야 문제는 앞선 표기 방식 역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2024년 세후 200억 원의 이익을 달성한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기업의 적정 시장가치는 얼마일까. 누군가는 당장의 현금 창출력에 주목해 1000억 원으로 평가하지만, 성장 가능성을 중시하는 사람은 2000억 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때 두 사람이 사용한 공식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기업의 시장가치 = 세후 이익(200억 원) × PER”이다.
둘의 차이는 적정 PER을 5배로 보느냐, 10배로 보느냐뿐이다.
  개별 기업에 어느 수준의 PER이 적정한지를 단정 짓기란 어렵다.
산업의 평균 PER을 비교하기도 하고 전체 시장의 평균 PER과도 비교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순환논법이다.
동종 업계의 평균 PER에는 해당 기업의 PER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자는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을 봐야 한다.
단순히 숫자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숫자에 담긴 이야기와 기대를 읽을 수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
멀티플이 높다는 것은 시장이 기업에 미래를 부여하고 있다는 증거다.
멀티플이 낮다는 것은 시장이 외면하고 있거나,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뜻일 수 있다.
멀티플을 보는 행위는 결국 집단심리와 미래에 대한 기대감, 본능적 욕망을 해석하는 과정이다.
  숫자를 해석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명품은 사람들이 좋아하니 비싼 것일까, 비싸니 좋아하는 것인가. 둘의 경계는 모호하다.
멀티플을 통해 가치 평가를 할 때 해석이 중요한 이유다.
  가령 PER이 10배라는 것은 “현재 이익이 계속된다면, 10년 동안 지금의 시가총액만큼 벌어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PER이 100배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앞선 계산대로라면 기업의 시가총액만큼 현금을 창출하는 데 100년이 걸린다.
이쯤 되면 PER이 높다는 것은 단순히 “비싸다”를 의미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그만큼 반영돼 있다는 의미다.
  PER이 100배를 넘어선 2023년의 엔비디아가 그렇다.
누군가는 “미쳤다”라고 말할 가격이지만 다수는 엔비디아가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시장은 엔비디아에 인공지능(AI) 혁신의 꿈과 욕망을 덧입혔고, 투자자들은 “가격을 넘어선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이는 PER이란 숫자에는 미래에 대한 시장의 태도가 담겨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2025년 엔비디아의 상황은 어떠한가. 올해 1월 한 기업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중국 딥시크가 가성비를 무기로 AI 시장에 출현한 것이다.
이른바 딥시크 사태로 AI 산업은 성능 못지않게 효율성이 중시됐다.
자연스레 투자자들은 엔비디아의 밸류에이션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79%에 달했던 매출액 총이익률이 향후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역시 확산됐다.
주가가 하락하면서 치솟던 PER도 급속도로 내려왔다.
그렇다면 PER이 낮아졌으니 엔비디아의 투자 매력도가 상승했을까. AI 산업이 가속화하고, 클라우드서비자사업자(CSP)의 설비투자(CAPEX) 증가가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었지만 당장 수치만 보면 그렇지 않다.
미국의 5개 주요 CSP(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2023년 -4%에서 2024년 51%로 급증했다.
덕분에 이 시기 엔비디아의 주가도 폭등했다.
이후 이들 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 전망치가 2025년 36%, 2026년 8%로 급감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성장하지만 성장률은 하락하고 있다.
엔비디아를 향한 투자자의 욕망 역시 이전과는 달라졌을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의 상황은 반대다.
그간 삼성전자는 철저히 배척받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생긴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이 멀티플을 낮췄다.
급기야 2024년 말 “삼성전자는 인텔처럼 반도체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란 얘기마저 돌았다.
오랫동안 PBR 1배가 저점으로 여겨졌지만 2025년 초 0.82배까지 급락했다.
삼성전자를 향한 기대와 욕망이 거의 소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삼성전자는 조금씩 가치를 회복하고 있다.
가성비 높은 AI를 장착한 다양한 기기에 대한 수요 확장이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범용 D램 수급이 개선되면서 “D램 고정가격의 상승 전환과 전방 수요 회복이 뒤따를 수 있다”는 기대 역시 반영되고 있다.
저평가된 진주인가 싼 게 비지떡인가 투자자는 어떤 기업에 투자해야 할까. 단순히 멀티플이 낮다고 싸고 좋은 기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멀티플의 높고 낮음은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시장의 시선’을 반영한 값에 불과하다.
낮은 멀티플은 해당 주식이 시장이 외면한 ‘저평가된 진주’임을 나타낼 수 있지만, 반대로 성장성이 고갈된 ‘싼 게 비지떡’일 수 있다.
높은 멀티플 역시 미래가치를 선반영한 ‘정당한 프리미엄’일 수도, 과도한 기대에 올라탄 ‘거품’일 수도 있다.
  결국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기대는 정당한가, 그리고 지속 가능한가.” 질문에 대한 답은 재무제표가 아닌, 기업이 가는 길 위에서 찾아야 한다.
멀티플을 해석한다는 건 숫자에 담긴 사람들의 욕망을 읽고 시장의 심리를 헤아리는 일이다.
멀티플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시장의 꿈이고 믿음이며 때론 욕망이다.
  주의할 점은 절제하지 않는 욕망은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롭 던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응용생태학과 교수가 쓴 ‘딜리셔스’(2022)는 요리가 불러온 멸종을 다룬 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온 인류는 불을 활용해 요리했고, 고기를 즐겼다.
문제는 수천 년에 걸쳐 사냥에 적응한 유라시아 대륙의 동물과 달리, 아메리카의 먹잇감은 별도의 적응 기간 없이 사냥에 통달한 인류에 노출됐다는 점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선 인류는 매머드, 마스토돈, 들소 등 거대동물군을 빠르게 사냥했다.
결국 인간의 사냥과 기후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상당수 동물은 멸종에 이르렀다.
미식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주체되지 않으면서 그들이 좋아한 동물을 멸종으로 이끈 것이다.
  욕망은 투자 판단의 기준이 되며 몹시 다루기 어렵다.
약이 되기도 하며, 독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다.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에 돈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안성재 셰프가 서울 용산구에 모수 서울을 재개장하며 디너 코스의 가격을 1인당 32만 원에서 42만 원으로 올렸지만 예약은 더 어려워졌다.
중고 장터에서 예약권 거래가 늘고 있으며, 가격 역시 100만 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물가상승이 가격인상에 영향을 미쳤겠지만, 근본적 이유는 가격을 올려도 지불할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안 셰프의 디너에 얼마의 돈을 지불하는지 여부는 결국 대중의 욕망이 정한다.
  투자 또한 다르지 않다.
투자자는 욕망해야 하는 존재며, 이때의 욕망은 ‘나만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이 덧씌워진 결과물이다.
투자자는 시대의 욕망을 좇으며 좋은 투자 기회를 찾지만, 그렇다고 욕망으로만 살아갈 수도 없다.
임계점을 넘어선 욕망은 모두를 파멸로 이끌 뿐이다.
결국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필요하다.
나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임을 받아들이고, 한 걸음 물러날 줄 알아야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투자의 다음 한 걸음은 그 균형에 달려 있다.
  윤지호 ● 1967년생 ● 前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 저서: ‘한국형 탑다운 투자 전략’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엔비디아와 안성재를 향한 욕망을 읽어야 돈 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