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의 뷰파인더] 1994년에도 미국의 북한 폭격 비핵화는 어려워
● 이란 비핵화 시도, 이스라엘과 거리 멀어서 가능
● 북한 고립무원 시절에도 폭격으로 비핵화는 불가능
● 자체 핵무장했다간 세계사회 공적될 가능성 높아
● 국정원 대공수사권 회복이 그나마 현실적 대안
“대부분의 목표는 몇 분 내로 제거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밤 해낸 것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군대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흉내조차 내지 못합니다.
”
지난 6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의 일부다.
지하 깊숙한 곳, 단단한 암반을 뚫고 설치된 이란의 핵 시설 세 군데를 ‘벙커버스터’ 미사일로 타격한 직후, 미국과 전 세계인을 상대로 미국의 힘을 과시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22일 백악관에서 대국민담화를 열어 이란의 핵 시설 세 군데를 ‘벙커버스터’ 미사일로 폭격했음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미군의 이란 폭격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폭격 직후, 미 동부 시간으로 6월 21일 오후 8시. 트럼프는 자신이 운영하는 SNS ‘트루스 소셜’에 “우리는 매우 성공적인 공격을 완료(complete)했다”라는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올렸다.
이 폭격이 트럼프의 말처럼 완벽한 성공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폭격당한 시설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지 않고 있으며 폭격 후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추가 작전을 진행했다는 점을 놓고 볼 때, 과연 ‘벙커버스터’ 미사일 몇 기가 지하 깊숙한 시설을 파괴할 수 있었는지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백악관 연설을 과장이나 허풍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적진 한복판에 미사일을 정확하게 꽂을 수 있고, 그 후 아무 탈 없이 유유히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초현실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란이라고 해서 방공망이 없을 리 없지만 미국의 B-2 스텔스 폭격기는 그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남의 나라 하늘을 제 집 안방처럼 들어왔다.
타격해야 할 시설에만 정확히 폭탄을 꽂은 후 무사히 작전을 완료했다.
‘외과수술’처럼 목표물만을 파괴한 셈이다.
그 후로도 트럼프는 단호한 행보를 이어나갔다.
트럼프는 23일 트루스 소셜에 “이스라엘과 이란이 완전한 휴전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미국이 나서서 전쟁을 끝내버린 것이다.
25일 현재, 이 ‘휴전’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란 폭격, 그림자 전쟁으로 준비한 결과
한편 이 폭격을 지켜본 한국은 생각이 많아진다.
일각에서는 북한도 이란과 같은 방식으로 비핵화가 가능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는 불가능하다.
북한과 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첫째, ‘외과 수술적 타격(surgical strike)’은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다.
선제타격을 통해 북한의 핵시설만을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두는 편이 좋다.
왜냐하면 여기는 중동이 아니고, 북한은 이란이 아니며,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도를 펼쳐보자. 이스라엘과 이란은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다.
매우 멀다.
목적지가 어디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1500~2000㎞ 이상 떨어져 있다.
그렇기에 두 나라가 서로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다.
비행기로 폭격하거나, 미사일을 쏘거나, 제3의 세력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번 폭격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전개 과정부터가 그렇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로켓 포격을 가하며 침입했다.
음악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여 최소 13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스라엘은 군사적 보복에 나섰고 그 여파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이란은 하마스의 공격이 발생한 바로 다음 날 자국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이란과 하마스가 이스라엘 기습 공격에 대해 논의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란이 하마스의 공격을 규탄한 것은 아니다.
유엔 주재 이란 대표부는 “팔레스타인이 취한 단호한 조치는 불법적인 시온주의 정권이 저지른 70년간의 압제적 점령과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항한 완전히 합법적인 방어 조처”라며 오히려 두둔의 뜻을 밝혔다.
이란은 반이스라엘 무장 세력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PIJ), 레바논의 무장 세력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등의 무장 세력에게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국경이 붙어 있지 않고, 정규군을 동원한 군사 작전을 펴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기에, 이른바 ‘그림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9월 17일과 18일 벌어진, 이른바 ‘삐삐 공격’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헤즈볼라의 요원과 지도부가 사용하는 무선호출기, 삐삐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며 약 2750명의 부상자와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이 배후로 지목받고 있지만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레바논 전역에서 지난해 9월 17일(현지 시각)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주로 사용하는 무전 호출기 수백 대가 동시에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폭발한 호출기 잔해. X 캡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개전부터 지금까지의 전개를 되짚어 보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직접 군대를 투입하여 하마스를 거의 궤멸했다.
삐삐 공격으로 헤즈볼라도 당분간 활동 불가능해졌다.
이란을 대신해 ‘육상군’ 내지 ‘게릴라’ 노릇을 할 수 있는 무장 집단의 위협이 모두 제거된 것이다.
미국이 B-2 폭격기를 출격하기 전,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항공 폭격을 통해 이란을 공격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 있다.
두 나라의 거리가 충분히 멀고, 이란을 대신하여 이스라엘과 싸우던 무장 단체들도 무력화되었으며, 양국 간의 완충제 역할을 하던 시리아도 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스라엘 역시 자국의 피해 없이 ‘외과수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 나가고 있었던 셈이다.
독자 핵무장론은 허황된 발상
한반도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북한의 육군 병력은 137만 명, 공군 병력은 6만 명으로 세계 6위에 해당한다.
물론 낡은 장비와 훈련 상태 등으로 인해 군사력 평가 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에 따르면 북한의 군사력은 145개국 중 34위에 머무른다.
하지만 헤즈볼라나 하마스 같은 일개 비국가 무장 단체와 비교할 전력은 아니다.
게다가 한국은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과수술’을 시도하는 것은 무모하다.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했듯 북한을 폭격하면서 수많은 인명 피해를 겪지 않을 수 있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북한이 약 20발가량의 핵탄두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핵 시설 선제 타격의 최적기였다고 흔히 회고하는 1994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중심으로 선제 타격론이 대두하였지만 다각도로 워게임을 해본 결과 수만 명 단위의 인명 손실을 피할 수 없다는 예측이 나오면서 결국 북폭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나마 당시는 소련이 붕괴하며 동구권이 허물어진 직후였다.
또한 중국은 지금처럼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가 아니었다.
문화혁명의 여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농업국에 지나지 않았다.
북한은 고립무원 상태였다.
그럼에도 막대한 인명 피해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북한 선제 타격론이 철회된 것이다.
하물며 북한이 핵탄두를 보유하게 된 지금은 더욱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특히 지난 정권 시절 일각에서는 ‘독자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튼튼한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드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북한이 이미 핵을 가지고 있는 이상, 우리도 핵을 갖는 것만큼 확실한 억제력 확보 방법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독자 핵무장은 허황된 발상이다.
우리가 이번 폭격을 보면서 알아야 할 두 번째 교훈이다.
다시 6월 22일 밤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이 이란의 핵 시설을 폭격했다.
이란이 미국을 직접 공격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타국의 영공을 뚫고 들어가 폭탄을 투하하고 나왔다.
국제법을 엄밀히 적용해 보자면 합법으로 보기 어려운 작전이다.
미국 공군 B-2 전략폭격기 8대가 활주로에 늘어서 엘리펀트 워크 훈련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이란 폭격에도 이 폭격기가 쓰였다.
화이트맨 공군기지 페이스북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권 선진국’ 중에서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한 폭격을 했다고 비난한 나라는 한 곳도 없었다.
이 모든 나라들은 동시에 이란의 핵무장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다양한 경로로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는 ‘국제 사회의 냉혹한 질서’ 같은 말을 제한된 방식으로만 사용한다.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은 미국을 욕할 때만, 반대로 러시아나 중국 같은 구공산권 국가를 싫어하는 이들은 그런 나라들을 비난할 때만 이 표현을 꺼내 든다.
그러면서 소위 ‘서유럽 복지 국가’들은 그런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벗어난 것처럼 여기곤 한다.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명단을 떠올려 보자.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공인된’ 핵보유국이다.
이 다섯 강대국은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지구상에 또 다른 핵보유국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다른 누군가 핵을 갖는다 해도 ‘공인’하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갖도록 방치하거나 어쩌면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에 대한 계산에 따른 행동일 뿐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을 지니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국제법과 인권을 그렇게 외쳐오던 프랑스나 영국, 독일 같은 나라가 미국의 이란 핵 시설 폭격을 두고 보이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핵 보유를 추구한다면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이 모든 나라들의 적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로 인한 온갖 결과를 감수하면서까지 핵을 가져야만 하는 것인가?
이란 핵 문제가 제시하는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교훈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북핵 문제의 관리와 해결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자 전쟁’ 뿐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란처럼 테러를 벌이는 비국가 무장 단체를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모사드처럼 우리의 국정원이 활약하고, 외교전에 총력을 기울여 미국과 서구권 국가들의 확고한 지지와 신뢰를 얻어냄으로써,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너무 이상적인 주장이라는 반응이 예상되지만,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다.
한국은 북한의 핵을 힘으로 빼앗을 수도 없고 스스로 핵을 가질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때 북한을 폭격했다면 지금 북핵 문제는 없었다’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해서는 아무런 발전이 없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북폭은 그때도 무리였고 지금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물밑에서 조용히 벌어지는 싸움, 북한이라는 유사 국가의 토대를 내부로부터 허물어뜨리기 위한 싸움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부질없는 북한 선제 폭격론, 대책 없는 자체 핵무장론을 이야기할 시간이 있다면,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 회복과 간첩법 개정부터 주장할 일이다.
국민의 여론이 그러한 방향으로 모인다면 정부와 국회 역시 입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대북 정보 역량의 회복에서 시작돼야 한다.
미국의 ‘외과 수술’형 이란 비핵화, 한반도는 불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