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이재명 시대, 한국의 길] ①한반도 안보 환경 변화 ②적대적 2국가론 ③새로운 남북 관계
● 미·중 전략 경쟁 여파로 달라진 한미동맹
● 평화 공존 대신 적대적 2국가론 돌아선 北
● 헌법 3조가 한반도 통일의 권리와 의무
이재명 대통령이 6월 13일 경기도 연천군 육군 25사단을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스1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5월 31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대화(샹그릴라 대화)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 군사 역량 투입의 최우선순위를 대중국 억제로 설정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인도·태평양 동맹들의 국방비 지출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트럼프 행정부 2기 구상을 분명히 했다.
미 국방부는 3월 29일 워싱턴포스트 첫 보도로 알려진 ‘임시 국가 방위 전략 지침(Interim National Defense Strategic Guidance)’에서도 미국 본토 방위와 중국의 대만 점령 저지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아시아와 유럽·중동의 동맹국들은 미국이 대중 견제에 집중할 수 있게 러시아·북한·이란을 억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도를 밝힌 바 있다.
헤그세스 장관이 아시아안보대화 연설에서 ‘동맹 중시’ 기조를 밝혔지만, 그 목적은 동맹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지하는 소위 ‘안미경중(安美經中)’ 접근 방식을 추구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안미경중은 오랫동안 한국 외교안보와 경제의 고민거리였다.
비중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최대 교역 대상이며, 그동안 한·중 교역은 오랫동안 양국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한미동맹은 한국의 외교안보와 경제, 그리고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기본 토양을 제공해 왔다.
한미동맹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양국에 상호 호혜적일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같은 현실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우리에게 전략적 명확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日·中 사이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5월 15일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을 상대할 때 한국에 지상군을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한국이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동맹의 존재”이자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이나 고정된 항공모함 같다”고 평가했다.
또한 브런슨 사령관은 주한미군의 목적이 북한을 격퇴하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며 “더 큰 인도태평양 전략의 작은 부분으로서 역내 작전, 활동과 투자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6·25전쟁의 산물이며 북한을 주적으로 적용한다는 게 그동안 한미 간 암묵적 합의였다.
그러나 미국이 주한미군 존재의 주요 이유가 중국 견제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예측돼 온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한미군이 중국의 대만 침공 등 동북아시아의 다양한 지정학적 위기에 투입될 수 있으며, 한반도 안보가 지역 분쟁에 직접적으로 연동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된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중시정책(Pivot to Asia)은 미국의 정권교체 여부와 관계없이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차기 정부에서도 대(對)중국 견제 정책이 지속될 것이 명확한 상황이다.
미·중을 둘러싼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이미 국제정치의 뉴노멀이다.
세계 국력 1, 2위의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외적 변수에 해당한다.
남북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가 당면한 딜레마다.
6월 12일 북한 나진조선소에서 최현급 구축함 2번함 진수식 거행 때 김정은 위원장은 딸 주애와 함께 참석했다.
북한은 이 함정의 함급이 4월 진수한 ‘최현급’이라고 밝혀 5000t급 구축함임을 확인했다.
함명은 ‘강건호’로 명명됐다.
최현호 진수식 당시 김 위원장은 “함선 현대화의 닻이 올려짐으로써 우리 해군은 특히 핵전쟁 억제력의 한 구성 부분으로서 핵 사용 영역에서 자기의 지위를 제고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신형 구축함에 핵탄두 운용이 가능한 전술탄도미사일과 전략순항미사일을 탑재해 해상에서 전술핵공격 역량을 구비하겠다는 구상이다.
강건호 진수식에서 김 위원장은 “내년에 5000t급 구축함 2척을 추가로 건조하는 계획을 공식 승인했다”고 밝혀 조만간 핵 공격이 가능한 4척의 구축함을 확보할 구상을 밝혔다.
이 같은 북한의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우리는 북한의 지상 기반 핵무기뿐만 아니라 요격이 더 까다로운 해상에서의 북핵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북한의 열악한 조선 능력으로 현대식 구축함을 단기간에 확보한다는 것은 무리이며, 러시아가 기술지원을 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북·러 밀착을 통한 북한 재래식 전력 현대화의 징후가 해군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올 3월 27일 김 위원장이 ‘무인항공기술연합체’와 ‘탐지전자전연구집단’을 지도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가 공중조기경보통제기로 보이는 기체에 탑승해 내부를 둘러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도했다.
공교롭게도 이 항공기는 러시아제 A-50과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세계적으로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자체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10개국 내외이며, 한국도 미국에서 수입한 ‘피스아이’를 운용하고 있다.
5월 15일 김 위원장은 북한 공군의 반항공(방공) 전투 및 공습 훈련을 현지 지도했으며, 이때 미그-29 전투기에서 신형 공대공미사일과 활공유도폭탄을 발사해 순항미사일과 무인기 표적을 격추하는 훈련이 실시됐다.
한국 공군도 개발 초기 단계에 있는 공대공미사일을 북한이 자체 개발해 실사격 훈련을 실시했다는 의미다.
이미 사실상 한반도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핵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되는 북한이 핵공격 능력 다각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지원으로 빠르게 재래식 전력 현대화에 나서고 있다.
구조적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정권은 국방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핵무기를 가진 러시아와 북한은 사실상 군사적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반도 안보 환경의 구조적 변화와 북한의 위협 증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지속 가능한 남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이재명 정부 실용주의 대북정책의 큰 숙제가 될 것이다.
남북통일과 민족 관계 부정한 적대적 2국가론
이재명 대통령은 6월 11일 대북 심리전 방송 중단을 지시했으며 군은 이를 즉각 실행에 옮겼다.
북한 역시 이에 호응해 대남 소음 방송 송출을 중단했다.
1년여간 지속된 북한의 소음 방송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려웠던 인천 강화도와 교동도 등 접경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감안할 때 매우 적절한 조치였으며 오히려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
이재명 정부는 우선 중단된 남북 대화 채널을 복원하고, 남북 간 군사적 충돌 방지를 위한 9·19군사합의 복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에도 대화를 통해 포로 및 전사자 교환, 그리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도 대화 채널 복원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또한 9·19군사합의는 정찰 감시 능력에 제약이 있는 북한에 오히려 유리하다는 일부 지적까지 있는 만큼 복원해도 북한의 안보적 우려가 커지지 않는다.
당면한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위해 북한이 호응할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12일 김대중도서관에서 개최된 6·15남북정상회담 25주년 행사에서 우상호 정무수석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굳건한 평화를 바탕으로 남북이 공존, 번영하는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6·15정신을 온전하게 이어가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6·15남북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6·15남북정상회담은 남북 정상이 평화통일을 문서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한반도 분단사의 역사적 분기점이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남북 현 정권의 뿌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공식화한 남북 관계의 “헤어질 결심”이다.
김 위원장은 2023년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남북 관계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했다.
노동당 전원회의 결론을 통해 김 위원장은 남북 관계가 동족 관계가 아닌 전쟁 중의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대한민국은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대한민국을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통일’ ‘화해’ ‘동족’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할 것도 지시했다.
‘삼천리 금수강산’과 ‘8천만 겨레’와 같은 용어의 사용 금지도 주문했다.
김 위원장이 적대적 한반도 2국가론(two Korea)에 기초해 남북통일과 민족 관계를 부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북한의 헤어질 결심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남북은 이미 유엔에 동시 가입해 있으며 국제법적으로 별개의 국가라는 점에서 북한의 헤어질 결심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논리다.
또한 실현하기 어려운 통일에 집착하지 않을 경우 남북이 서로 자기중심적 통일 논리를 내세우며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무력 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편리한 주장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2국가론은 남북 간 평화공존이 아닌 전쟁 관계의 적대적 2국가론이다.
남북이 교전국 관계로 전환될 경우 전시체제를 유지해야 하며,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상수가 된다.
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북한의 남쪽 국경선이 군사분계선(MDL)이며, 북방한계선(NLL)을 ‘불법무법’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하면 전쟁 도발로 간주할 것이라는 점도 명시했다.
우리 입장에서 NLL은 확고한 해상 경계선이며, 물러설 수 없는 안보의 마지노선이다.
북한의 헤어질 결심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가장 큰 요인은 대한민국 헌법이다.
헌법 3조는 한반도 전역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으며, 북한 주민은 잠재적 대한민국 국민이다.
북한의 헤어질 결심을 받아들일 경우 명백한 위헌이다.
이미 적대적 한반도 2국가론의 입장을 확고히 한 김정은 정권과 헌법을 준수하며 통일이라는 역사적 소명에 입각해 새로운 남북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 것은 이재명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
실용주의 남북 관계 성패는 ‘성과’에 달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 사태는 확산 일로에 있으며, 무력충돌을 벌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각종 매체는 시도 때도 없이 중국의 대만 침공설을 실어 나르고 있다.
글로벌 안보의 위기다.
미국발 관세전쟁은 전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피아를 구별하지 않고 자국의 경제적 이익 관철을 시도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위기다.
냉전기와 같은 강력한 진영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와 안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느슨한 진영 논리 속의 각자도생의 시대다.
글로벌 복합위기와 미·중 전략경쟁 환경에서 이재명 정부는 새로운 남북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주의의 성패 여부는 ‘성과’에 달려 있다.
당면한 한반도 긴장 완화와 교착된 남북 관계의 돌파구 마련은 당장의 과제이며, 이재명 정부 실용주의 대북정책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러·우 전쟁, 인도·파키스탄 충돌, 그리고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 모두 핵무기의 위험성을 직간접적으로 입증했다.
어느 경우든 북핵이 용인될 수 없는 이유다.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에 대비해 우리 목표를 관철하는 확고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적대적 한반도 2국가론을 선언한 김정은 정권을 설득해 남북 관계를 다시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분단체제에서 한반도의 미래가 있을 수 없으며, 통일의 권리와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위헌이자 역사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신뢰를 구축해 남북한 간 ‘내적인 끈’을 형성하는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재명 실용주의 대북정책이 넘어야 할 3가지 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