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인사이드] ‘금융 공공성’ vs ‘시장 원칙’ 균형이 관건
● 이자 부담 완화, 신용 회복 지원 정책 하반기 본격화
● 가산금리 규제 추진에 은행권 “시장 논리 무시” 반발
● 공적자금 회수율↓ 우려…도덕적 해이, 넘어야 할 과제
● 대출 갈아타기·정책금융상품·보증부 대출 활용해야
‘이자 부담 완화’와 ‘신용 회복 지원’을 앞세운 이재명 정부의 금융 기조가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사진은 2023년 4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출금리 부담완화 입법 간담회’에 참석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스1 이재명 대통령 취임으로 금융개혁 시계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은행법 개정안이 정무위원회 심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취약계층의 채무 소각을 위한 ‘배드뱅크(bad bank)’ 설립 등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도 논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내건 ‘금융소비자 보호’ 기조는 저신용자와 서민의 숨통을 틔우겠지만, 은행의 수익 구조와 투자심리엔 타격이 불가피하다.
금융의 공공성과 시장 원칙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가 향후 정책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하반기 ‘이자 부담 완화’ ‘신용 회복 지원’ 본격화 ‘이자 부담 완화’와 ‘신용 회복 지원’을 앞세운 이재명 정부의 금융 기조가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정부는 소상공인의 금융 부담 완화와 금융소비자 보호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장기화한 내수 침체와 고금리로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약화된 상화에서 정책금융을 통한 회복 지원과 구조적 제도 보완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코로나19 팬데믹 정책자금 대출에 대한 채무조정과 탕감 등 종합 지원 방안을 공약했다.
저금리 대환대출과 이차보전 확대, 장기분할상환 프로그램 도입 등이 포함됐으며, 12·3비상계엄 조치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별도 지원도 예고됐다.
이 대통령은 “코로나 시기 국가가 나눠 짊어졌어야 할 책임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떠넘긴 건 부당하다”며 “채무조정부터 탕감까지 특단의 대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약에는 취약계층을 위한 중금리 대출 전문 인터넷은행 설립, 대환대출 활성화, 중도상환수수료 단계적 감면을 통한 상환 부담 완화 방안도 담겼다.
장기 연체 채권 소각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과 특별감면제, 상환유예제 확대를 통해 신용 회복이 어려운 계층에도 ‘재기의 사다리’를 놓겠다는 구상이다.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나 자산을 사들여 처리하는 기구로, 금융사의 건전성을 지키는 동시에 채무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밖에도 금융범죄 대응과 금융책임 강화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보이스피싱, 다중사기, 서민피해형 금융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금융사고 책임자에 대한 징벌적 제재, 금융보안 의무 위반 시 과징금 부과 등의 방안도 포함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기적 지원이 구조적 개혁 없이 이뤄질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연체율이 오르는 근본적 원인을 분석하고 금융소비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제부터 개선해야 하는데 오히려 불리한 규제만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가산금리 규제 추진에 은행권 “시장 논리 무시” 반발 은행권을 겨냥한 공세도 본격화된다.
더불어민주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린 은행법 개정안이 속도를 내고 있다.
지급준비금, 예금보험공사 보험료 등 법정 비용을 가산금리에서 제외해 대출금리를 낮추겠다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가산금리는 은행이 은행채 금리·코픽스 등 지표금리에 각종 법정 비용을 더해 산정하는 항목이다.
그간 금융권의 자의적 산정 방식이 차주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개정안은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지역신용보증재단 출연금은 출연요율의 50% 이상을 대출금리에 포함하지 못하도록 했다.
은행 임직원이 금지한 항목을 대출금리에 반영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조항도 담겼다.
은행권에 따르면 매년 각종 출연료로 발생하는 금액은 약 3조 원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연간 약 1조5000억 원을 가산금리에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은행권은 반발하고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외에도 은행의 신용 위험, 유동성, 운영비 등 다양한 요소가 가산금리에 반영돼야 하는데, 이를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시장 논리를 무시한 과도한 규제라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산금리는 단순히 출연금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고객의 신용도, 조달 비용, 리스크 프리미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물”이라며 “일부 항목을 법으로 배제하는 건 오히려 금리 왜곡을 부를 수 있다”고 토로했다.
법안 취지대로 가산금리가 낮아지더라도 은행이 우대금리를 줄이거나 고위험군 대출을 축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법안 통과 가능성은 높다.
국회 정무위 다수는 법안 취지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도 대출 가산금리 손질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강한 드라이브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의 부담 요인 중에서는 공공 역할보다 가격 규제의 영향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전배승 LS증권 연구원은 “은행권의 경우 공공 역할과 관련된 일회성 비용보다 가산금리 억제 등 규제의 영향이 보다 크게 나타날 것”이라며 “현재 예금보험료·출연료 가운데 어느 정도의 비율이 대출금리에 포함됐는지 파악하기 힘드나 10~30% 수준을 가정할 때 세전이익이 5~10% 감소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이 과거 언급했던 규제들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횡재세와 법정 최고 금리 인하다.
민주당은 금융사의 연간 순이자수익이 최근 5년간 평균의 120%를 초과할 경우 초과 이익의 최대 40%를 ‘상생금융 기여금’으로 내도록 하는 내용의 금융소비자보호법·부담금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2023년 11월 “고금리로 엄청난, 특별한, 예상하지 못한 이익을 거둔 금융기관들 그리고 고(高)에너지 가격에 많은 이익을 거둔 정유사 등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며 “국민께서도 70% 이상이 횡재세 도입을 찬성한다”고 언급했다.
은행권 일각에서는 “공약에서 빠졌더라도 집권 이후 관련 논의가 다시 추진될 수 있다는 긴장감은 여전히 있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최고 금리 인하 논의도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대선 당시 최고 금리를 연 10%대로 낮추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해 최고 금리 상한을 연 15%로 하는 이자제한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정 최고 금리는 과거 최고 66%에 달했으나 이후 꾸준히 하향 조정돼 왔다.
연도별로 2007년 49% △2010년 44% △2021년 39% △2013년 34.9% △2024년 25% △2016년 27.9% △2018년 24% △2021년 20%까지 낮아졌다.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 완화를 위한 조치였지만 오히려 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제2금융권에선 최고 금리 인하 시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수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저금리 시대가 다시 와서 자금조달 비용이 크게 낮아지거나 경제 상황이 좋아져 신용 원가가 내려가지 않는 이상 최고 금리가 인하될 경우 저신용층 대출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차주는 결국 대부업체나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친 최고 금리 인하로 대부업계 규모는 축소되고 있다.
대출 원가가 15%를 웃도는 상황이라 최고 금리를 적용해도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이 본격화할 경우 금융소비자도 시장 변화에 맞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중도상환수수료 부담이 완화되면서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탈 기회가 넓어진 만큼 대환대출 플랫폼 등을 활용한 갈아타기 전략이 유효할 전망이다.
  가산금리 규제가 시행되면 일부 차주에겐 대출금리 인하 효과가 기대되지만 은행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우대금리를 줄이거나 고위험군 대출을 축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금리 구조를 꼼꼼히 따져보고, 정책 금융상품이나 보증부 대출 등 우회 수단도 적극 검토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가 중도상환수수료 단계적 감면과 배드뱅크 설립 등 금융 취약계층 지원 정책을 현실화할 경우 저신용자와 청년층, 자영업자 등에게 실질적인 부담 경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1월부터 중도상환수수료 개편 방안에 따라 금융사는 대출자가 빌린 돈을 조기 상환할 경우 발생하는 기회비용 및 행정비용 등 실비용 범위 내에서만 중도상환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금융위는 “중도상환수수료 부담이 완화되면 차주가 고금리 대출에서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배드뱅크 설립 또한 정책 효과에 대한 기대가 크다.
부실채권을 전담 기관에 넘겨 정리하면 금융기관의 대손비용이 줄어들 뿐 아니라 채무자 처지에서도 재기의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드뱅크 모델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 상황에서 이미 여러 국가에서 활용된 바 있다.
2008년 미국은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통해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및 지분을 인수하고 유동성을 공급했으며, 이를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위기 극복의 기반을 마련했다.
공적자금 회수율↓ 우려…도덕적 해이는 넘어야 할 과제 다만 배드뱅크 설립은 공적자금 투입을 동반하기 때문에 자금이 전액 회수되지 않을 경우 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11월부터 올해 1분기까지 총 168조7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회수율은 72.1%에 그쳤다.
도덕적 해이 논란과 정치적 비판은 여전히 정책 설계에서 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대통령이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한 만큼 각종 규제는 은행이 일정 부분 비용을 떠안는 구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소상공인 지원, 채무 탕감 등 모두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추진되지만 은행권 입장에서는 수익성 저하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증권가에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은행업종에 대한 투자심리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업 주가가 전고점 수준을 회복한 만큼 하반기에는 호재보다는 악재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책 부담 증가 가능성·자산 건전성 악화 등 수익성 훼손 우려와 함께 밸류업 정책의 지속성 여부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반면 관련 정책이 기업 주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김은갑 키움증권 연구원은 “대선 때 다양한 금융개혁 방안에 대한 논의가 나왔지만 관련 변수가 은행주 투자 유인을 약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미 상당한 수준의 사회공헌활동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현 수준 이상으로 강화되더라도 충격의 강도는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저신용자 부담↓ 은행 부담↑…우려되는 이재명식 금융 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