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공공기관장 인사로 번진 ‘내로남불’ 논란
● “알박기 심각한 문제” 與, 내로남불 비판 직면
● 文·尹·李 거친 ‘장수 기관장’ 속출해도 선택적 침묵
● 계엄이 문제? 임기 중 후임자 공모 관례 깨지며 이미 삐끗
● ‘환경부 블랙리스트’로 법원 제동 받았지만 여전히…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기재부는 9월 30일 ‘공공기관장 평가제’를 신설해 성과가 낮은 기관장 해임을 적극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 “취임 일자가 어떻게 되죠?” ○ 김경욱 88관광개발 감사: “2022년 3월.” ○ 이 의원: “문재인 정권 때 임명됐다가 지난 정권에서 사퇴하란 얘기 못 들었죠?” ○ 김 감사: “기억이 안 납니다.
” 10월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의 한 장면이다.
이 의원은 짧은 문답 직후 “문재인 정권 때 임명된 사람이 아직까지 있는데, 지난 정부 때 임명된 사람보고 자꾸 나가라고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여권이 윤석열 정부 시절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에게 사퇴를 압박하는 현 상황이 과연 정당한지 되묻는 발언이었다.
文·尹·李 모두 거친 ‘장수 기관장’ 속출 여권이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을 겨냥해 사퇴 압박을 이어가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전전 정권인 문재인 정부에서 발탁된 기관장 상당수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알박기 인사는 정부와 기관의 갈등을 부추기고, 국민에게 제공되는 공공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기관장 다수가 윤석열 정권 내내 임기를 이어갔고, 임기 만료 이후에도 직무를 이어가는 상황이라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은 12·3비상계엄부터 이재명 정부가 시작된 6개월 사이 45명의 공공기관장이 알박기로 임명됐다고 비판했으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막바지 6개월 동안 공공기관장을 59명 임명했다.
‘신동아’가 11월 2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을 통해 331개 공공기관을 전수조사한 결과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기관장이 여전히 직위를 유지하는 기관은 21곳이었다(표 참조). 이 가운데 20곳은 기관장이 임기를 마쳤지만 후임자 선임 지연 등을 이유로 유임 상태였다.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대부분 3년이지만, 임기 종료 후에도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으면 계속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28조가 “임기가 만료된 임원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문재인·윤석열·이재명 세 대통령을 모두 거친 ‘장수 기관장’이 속출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통상적으로는 공공기관장의 임기 만료 후 한 달 이내에 후임자가 임명된다.
그러나 이 공공기관장들은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 인물이 손태락 한국부동산원 원장이다.
그는 임기를 마친 지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본임기 3년에 유임 기간을 더하면 총 4년 8개월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공공기관운영법이 정한 최장 재임 기간(임기 3년+연임 1년)을 넘어서는 기록이다.
이 같은 사례는 비단 한국부동산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김종호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역시 2024년 11월 7일 임기를 마쳤지만 여전히 기관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지면서 후임자 선임이 늦어질 수 있겠다는 관측이 있었으나, “1년 가까이 지체되는 것은 문제다”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그사이 21대 대선이 끝나고, 주요 내각 구성이 완료됐으며, 다시 수개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제청권자(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와 임명권자(대통령)가 모두 결정됐음에도 후임 인선이 좀처럼 마무리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작 김 이사장 본인은 전임자 정윤모 전 이사장 임기 만료 후 29일 만에 취임한 만큼 이번 지연이 더욱 대조적이다.
김제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역시 2월 9일 임기를 마쳤지만, 여전히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출신으로, 대표적 탈원전 성향 인사로 꼽힌다.
앞서 언급한 김종호 이사장이 민정수석비서관 출신이었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공공기관장으로 내려간 전형적 사례다.
김제남 이사장의 임명 시기는 2022년 2월 20대 대선 국면으로, 여야 후보 간 원전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던 시기다.
이후 친원전 기조의 윤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김 이사장은 정부의 정책 기조와 충돌하는 양상을 빚었다.
계엄이 문제? 임기 중 후임자 공모 관례 깨지며 이미 삐끗 다수 기관은 후임 인선이 늦어진 이유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상황을 내세운다.
정치·사회적 혼란이 겹쳤던 만큼 일정 부분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상당수 기관에서 비상계엄 이전부터 이례적으로 후임 절차를 지연해 왔다는 점에서 온전히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임 공공기관장들은 불미스러운 일로 중도 사퇴하는 경우를 빼면, 대체로 임기 중 후임자 공개 채용 공고를 내고 인선 작업을 시작했다.
반면 앞선 기관들은 기관장 임기 종료 후 공모를 시작하는 등 지연 사태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이후 비상계엄 사태가 터진 만큼, 비상계엄 사태를 후임자 지연의 전적인 원인으로 삼기도 어렵다.
기술보증기금은 김종호 이사장의 임기 만료 20여 일 뒤인 지난해 11월 28일에야 차기 이사장 공모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비상계엄이 터졌다.
이는 전임 정윤모 이사장이 임기 종료 70여 일 전 공모를 시작했던 것과 대비된다.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은 현 이사장의 임기가 2개월여 지나고,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고 후 일주일 가까이 지난 4월 10일에야 공모에 들어갔다.
전임 이사장들이 ‘전원’ 임기 중 공모를 낸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부동산원의 경우 손태락 원장 임기 종료 5개월이 지난 2024년 7월 15일 원장 공모를 냈다.
4월 총선과 6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이유로 들었지만, 전임 김학규 원장이 임기 3개월 전 공고를 내고 단 하루도 유임 없이 후임자에게 넘겼던 만큼 비교될 수밖에 없다.
물론 공공기관장 후임 인선 지연을 기관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각 공공기관이 공모 절차를 밟으며 후임 기관장을 임명한다지만, 주무 부처 등의 승인이 필요한 만큼 기관 단독으로 후임자 인선을 밀어붙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인사 적체 문제로 비판을 받아왔다.
당시 대통령실이 산하기관 인사까지 일일이 관여하고, 검증 체계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에 기관장 인선이 지체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계에서는 공공기관장 자리를 정치적 보은이나 인사 보상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관행이 있다.
연장선상에서 현재 여권에서 연일 전임 정권 때 임명된 기관장에 대해 사퇴를 촉구하는 이유도 국정 효율화보다 보은 인사가 목적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최은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8월 20일 “전 정부 인사들을 싹 쓸어내고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권력형 자리 몰아주기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이 내세우는 ‘기관 정상화’의 목적이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로 법원 제동 받았지만 여전히… 민주당은 9월 25일 이른바 ‘알박기 방지법’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개정안의 핵심은 공공기관장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일치시키겠다는 것이다.
정부도 9월 30일 ‘공공기관장 평가제’를 신설해 성과가 낮은 기관장 해임을 적극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 상당수가 윤석열 정부 내내 임기를 채우고, 심지어 만료 이후에도 직무를 이어간 상황을 고려하면, 민주당이 주장하는 알박기 방지 논리가 설득력을 잃는다는 지적이 야당에서 나온다.
나아가 지난 정부 출신 인사들을 향해 “기관장 알박기는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진다”고 공격하면서도, 자당 정부 시절 임명된 인사들에 대해서는 침묵해 온 태도 때문에 ‘내로남불’이라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여권은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유사한 문제로 법원에서 제동을 맞은 바 있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대통령실 균형인사비서관 등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 15명에게 관행이라며 사표를 요구한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두 사람은 공공기관 임원 13명으로부터 사표를 받아낸 혐의로 인해 2022년 1월 대법원에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각각 징역 2년(김은경),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신미숙)을 선고받았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021년 2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겉으로 드러난 사례 외에도 정권에 의해 쫓겨난 사례는 훨씬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통상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일부 공공기관장은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중도 퇴진도 상당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기관장으로 임명됐다가 문재인 정권 시절 임기 중 중도 사퇴한 한 인사는 10월 1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 배경으로 “정권의 외압”을 지목했다.
“정부 정책과 밀접한 기관은 정권이 바뀌면 기관장이 교체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하지만 연구·개발(R&D)처럼 장기 비전과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한 곳에서는 임기를 존중하는 게 맞다.
당시는 그런 원칙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사회 분위기가 앞섰다.
임기가 남아 있었지만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압력을 받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지는 않았지만, 결코 끝이 홀가분하지도 않았다.
” 전문가들도 대통령 임기에 맞춘 공공기관장의 일괄 퇴출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유능한 사람은 ‘더러운 꼴 보기 싫다’며 중도에 떠나고, 오히려 무능한 사람은 ‘월급이라도 챙기자’며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현행 방식도 문제 여지는 있다”면서도 “공공기관은 성격과 기능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기관별 특성과 필요를 고려해 임기와 후임 인선방식을 정해야지, 모든 기관장의 임기를 대통령과 일괄적으로 맞추겠다는 발상은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알박기 기관장 나가라”지만 文 정부 인사만 2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