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보수의 길] 우파 내부 정치 지형의 변화
● ‘중도 완충지대’ 충청, 영남과 연대?
● 커뮤니티가 만든 정치, 축제형 자유 운동 부상
● 복지에서 기회로 정책 초점 전환 필요
● 새로운 보수가 해야 할 일은 굴종 아닌 냉정한 재평가
● 역사·문화전쟁에 당당히 참여하는 새로운 보수
9월 28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열린 사법파괴·입법독재 국민 규탄대회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 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한국 보수의 무게중심이 서서히 충청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캐스팅보트였던 충청은 정권교체기의 균형추로 기능했지만, 독자적 주체성은 상징에 머물렀다.
김종필, 이회창, 안희정, 반기문 등 걸출한 인물들이 ‘충청대망론’의 주역으로 거론됐으나 누구도 그것을 실현하지 못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역시 충청 출신이지만 지역 기반의 정치세력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호남 패권이 약화된 지금의 정치 환경에서 ‘지역 정치’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충청이 주목된다.
2025년 8월 국민의힘이 장동혁 대표 체제로 돌입하면서 판을 바꾸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9월 27~29일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충청권 국민의힘 지지율은 50% 안팎으로 민주당을 15%포인트 이상 앞섰고, 장 대표가 18.3% 지지율로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1위를 기록했다.
충청 출신 인사가 전국 단위 조사에서 선두에 선 것은 2000년대 초 이회창 전 총재 이후 처음이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는 충청이 더는 ‘중도의 완충지대’가 아니라, 수도권과 호남의 허리를 가르며 영남과 연대하는 결단의 지역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과거 박정희-김종필 연대가 산업화 시기 정치의 구심이었다면, 오늘의 영남-충청 연대는 장동혁이라는 정통 우파부터 중도까지 아우르는 실용주의형 리더십을 매개로 한 대중 우파의 새 모델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보수진영에는 이미 다수의 엘리트형 정치인이 존재하지만, 오늘의 유권자는 스펙보다 공감력과 확장성을 중시한다.
충청을 기반으로 한 장 대표의 부상은 이러한 시대 변화를 반영한다.
장 대표는 교육부 공무원과 판사 출신으로 행정적 안정감과 균형감을 갖추었고, 대중 친화력과 소통 능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장동혁 리더십은 아직 ‘정치적 실험’이자 ‘검증의 단계’에 있다.
그러나 수도권 2030세대가 공정·실용·자유의 가치에 공감하며 이 신(新)지역동맹 구도에 호응할 때, 보수는 지역을 넘어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확장형 우파로 재편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문화전쟁, 2030의 反中봉기
보수의 세대교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과제다.
‘노무현 세대’로 불리는 4050세대가 더불어민주당과 강한 정서적 일체감을 보이는 상황에서, 2030세대는 그에 대한 반발로 우파 성향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2030세대는 전혀 다른 정보 생태계 속에서 움직인다.
유튜브, 디시인사이드, 스레드(Threads), 디스코드, 유튜브 쇼츠 등 디지털 서브컬처 공간에서 스스로 의제를 소비하고 재가공하며, 기존 언론과는 독립된 정보 확산 구조를 구축했다.
이러한 2030 주도의 장외 집회와 온라인 하위문화는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신(新)우파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을 거치며 청년 중심의 ‘자유대학’ 시위, 반중(反中) 퍼포먼스가 확산됐고, 정부의 중국인 무비자 입국 조치와 경찰의 반중 시위 단속은 “반미, 반일 선동은 부추기더니 반중은 왜 안 되느냐”는 구호와 함께 거리에서 온라인으로, 다시 공연과 가두 행진이 결합한 ‘축제형 자유 운동’으로 진화했다.
일자리와 경제를 둘러싼 중국발 위기 인식은 2030세대 정치참여의 핵심 동력이다.
필자가 2025년 7월 엠브레인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웹패널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77%, 30대의 80%가 “중국인의 지방선거 투표권 박탈”에 찬성했고, 20대의 83%, 30대의 91%가 “중국인의 부동산 구매 규제”에 찬성했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반중이 아니라, 주권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상호주의적 자유주의로 해석된다.
세계적으로 일명 트럼피즘이란 자국민 우선주의와 자유 우파 대중정치의 흐름은 세대교체와 결합하고 있다.
한국 보수가 이 흐름을 ‘극우’로 단순히 낙인찍어 배제한다면, 미래의 동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6070의 조직력과 2030의 디지털 감수성이 결합하는 세대 동맹만이 보수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2030세대는 경제적으로도 좌파가 아니다.
올 3월에 실시된 NBS 전국지표조사에서 18~29세 63%, 30대 58%가 국민연금 개혁안에 반대했고, 2023년 10월 실시된 기획재정부 국민인식조사에서는 20대 75.7%, 30대 67.6%가 보편보다 선별 복지를 선호했다.
이들은 국가 의존보다 공정 경쟁과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며, ‘모두에게 돈을 나누는 정부’가 아니라 ‘스스로 부를 창출할 자유’를 원한다.
주식·코인·창업·글로벌 투자로 무장한 개인 자본가 세대이기에 대기업 중심 경제의 낙수효과 신화를 믿지 않는다.
9월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성향의 단체들이 서울 명동에서 집회가 제한되자 종각 인근에서 ‘반중 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뉴스1
2030세대가 공유하는 경제 비전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반(反)기본소득이다.
모두가 조금씩 가난해지는 평등 대신 성과에 대한 정당 보상을 원한다.
둘째, 성장 중심이다.
재정 확장보다 공정 경쟁과 생산성 제고다.
셋째, 자유경제주의의 복권이다.
즉 규제 완화, 세금 합리화, 창업금융 활성화, 노동 유연화를 통한 일할 자유의 확대다.
보수는 이제 정책 기조의 축을 “대기업이 살아야 국민이 산다”에서 “국민이 자유롭게 일하고 투자할 수 있어야 국가가 산다”로 옮겨야 한다.
자유경제주의는 시장 만능주의가 아니라 노동과 창의의 자유, 그리고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국민경제적 동맹의 정치다.
문화전쟁이 ‘표현의 자유’의 회복이라면, 경제전쟁은 ‘부자가 될 자유’를 되찾는 일이다.
하이퍼젠더(Hyper-Gender) 시대의 정체성 전쟁
‘다양성’이 더는 자유의 언어로 작동하지 않는 시대다.
소수자 보호에서 출발한 미국의 DEI(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평등·포용) 정책은 상식과 정통을 억압하는 도덕적 교조주의(敎條主義)로 변질됐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권위주의(權威主義)는 ‘선의의 폭력’이라는 일상적 통제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포용’의 이름으로 추진된 급진적 페미니즘은 청년 남성의 군복무에 따른 보상 문제와 충돌하며, 오히려 세대 갈등을 심화시켰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체성 정치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남녀의 대립 대신 ‘국민으로서 동등한 책임’을 전면에 세우는 패러다임, 곧 하이퍼젠더(초성 시민·超性市民)의 관점이다.
이 개념은 미국의 법철학자 누스바움의 ‘역량(capabilities)’과 하버드대 교수 아마르티아 센의 ‘정의론’이 제시한 인간적 품위와 공동체 책임의 균형과도 맞닿아 있다.
이는 젠더를 해체하는 이념이 아니라 개인 안에 내재된 남성성과 여성성을 통합하는 윤리이며, 자유와 책임을 함께 지는 성숙한 시민정신의 회복이다.
그 상징적 제안이 여성 징병제다.
이는 병력 보충책이 아니라 공정과 책임윤리를 제도화하는 개혁의 출발점이다.
지난해 2월 KBS 의뢰로 실시한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여성 징병제 찬성이 절반을 넘어섰고, 노르웨이(2016)와 스웨덴(2018), 덴마크(2025)는 징병제를 성별 포괄로 전환해 남녀 모두를 대상에 포함하고, 체력·적성 검사를 거쳐 선발한다.
이러한 제도는 성 역할 고정관념을 약화시키고 공동체의식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요지는 간명하다.
권리와 의무의 대칭을 회복하고, 군 조직을 실력 중심으로 재구성하며, 젠더갈등을 협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2030세대는 더는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여성을 영원한 피해자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젠더 프로파간다에 동의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수는 이 담론을 방어적으로 피할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과거의 가부장제가 남성 중심의 특권 구조였다면, 오늘의 PC 전체주의는 그 반대편의 이념적 배타성이다.
참보수의 길은 이 두 극단을 넘어 공정·책임·헌신의 가치를 복원하는 데 있다.
여성 징병제는 그 상징적 출발점이다.
문화전쟁은 이제 권력의 향배를 가르는 상징 투쟁의 장이다.
9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2’가 흥행에 성공했음에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예술영화’ 인증에서 배제됐다.
이는 심사 기준과 위원 명단이 공개되지 않은 채 진행된 불합리한 현실과 보수 서사가 제도권에서 밀려온 현실을 상징한다.
그 뿌리는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이후, 보수가 스스로의 정당성을 ‘정치적 중립’ 명분으로 후퇴시킨 데 있다.
민주화 단일 프레임에 갇혀 보수는 ‘합리·중도’를 자임하며 자기부정과 분열을 관성화했고, 외부 프레임에 종속됐다.
‘합리적 보수’ ‘중도 개혁’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등의 구호는 영남 패권 정치에 대한 반발심을 자극했지만, 동시에 보수 지지층에게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괴감을 남겼다.
뿌리를 부정한 보수가 스스로의 대의를 지키지 못하고, 좌파의 언어를 빌려 정당성을 설명하려 한 결과다.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명목의 내부 숙청은 보수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문화·교육·예술 영역의 주도권을 좌파에 넘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자유와 법치 아래 다시 ‘통합의 정치’로
따라서 새로운 보수가 해야 할 일은 비굴한 굴종이 아니라 냉정한 재평가다.
역대 보수 정권의 공과(功過)를 객관적으로 검토하되, 그 공헌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해야 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계엄 이후 광장의 민심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였다”며 “그 정신을 이어 보수정당의 가치를 제대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계엄 조치 자체의 정당성을 논하기보다, 헌정 질서의 위기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시민적 의지의 복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선일보·케이스탯리서치가 2025년 1월 21~2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고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응답은 42%에 달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같은 해 7월 필자가 엠브레인에 의뢰해 진행한 웹패널 조사(전국 성인 1000명)에서도 김문수 후보 지지층의 85%가 계엄 조치를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와 탄핵 정국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으로 인식했고, 30% 이상이 윤석열 중심 신당 창당에 찬성했다.
이는 실제 신당 창당 가능성을 의미하기보다는, 기존 보수정당에 대한 쇄신 요구와 정치적 대안에 대한 열망이 응축된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새로운 보수는 내부 청산이 아니라 역사전쟁과 문화전쟁에 당당히 참여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
이승만에서 윤석열에 이르는 우파 리더들의 명예를 복원하고, 왜곡된 역사와 허위 프레임에 맞서며, 내부 결속과 외연 확장을 병행해야 한다.
윤석열의 고난과 투쟁이 남긴 균열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보수가 다시 태어날 공간을 예고한다.
그 균열을 통합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을 때, 보수는 비로소 ‘윤석열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성숙한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유와 법치 아래 다시 하나의 정치결사로 서는 ‘통합의 정치’가 그 해답이다.
충청, 균형 지역에서 ‘결단 지역’으로 바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