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 누구를 위한 사법개혁인가] ‘선출 권력 우위론’ 주장 자체가 위헌
● 李 “선출 권력, 사법부 우위에 있다”
● 선출 권력보다 우위에 있는 헌법
● 헌법상 삼권분립 및 각 권력 균형 명시
● 선출 권력 우위론, 사법부 무력화 시도
● 사법부 수장 임명권 가진 입법·행정부
● 3권 중 사법부 영향력 가장 약해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1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입법부나 행정부 등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인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동아DB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인 삼권분립은 초등학생도 아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며 상식이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는 서로를 견제하며, 어느 하나도 우위에 서서는 안 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민 상식에 반하는 주장을 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선출 권력들이죠. 임명된 권력은 선출된 권력으로부터 2차적으로 권한을 다시 나눠 받은 거예요.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습니다.
최고 권력은 국민이죠, 국민주권.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라면서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법이라는)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이 낯설지는 않다.
박진영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5월 1일 CBS의 유튜브 콘텐츠 ‘더 라커룸’에 출연해 “삼권분립이라는 것이 이제 막을 내려야 될 시대가 아닌가”라며 “사법부를 없애야 하는지, 아니면 국민이 사법부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지 (이런 문제를 두고)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보다 발 빠르게 고민해 볼 시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여권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선출된 권력이 우위라는 주장도 간간이, 그러나 상당히 힘을 주어 제기된 바 있다.
선출 권력보다 우위에 있는 헌법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선출된 권력인 입법부나 행정부가 임명된 권력, 즉 사법부에 우월하다는 주장은 위헌인 동시에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이 대통령도 이야기했듯이 국민주권은 최상위 권력이며, 선출된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
그런데 선출된 권력인 입법권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국민 의사의 직접적 표현인 헌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은 의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앞선다.
헌법에 위배된 법률은 위헌이며, 무효다.
이 대통령과 여권 일각의 주장과 헌법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헌법은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40조에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명시돼 있다.
제66조 제4항은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고 규정했고. 제101조 제1항에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적혀 있다.
즉 선출된 권력 우위론은 헌법상의 삼권분립 및 삼권의 견제와 균형을 규정한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이다.
변호사 출신인 이 대통령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알면서도 선출 권력 우위론을 편다면 이는 삼권분립을 사실상 부정하고 무력화하려는 시도로밖에 볼 수 없다.
삼권분립은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의 권력이 대등해야만 가능하다.
조금이라도 상하 관계가 인정된다면 하위 권력은 상위 권력을 견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 동아DB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폐해는 지난해 12월 3일 여실히 드러났다.
행정부의 수장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하위 권력인 국무총리와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당시 윤 대통령의 횡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대통령과 여권 일각의 주장처럼 사법부가 하위 권력이라면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할 근거가 없다.
그중에서도 전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은 더욱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한 일도 일종의 월권이라 볼 수 있다.
사법부인 헌법재판소가 행정부와 대등한 권력이 있어야 탄핵 심판으로 대통령을 파면시킬 수 있다.
이미 삼권 중 가장 약한 사법권 삼권분립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한 국가기관이 절대적 우위를 가져서는 안 되며, 권력의 오남용이 있을 때 다른 국가기관이 이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삼권을 선출된 권력과 임명된 권력이라는 이분법에 따라 차별화하는 것은 사실상 사법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이 10월 1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중 한 명을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
뉴스1 헌법에 명시된 내용대로라면 오히려 권한을 줄여야 하는 것은 행정부나 입법부다.
대통령과 정부가 사법부에 비해 상대적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행정부와 입법부가 사법부의 양대 수장인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게 돼 있다.
헌법 104조 1항에 따르면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법 12조 2항도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재판관 중에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행정부의 수장이 입법부의 동의를 얻어 사법부의 수장을 임명한다는 것 자체가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등한 권력이라지만 사법부에는 입법부나 행정부의 인사에 관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사법부는 입법부나 행정부의 압력에 시달릴 여지가 있다.
미국은 이 같은 모순을 막고자 대법관을 종신직으로 둔다.
판사가 정치권과 여론의 압력에서 벗어나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입법부나 행정부가 대법관에게 인사권을 무기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물론 미국 대통령에게도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지만 이는 공석이 나야 가능하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 그간 미국의 대법관 교체 주기를 감안하면 연임에 성공해 8년 집권한다고 가정하면 재임 기간 평균 1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대한민국의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6년에 불과하다.
한국의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총 14명, 헌법재판관은 9명이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나머지 13명의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提請)하고, 국회가 동의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1차 인사권은 대법원장에게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법원장 임명권을 대통령이 쥐고 있는 만큼 대법관의 제청도 행정부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헌법재판관의 임명은 대법관과 방식이 다르다.
헌법재판소법 6조 1항에 따르면 재판관의 임명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하지만 전부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관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
나머지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사법부가 스스로 임명할 수 있는 헌법재판관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입법부와 행정부 임명권이 사법부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입법부와 행정부에 비해 사법부의 권한이 약한 상황에서 여당은 5월 ‘대법관 증원’을 골자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을 발의한 시점도 절묘했다.
5월 1일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항소심 무죄판결이 파기 환송된 직후였다.
사실상 대법원을 친여 성향으로 재편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해당 개정안은 이 대통령 취임날인 6월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전직 법관들도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5월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직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법무장관, 검찰총장, 대한변협회장 등 주요 법조인과 전국 교수 1004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여당의 대법관 증원 시도에 대해 “여당 편 판사를 대거 임명해 대법원을 장악하고 여권에 유리한 판결만 하도록 사법제도 자체를 개조하겠다는 것”이라며 “민주주의 국가들이 독재로 회귀한 시발점은 바로 사법부 공격이다.
베네수엘라·헝가리·페루 등은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구성을 정권 마음대로 바꿔 사법부를 정치권력의 하부 기관으로 만들었다”고 경고했다.
선출 권력 우위론이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대통령의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은 연방제 국가라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행정 권력을 나눠 갖고 있어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기는 어렵다.
전현직 법조인과 교수 등 1004명이 5월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이들은 “사법부 독립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며 “삼권분립과 헌법 질서를 파괴하는 모든 시도에 단호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삼권분립 무너뜨리면 독재에 빠질 위험↑ 이 대통령이 가진 권한은 더 막대하다.
여당이 국회의 다수당이자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
‘제왕적 입법 권력’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전까지 민주당 대표를 맡으며 여당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행정권을 쥔 대통령이 입법 권력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양새다.
앞서 설명했듯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에 인사권을 일부 내준 기관이다.
세 권력 중 가장 영향력이 약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대통령과 그의 주장대로 국민주권이 국가를 지탱하는 최고 권력이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사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국민 의사의 직접적 표현인 헌법은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 사법부 인사 개입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방식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정반대로 사법부의 권한을 줄이려 하고 있다.
입법권과 행정권을 모두 쥔 대통령이 사법권을 공격하는 주장을 하고 여당은 입법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여당과 대통령이 힘을 합쳐 사법부를 공격하는 모습에서 독재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대통령과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사법부마저 좌우하게 된다면 견제할 수 없는 권력이 탄생하게 된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국민의 다수 의사를 앞세워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권력의 집중을 정당화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결국 전체주의 독재에 빠지게 된다.
과거 히틀러의 나치당이 그러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가 그러했다.
사법부의 권한을 건드리는 일은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이 과정에서 사법부의 독립이 훼손되면 전체주의와 독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조금씩 녹슬게 된다.
국민주권 신경 쓴다면, 입법·행정부 권한부터 줄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