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취재] 학원가 공실 쓸어가는 ‘학원 포식자’
● 사교육시장 1.8배 커질 때 시대인재 6배 급성장
● 스타 강사 억대 ‘전속계약금’ 주고 스카우트
● 경쟁 학원 이적 및 경업(競業) 금지…계약도 무시
● 대치동 ‘공실 선점’에 ‘학원 포식자’ ‘오우석로(路)’ 별칭
● 입시 정보 무단 복제, ‘킬러 문항’ 사들이다 적발
● 부채 총액 1884억 원, 자본 총액(776억 원)의 두 배
● 이것저것 더하면 재수반 월 300만, 기숙학원 400만~500만
● “돈 없으면 자녀 재수도 못 시키는 현실…사교육비 대응 필요”
▶  시대인재는 불과 12년 만에 대성학원, 이투스교육, 종로아카데미 등 기존 강호들을 잇달아 제치고 급성장하면서 사교육 판을 흔들고 있다.
최진렬 기자 이어폰을 귀에 꽂은 학생들이 교재를 품에 안고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바삐 이동했다.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발길을 서두르거나, 빵을 먹으며 터덜터덜 걷는 학생들도 보였다.
이곳은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아서인지 거리마저 긴장감에 휩싸인 것처럼 보였다.
분주한 동선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지만, 주요 목적지는 몇 군데 학원으로 수렴했다.
그중 유독 학생들의 발길이 많이 멈추는 곳이 있다.
바로 ‘시대인재’다.
시대인재는 불과 10여 년 만에 대치동 사교육 판을 흔들었다.
이 학원의 운영사 하이컨시는 지난해 대학입시 사교육시장에서 매출 기준 메가스터디교육(고등 부문)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대성학원(디지털대성 고등 부문), 이투스교육, 종로아카데미 등 기존 강호들을 잇달아 제치고 급성장해 사교육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교육시장 1.8배 커질 때, 시대인재 6배↑ GettyImages. 시대인재의 성공을 단순한 ‘대치동 성공 신화’로만 읽기에는 한계가 있다.
웬만한 상장사 못지않은 하이컨시의 재무제표 이면에는 학부모 지갑을 파고든 사교육비 문제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 1인당 연간 사교육비는 568만8000원으로 2018년(349만2000원)에 비해 56.9%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총소득이 3693만 원에서 5012만 원(2025년 6월 기준 3만6745달러)으로 35.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교육비 상승세가 소득 증가세보다 훨씬 가파른 것이다.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는 동안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린 곳이 시대인재였다.
금융감독원 전자정보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하이컨시의 매출액은 2018년 636억 원에서 2024년 4300억 원으로 6배 이상 뛰었다.
이 기간 사교육시장 규모가 19조5000억 원에서 29조2000억 원으로 1.8배 커진 것을 고려할 때 놀라운 성장세다.
대치동 학원과 관계자들에 따르면, 시대인재는 연세대 법대 출신의 오우석 씨가 대치동에서 일하던 ○○학원 관리자, 컨설턴트 등과 합심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업주이자 최대 주주(94%)인 오 씨가 당시 학원장 등을 맡지 않아 “오 씨가 학원장이 되기에 자격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등 각종 소문이 무성했다.
그럼에도 시대인재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대치동 거리에서 학생에게 “어디 학원을 다니냐”고 물으면 시대인재라는 답이 상당히 많다.
고3 수험생 김모(18) 군은 “유명 강사는 다 시대인재에 있다 보니 많이들 선택한다”고 말했다.
김군 역시 올해부터 국어, 수학 단과 수업을 듣고 있다.
사교육시장에서 ‘스타 강사’ 확보는 학원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이다.
“시대인재가 유명 강사를 쓸어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각을 보이는 이면에는 공격적인 스카우트 방식이 자리한다.
하이컨시가 강사 영입 과정에서 지불한 전속계약금은 2024년 220억 원으로 5년 새 7배 가까이 급증했다.
실제로 강남대성 등 그 나름대로 강남에서 잘나간다는 입시학원 강사들도 시대인재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학원가에선 시대인재의 급성장을 부러워하면서도 원성도 보내고 있다.
한 학원 원장은 “강사의 능력에 따른 영입 계약금이 천차만별이지만 꽤 유명하다 싶으면 억대의 돈을 주고 데려간다고 한다”며 “학원가에도 그 나름의 질서가 있는데 상도의(商道義)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요 경쟁자인 강남대성학원과 종로학원은 학원 강사에게는 전속계약금 명목으로 돈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치동 강사들은 학원과 급여 수준, 강의 기간 등 계약을 체결하고 강의를 한다.
계약서 중 핵심은 계약기간에 경쟁 학원으로 옮기지 않고, 계약기간 이후에도 일정 기간 기존 학원에서 2~5km 이내의 경쟁 학원 이적이나 별도 학원 설립을 하지 않는다는 ‘경업(競業) 금지’와 ‘수강생을 빼가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학원가에서는 “시대인재를 통해 자신의 몸값을 올리려는 강사들은 계약 내용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이로 인해 계약 위반 논란으로 민·형사 소송을 벌이는 일이 허다하다”고 지적한다.
하이컨시의 강사료 지출은 지난해 1559억 원으로 6년 사이 5배 이상 치솟았다.
공격적인 투자는 학부모 부담으로 이어진다.
당장 내년도 재수종합반은 월 수강료만 200만 원을 웃돈다.
여기에 교재비와 모의고사비가 더해지는데, 이러한 ‘학원비 외 비용’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이컨시는 지난해 도서 ‘인쇄비’로 174억6400만 원을 지출했다.
학부모들 사이에는 “이것저것 더하면 학원비가 월 300만 원, 기숙형은 400만~500만 원이 들어 이제 돈 없는 부모는 자녀 재수도 못 시킨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대치동에 학원을 차리면 돈을 쓸어 담을 것 같지만, 막상 뜯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대치동 학원가를 짓누르는 두 문제, ‘임대료’와 ‘강사료’ 때문이다.
대치동은 월세가 가장 비싼 지역으로 꼽힌다.
여기에 스타 강사를 붙잡기 위한 경쟁이 더해지면서 운영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게다가 ‘서울특별시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강의실 면적은 최대 135㎡로 제한되고, 일시 수용 인원 역시 1㎡당 1명 이하로 관리돼야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를 기점으로 대치동 임대료가 크게 오르면서 운영비 부담은 더욱 커졌다.
마침 이 시기는 시대인재가 공격적으로 강의실을 늘리고 강사를 영입한 때였다.
하이컨시의 2024년 지급 임차료는 337억 원으로 6년 사이 6배 가까이 증가했다.
학원 확장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에스원(S1)학원, 대찬학원, 새움학원, 다원교육 등의 학원이 이 과정에서 하이컨시로 흡수·합병됐다.
‘공실 선점’에 신규 진입자 애간장 단기간에 일어난 이 변화는 대치동의 소형 학원엔 치명적이었다.
매년 치솟는 임차료와 강사료로 설 자리를 잃어가던 상황이었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쐐기를 박은 차였다.
수강생이 줄면서 학원들이 경영난을 겪는 불황기에도 시대인재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원을 늘려갔다.
특히 공실이 생기면 빠르게 쓸어가 경쟁 학원들의 원성을 샀다.
당장 학원을 열거나 강의를 시작하지 않는데도 공간부터 잡아두고 상당 기간 비워두기도 했기 때문이다.
경쟁 학원이나 학원을 새로 열려는 처지에서는 눈앞에 빈 강의실이 있는데도 활용할 수 없어 애간장을 태웠다.
“자리를 구하려면 웃돈이라도 줘야 하느냐”는 불만도 많았다.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대치동 학원가는 워낙 임대 공간 공급이 제한적이라, 기회가 왔을 때 자리를 선점해 두려는 의도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이컨시 관계자는 “공간 필요에 따라 임차를 한 것”이라며 “실사용에 앞서 인테리어 등을 꾸미는 시간이 있어 외부에서는 ‘공실로 뒀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변화는 대치동 거리에서 선명히 관찰된다.
연이은 인수와 확장으로 시대인재는 현재 대치동에만 28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본관을 제외하면 되도록 학원 간판을 내걸지 않아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지만, 실상 거리 양옆으로 시대인재가 입주한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모회사 하이컨시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자연스레 시대인재에는 ‘학원 포식자’라는 별명이, 대치동 거리에는 ‘오우석로(路)’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학원 경영난의 원인이 시대인재만의 탓은 아니지만 기업형 학원의 등장이 대치동의 지형을 바꾼 것은 분명하다.
사교육시장의 팽창에도 요즘 대치동 학원들은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취재 결과, 수험생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한 대치동 A학원은 지난해 적자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치동 학원가에는 “OO학원, OO학원은 불법 과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다.
교습소 수준이 아닌 학원이 과외 행위를 한다는 것은 ‘세금 포탈’ 의도가 농후하다.
유명 강사와 ‘팀 수업’을 연결해 주고 학부모로부터 현금으로 수강료를 받아 세무 당국에 수강료 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치동에선 팀 수업 과외를 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특정 학원 명단이 돌고 있다.
강사가 교사에 돈 주고 ‘킬러 문항’ 사들여 스타 강사 못지않게 수험생들이 중시하는 것은 이른바 ‘킬러 문항’ 적중률이었다.
시대인재는 초고난도 문항으로 구성된 자체 모의고사를 마케팅 전략으로 삼았고, 수능 당일 초고난도 문제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는 최상위권 수험생들을 끌어모았다.
사교육업계의 성패는 결국 최상위권 학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들이 몰릴수록 입시 결과가 좋아지고, 그로 인해 다시 우수 학생이 모이는 ‘선순환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과잉 경쟁이 불러온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시대인재가 현직 고교 교사들로부터 초고난도 문항을 불법적으로 매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시대인재 관계자는 “학원과 무관한 개별 강사가 벌인 문제”라며 “향후 주기적으로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사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연이은 인수와 확장으로 시대인재는 서울 대치동에만 28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시대인재 홈페이지 캡처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3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시대인재가 학생 모집 과정에서 과장 광고를 내보낸 사실을 적발했다.
하이컨시는 “메이저 의대 정시 정원 2명 중 1명은 시대인재N 출신”이라고 홍보했지만, 이는 실제 진학 실적이 아닌 자체 추정치였다.
올해 6월 시대인재 입시분석센터 팀장 A씨와 재수종합반 담당자 B씨가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
진학사 웹사이트의 입시 정보를 크롤링(데이터 자동 추출) 프로그램을 이용해 무단 복제한 혐의다.
하나같이 사교육시장의 질서를 왜곡시키는 과열 경쟁의 단면이다.
가파른 확장의 그늘에는 재무적 부담도 자리하고 있다.
시대인재는 매년 공격적으로 투자를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차입을 확대해 왔다.
올해 경기 용인시에 문을 연 대규모 기숙학원 건설 과정에서는 한국투자캐피탈로부터 1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끌어왔다.
2024년 기준 부채총액은 1884억 원으로, 자본총계(776억 원)를 두 배 이상 웃돈다.
화려한 실적으로 지탱되던 부채는 성장세가 꺾일 경우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대치동 학원가의 한 관계자는 “시대인재가 사실상 대치동을 장악한 상황이라 ‘시대인재가 흔들리면 대치동 전체가 함께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혀를 찼다.
전문가들은 대형 학원이 시장을 장악하는 구조가 사교육비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백병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학원은 시설 투자와 강사 영입에 많은 비용을 쏟아붓고, 자금력이 약한 중소 학원은 설 자리를 잃는다”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투자비용은 결국 학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높은 사교육비 부담은 저출생 등 한국 사회의 여러 고질적 문제와 맞닿아 있는 만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사교육비 문제에 대한 총체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치동 대표 학원 ‘시대인재’ 급성장의 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