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4일 서울 중구 SKT타워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강준혁 기자
SK텔레콤(SKT)이 유심(USIM) 정보 침해 사고로 피해를 본 고객의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를 결정했다.
회사는 정보 유출이 가입자와 회사 간 계약상 신뢰를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라는 정부의 법률검토를 수용했다.
고객 이탈이 거세지면 수조원 단위 손실이 우려되는 만큼 SKT는 마케팅 활동을 강화해 해지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고객 신뢰 회복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유영상 SKT 대표는 4일 서울 중구 SKT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날 이사회에서 위약금 면제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며 "해킹 침해 사고가 불거진 올해 4월19일부터 이달 14일 사이 발생한 약정 고객의 위약금을 전액 면제한다"고 밝혔다.
유 대표는 "긴급 결정된 사안으로 빠르게 실행할 수 있도록 환급 방식으로 진행한다"며 "신청 이후 일주일 내 신청한 계좌로 현금이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위약금 조회와 환급 신청은 티월드 홈페이지와 공식 대리점, 고객센터에서 가능하다.
위약금은 공시지원금과 선택약정할인 등 약정과 관계없이 가입자가 신청하면 면제된다.
공시지원금은 스마트폰 구입 시 통신사가 일부 금액을 할인해 주는 제도다.
선택약정할인은 가입한 요금제의 25%를 감면해 준다.
다만 위약금을 제외한 휴대폰 할부금은 고객이 그대로 부담한다.
SKT 요금제와 SK브로드밴드(SKB)의 인터넷, IPTV 등 유선 상품을 결합한 할인에 대해서는 별도 위약금 혜택이 없다.
만약 SKB 유선 상품의 약정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해지하게 되면 해당 위약금은 고객 부담이다.
KT와 LG유플러스로 번호이동을 하면 기존 결합할인도 사라진다.
위약금 환급 규모는 이달 5일부터 조회할 수 있다.
신청은 15일부터 받는다.
신청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현금이 계좌에 입금된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강준혁 기자
SKT의 이번 결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법무법인에 의뢰한 법률검토를 수용한 결과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2차관은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진행한 법률자문에서 5개 기관 중 4개 기관이 이번 침해사고를 SKT의 과실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어 "안전한 통신서비스 제공이라는 계약의 의무 위반으로 위약금 면제가 가능하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위약금 면제는 SKT 침해 사고를 둘러싼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
정보 유출 피해를 본 가입자들을 중심으로 SKT의 귀책으로 발생한 사태인 만큼 약정 기간 중 다른 통신사로 번호를 옮기더라도 위약금을 받아선 안 된다는 여론이 확산했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5월 청문회를 열고 SKT가 위약금 면제를 조속히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대표는 청문회에서 "위약금 면제 시 한 달 기준 최대 500만명까지 이탈할 것"이라며 "위약금과 매출을 고려해 3년간 7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핵심은 SKT의 귀책사유 여부다.
법무법인들은 대부분 회사 측 과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사업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적절한 보호조치가 없었던 점에 비춰 계약을 무효로 할 만큼의 중대한 문제라고 해석했다.
SKT가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위약금 면제 권고를 받아들인 배경에는 고객 신뢰 회복이 꼽힌다.
만약 정부의 법률검토에도 위약금 면제를 거부했다면 추가적인 행정조치가 부과되고 최악의 경우 기간통신사업자 등록이 취소될 수 있다.
여기에 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가입자들의 소송이 이어지면 혼란이 불가피하다.
위약금 면제를 수용한 SKT 이사회 역시 재무적 충격에 따른 기업가치 훼손을 감수하고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객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유 대표는 "위약금 면제는 회사로서는 매우 중대한 결정"이라며 "이사회가 내부 법률 검토와 시장 영향, 고객 신뢰 등 장기적 관점을 고려해 시행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위약금이 면제되는 해지 기간은 이달 14일까지로 이날 공식 발표 이후 10일에 불과하다.
위약금 면제가 공식화되면 해지 수요가 물밀듯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기간을 한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까지 가입자 이탈을 막는 역할을 했던 위약금이 면제되면 이탈 규모가 더 거세질 수 있다.
유 대표는 "해킹 사태 이후 2개월간 많은 고객들이 이탈했고 현재는 유심 교체와 유심보호서비스로 불안 요인이 감소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지금 시점에 위약금을 추가로 면제할 요인은 없다고 보지만 그동안 위약금 때문에 떠나지 못한 고객을 고려해 10일을 연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킹 사태가 본격화한 4월말부터 지난달 말까지 SKT에서 경쟁사로 옮긴 가입자는 60만명에 달한다.
위약금 면제 공식화로 비교적 잠잠해졌던 이탈 속도가 더 빨라질 우려가 있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위약금 관련 비용에 더해 가입자 기반이 흔들리면서 발생하는 매출 감소가 중장기적인 재무적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SKT는 위약금 면제와 함께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감사 패키지'도 내놨다.
위약금 면제로 고객 이탈이 가속하는 것을 막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해석된다.
모든 고객에게 8월 통신 요금을 절반 인하하고 연말까지 50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와 제휴 할인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특히 침해사고 이후 해지한 고객이 6개월 이내 재가입하면 기존 가입 연수와 멤버십 등급을 복구해 주는 방안도 발표했다.
SKT, 신뢰회복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