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다시 CEO 선임 국면을 맞은 가운데 거버넌스의 향방을 추적합니다.
서울 종로구의 KT 광화문 이스트 사옥 전경과 김영섭 KT 대표이사 사장 /사진 제공=KT
김영섭 KT 대표이사가 연임 포기를 선언하면서 KT는 또다시 최고경영자(CEO) 교체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민영화 이후 황창규 전 회장만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마쳤고 나머지는 모두 정권교체기에 낙마했다.
명분은 뇌물, 배임, 해킹사태 등으로 달랐지만 타이밍은 한결같았다.
김 대표도 해킹책임론으로 물러나는 형식이지만 선임 때부터 외풍 논란을 겪었다는 점에서 선배들의 운명을 되풀이했다.
KT가 CEO 임기인 3년마다 정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김 대표 후임 선정 과정에 산업계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권 바뀌면 CEO도…23년간 반복된 패턴
KT 민영화 이후 CEO들 /그래픽=이진솔 기자
김 대표는 이달 4일 열린 이사회에서 차기 대표이사 공개모집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식화했다.
2026년 3월까지 정해진 임기를 채운 뒤 퇴진하는 수순이다.
표면적 이유는 불법 초소형 기지국(펨토셀) 해킹사태에 대한 책임이다.
올해 8월 발생한 이 사건으로 최종 피해자 368명이 발생했고 피해액은 2억4000만원에 달했다.
불법 펨토셀에 접속한 고객 약 2만2000명의 개인정보도 유출됐다.
김 대표는 지난달 여러 차례 "경영의 총체적 책임은 CEO에게 있으므로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김 대표에 대한 논란은 해킹사태 이전부터 불거졌다.
선임 과정에서부터 전 정부와의 연결고리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구현모 전 KT 대표는 자신의 연임 무산 과정을 증언하며 "대통령실에서 화를 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폭로했다.
당시 구 전 대표에 이어 대표 후보로 선정됐다 사퇴한 윤경림 전 KT 부문장도 "대표 후보 선정 직후 시민단체의 고발과 검찰 수사가 잇따랐다"며 "지인들이 '용산 분위기가 안 좋으니 그만두라'고 권유했다"고 밝혔다.
2002년 민영화 이후 KT CEO들의 행보를 보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CEO가 퇴진하는 구도가 반복됐다.
임기 중 검찰 수사를 받으며 물러나는 사례도 이어졌다.
남중수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직후 납품비리·뇌물죄로 구속 수감됐다.
이석채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구 전 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국민연금이 개입하며 연임을 포기했다.
김 대표는 불법 기지국 사태와 정치권에서 제기된 책임론에 밀려 연임을 포기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유일하게 연임한 인물은 황 전 회장이다.
그마저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상품권깡' 후원 혐의로 압력을 받았지만 끝까지 버텨내며 완주했다.
KT가 CEO를 교체할 때 표면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늘 달랐다.
하지만 CEO와 관련된 논란이 정권교체기에 집중적으로 제기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유분산 구조의 취약성…SKT와 엇갈린 대응
KT는 기간산업이면서 과거 공기업이었다는 지위 때문에 정치적 외풍에 유독 취약한 구조다.
현재 최대주주는 현대자동차그룹(8.07%)이지만 국민연금(7.67%)과 외국인투자가(49%)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다.
특정 세력이 일방적으로 경영에 미칠 결정을 좌우하기 어려운 구조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정권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를 키운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해킹사태를 겪은 SK텔레콤(SKT)의 행보는 KT와 대조를 이룬다.
SKT는 올해 4월 유심 해킹사고로 2696만건의 고객정보가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13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수천명의 가입자가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이에 SKT는 내부 거버넌스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사고 발생 6개월 후인 10월 법조인 출신인 정재헌 대외협력 사장을 신임 CEO로 선임하며 '리스크관리형 리더십'을 내세웠다.
판사 출신으로 SK그룹 거버넌스위원장을 지낸 정 CEO는 법적분쟁 관리, 내부 컴플라이언스 강화, 고객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라는 명확한 오너십 아래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진 셈이다.
한 증권 업계 관계자는 "SKT는 최 회장이라는 명확한 오너가 있어 CEO 선임 결정이 곧바로 그룹 차원의 장기전략과 기업가치 향상으로 연결된다"며 "반면 KT는 소유가 분산된 데다 정부의 직간접적 영향력까지 작용하면서 정작 기업가치나 주주 이익과는 동떨어진 정치적 논리로 CEO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상 KT CEO들은 연임을 염두에 두면서 취임 1~2년 차에는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에 집중하고 3년 차부터 가시적인 실적을 내는 패턴을 보인다"며 "그런데 KT는 CEO가 3년 차에 해킹사고를 맞으면서 제대로 된 책임경영을 기대하기 어려운 타이밍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결국 차기 CEO 체제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발 빠른 대응도, 근본적인 재발방지책도 나오기 힘든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KT 거버넌스 시험대]① 3년마다 정권 눈치…반복된 CEO 교체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