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또 선출직 경험이 없는 비정치인을 대선후보로 세우려 한다.
반기문, 윤석열, 한덕수로 이어지는 용병 중에서도 한덕수는 특히 위태롭다.
보수정당은 왜 이럴까. 4월29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한덕수 전 국무총리(76세, 이하 직위 생략)는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 노무현 정부 때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 이명박 정부 때 주미 대사,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로 일한 관료다.
4월29일 국민의힘 지도부는 자기 당 대선후보와 한덕수의 단일화를 공식화했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선출직 경험이 없는 비(非)정치인을 영입해 대선후보로 세우려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대선에서 0.7%포인트 차로 당선된 윤석열도 검사 출신 ‘용병’ 후보였다.
박근혜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조기 대선을 앞두고는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서 갈라져 나온 탄핵 찬성 세력인 바른정당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후보로 추대하려 했다.
반기문은 각종 설화 끝에 귀국 20일 만에 불출마 선언을 했다.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되긴 했지만 위헌·위법적인 12·3 비상계엄을 일으켜 임기 3년도 못 채우고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결정으로 파면됐다.
‘용병’ 후보의 말로가 좋지 않았는데도 어째서 또 용병일까. 일단 ‘한덕수 대망론’자들은 국민의힘 후보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고 본다.
이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한국갤럽 4월 통합 조사에서 장래 정치 지도자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37%인 데 비해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8%,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6%에 그쳤다(이하 인용한 모든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벌인 관세전쟁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주미 대사를 지낸 경제 관료 출신 한덕수의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본다.
한덕수는 전북 전주 출신이라 외연 확장이 가능하다고도 주장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을 거론한다.
2002년 대선에서 30%대 지지율로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던 이회창을 각각 20%대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던 노무현과 정몽준이 단일화해서 꺾은 사례를 말한다.
노무현은 당초 정몽준에 비해 여론조사에서 열세였음에도 ‘국민 여론조사’ 방식으로 단일화하는 승부수를 던졌고, 이후 여론조사 지지세가 노무현에게로 쏠리면서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했다.
심지어 선거 전날 정몽준이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음에도 지지자들의 막판 결집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런 ‘드라마’가 이번 대선에서도 펼쳐지길 기대하는 것이다.
‘노무현-정몽준 모델’이 불가능한 이유 그러나 상대 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략통으로 꼽히는 우상호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런 ‘제2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론’에 대해 “잘못된 가설에 기초하고 있다”라고 혹평했다.
“정몽준과 노무현은 지지 기반이 달랐다.
(월드컵 인기로 대선주자로 떠오른) 정몽준은 어디까지나 제3지대의 독자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안철수 현상’의 안철수와 비슷한 존재였기에 두 후보의 만남이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 3년 총리를 한 사람이 국민의힘 사람이지, 어떻게 무소속이나 제3지대라고 볼 수 있나?” 일각에서는 한덕수 출마가 ‘반기문 시즌 2’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조차 과분한 분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반기문은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처음 등장한 2016년 6월 둘째 주에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26%를 기록했다.
중도층 사이에선 22%였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한국갤럽 4월 통합 조사에서 한덕수 지지율은 4%다.
김문수(8%), 한동훈(6%)과 오차 범위를 고려할 때 큰 차이가 없다.
더구나 중도층에서의 한덕수 지지율은 2% 수준에 그친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4월22~24일 전국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덕수가 ‘출마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70%에 달했고 중도층에서는 77%로 더 높았다.
2017년 2월1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용병’ 후보였던 윤석열은 2022년 대선 이틀 전 한국갤럽 조사에서 중도층 지지율 47%를 기록했다.
우상호 공동선대위원장은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집권 세력에 맞서 싸우면서 생긴 공정과 상식이라는 상징이 윤석열에게는 있었고 그것이 중도층에게 일정 부분 카타르시스를 줬다.
그런데 한덕수에게 공정과 상식의 가치가 있나? 윤석열에겐 속았지만, 한덕수에게는 속을 이미지조차 없다”라고 말했다.
우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구상하는 ‘반명(반이재명) 빅텐트’에 대해서도 혹평했다.
“이낙연 전 총리와의 연대를 말하는데 대한민국에 이낙연 지지층이 몇 퍼센트나 되나?(앞서의 한국갤럽 4월 통합 조사에서 이낙연 지지율은 1%다.
) 반이재명 전선을 치려면 적어도 탄핵이 인용된 다음에는 윤석열과 거리를 뒀어야 중도가 움직인다.
윤석열의 잔재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반명 연대는 작동하기 어렵고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들어갈 유인이 없다.
민주당은 별로 긴장하지 않는다.
” 반복되는 대선후보 ‘용병’ 차출론은 한국 보수정당의 전국적 지지 기반이 무너지고 쪼그라든 현실과도 관련이 깊다.
김영우 전 국민의힘 의원은 “선거 실패를 거듭하면서 ‘영남 정당화’되다 보니 당이 일반 민심과 동떨어지는 악순환에 접어들었다.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계속 소외되거나 떨어져나간다.
공천받기도 힘들고. 그러다 전국 선거가 돌아오면 수도권·중도·청년 표는 가져와야 하니 자꾸만 외부에서 자원을 찾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영남 정당화는 의원들의 이해관계를 바꾼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전국 선거에서 지더라도 자신들의 지역구에서는 이길 수 있는 의원들로서는, 어쩌면 당장의 대선 승리보다도 당권을 확보해서 향후 있을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공천권을 행사하거나 관련된 당내 지분을 갖는 게 더 중요해진다.
이러면 당내에 일정한 기반이나 세력을 가진 사람보다는 세력이 없는 사람이 들어오는 걸 선호할 수 있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이었고 정치 경험이 적긴 하지만) 당대표를 지냈고 당내 ‘세대교체’를 예고한 한동훈보다는, 한덕수처럼 현재의 당내 역학 구도를 가장 덜 흔들 외부인이 대선후보가 되어야 내부자인 자신들(현 상황에선 친윤석열계)이 당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덕수 대망론의 주축을 이루는 의원들이 친윤계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정당의 기능에 반한다.
무릇 정당이란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를 조직해 일관성 있는 논리하에 정강·정책으로 만들어내고, 이를 실현할 정치인들을 교육시켜 지방정부에서부터 선출직으로 키워내는 조직이다.
“대선 후보자를 계속 만들어내는 일은 정당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외부에서 계속 누군가를 데려와야 한다는 것은 정당으로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재생산이 안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윤석열이라는 용병을 데려와 크게 실패했다면 무언가 되돌아봐야 할 텐데, 좀처럼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더 심각한 것은 한덕수가 단순한 용병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윤석열 앞에서 12·3 비상계엄을 반대했다고 주장하지만,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하기까지 반헌법적 행위에 선을 긋는 어떤 발언이나 행동도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다.
한동훈이 군과 경찰에게 “반헌법적 계엄에 동조하고 부역해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말하는 동안, 한덕수는 정상적 국무회의를 거친 계엄이 아님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게다가 한덕수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여야 합의가 없다’며 거부하다가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된 인물이다.
권한대행을 이어받은 최상목 부총리가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지 않았다면, 자칫 헌재가 작동 불능에 빠질 수도 있었다.
2021년 6월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윤석열. ©EPA 비록 헌법재판소가 한덕수에 대한 탄핵을 기각해 복귀하긴 했지만,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은 한덕수가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지 않은 행위는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무를 규정한 헌법 제66조, 헌법재판관 임명에 관한 헌법 제111조, 공무원의 성실의무를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제56조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파면을 정당화할 사유까지는 아니라고 했을 뿐이다.
정계선 재판관은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국민이 아니라, 윤심이 부른 후보” 한덕수는 4월8일에야 뒤늦게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고,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2명을 지명하기도 했다.
그가 지명한 2명에 대해서는 헌재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그 시도가 무산됐다.
본안 판단은 나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헌법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음을 헌재가 인정한 것이다.
이 중 한 명은 비상계엄 다음 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주현 민정수석과 ‘안가 회동’을 해 내란 방조 피의자로 입건된 이완규 법제처장이었다.
이 지명이 윤석열의 뜻과 무관하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윤석열이 측근들에게 전화해 한덕수 대행의 출마를 도우라고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덕수는 “국민이 부른 후보가 아니라, 윤심이 부른 후보(우상호)”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덕수가 5월2일 대선에 출마하면서 권한대행으로서 그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대선 출마를 위한 판단이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덕수는 권한대행으로 재임하는 동안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여덟 번 행사했다.
5월3일 국민의힘 경선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단일화를 서두르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모양새다.
그 자신이 윤석열과 내란을 공모했다는 의심을 받는 피의자이기도 한 한덕수는, 12·3 비상계엄으로 파면된 대통령의 후임자를 뽑는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수십 년간 입어온 ‘관료’의 정체성을 벗고 ‘정치인’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기로 마음먹었다.
그 차림새가 얼마나 볼썽사나울지 비춰주는 거울을 잃어버린 채.
국민의힘 ‘용병’ 끝판왕, 한덕수 대망론은 왜 틀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