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세종시 국토부 건물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김윤미씨. ©시사IN 이명익
쿠팡에서 상복을 주문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상복을 입고 거리에 서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2024년 12월29일 무안공항에서 일어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아버지 김세인씨와 어머니 송양매씨를 잃은 딸 김윤미 씨(43)는 3월17일 처음으로 검은 상복을 입고 서울지하철 삼성역 출구 앞에 섰다.
사고 여객기를 만든 항공기 제조사 보잉 측의 잘못을 따지는 국제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혼자서라도 거리에 나서기로 결심한 건 장례 이후 서울로 돌아와 일하던 도중이었다.
20년 넘게 방송국에서 탐사 프로그램 작가로 일하고 있는 그는 그날도 어느 살인사건을 취재 중이었다.
문득 회의감이 몰려왔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정작 내 부모는 왜 돌아가셨는지 모르고 있었다.
탄핵 국면이 길어질수록 참사는 점점 잊혔다.
진상규명을 온전히 정부에 맡기기에는 불안했다.
“사조위(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국토부 산하기관이에요. 아무리 독립적으로 조사한다지만 예산도, 인사권도 다 국토부가 쥐고 있는데 과연 ‘독립’이 될까요? 솔직히 한국에서 조사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요. 비행기 기체는 미국, 엔진은 프랑스에서 만들었잖아요. 한국에서 만든 건 로컬라이저를 심은 콘크리트 둔덕, 그 죽음의 옹벽뿐이에요. 그것도 국토부가 국토부 매뉴얼을 어겨서 만든 건데, 그걸 국토부 기관에서 조사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믿나요. 유가족은 비행기 블랙박스에 기록된 모든 내용이 공개되기를 원해요.” 김윤미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세종시 국토부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려고 노력한다.
눈여겨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솔직히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처럼 느껴지잖아요. 흔한 교통사고도 아니고 항공 참사니까.” 그래도 지치지 않는다.
자신이 그랬듯 그 누구든 참사 유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어떤 착한 시민단체, 어떤 착한 지도자가 해주지 않아요. 유가족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해요. 얼마나 진상규명이 돼야 만족하겠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는데, 어렵다는 건 알지만 100%라고 생각해야 살아갈 힘이 나요.” 어머니와 나눴던 마지막 카카오톡 대화. 김윤미씨는 어머니가 담근 마지막 김장 김치를 아껴 먹고 있다.
©김윤미 제공 유가족이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높이면 곧바로 ‘보상금 때문이냐’는 비난이 날아오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스스로 상복을 입고 허리춤에 찬 휴대용 마이크 볼륨을 높이는 그가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었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카카오톡 대화였다.
‘아빠한테 20(만원) 보냈으니 (태국 여행 가서) 뭐 사먹어.’ ‘김치 맛있어(?)’ ‘웅 맛있어.’ 그리고 김치 한 포기와 수육 사진. ‘수육에 먹었어.’ ‘잘했다.
고마워.’ ‘돈 많이 벌면 더 많이 주께.’ ‘알았다.
고마워. 사랑해.’ 여행 떠나기 일주일 전 친정 엄마가 생전 마지막으로 보낸 김장김치를 조금씩 아껴 먹는 딸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단 하나다.
다가오는 어버이날 ‘딸이 여기서 뭐라도 하고 있다’는 걸 부모님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어버이날 선물, 이 길밖에 없다면 [사람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