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눈앞에서 정치적 지반이 내려앉았다.
한국은 곳곳에서 지반침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싱크홀의 나라가 됐다.
섣부른 정답을 내놓기 전에 물어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3월24일 대형 땅꺼짐 현상이 발생한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 도로의 모습. 이 사고로 희생된 이를 기리는 국화꽃이 인근에 놓여 있다.
©시사IN 박미소
지난해 겨울 한국의 위기는 싱크홀(땅꺼짐)처럼 왔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한국의 정치적 지반이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땅이 꺼졌고, 갑자기 뚫린 검은 구멍 속으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갔고, 그렇게 빨려 들어간 구멍 속에서 흉한 것들을 목격했고, 수개월에 걸친 분투를 통해 사람들은 간신히 지상으로 기어 올라오는 중이다.
아직도 여진이 계속되는 이 난리법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헌정의 위기였을까. 현직 대통령이 위헌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헌정의 위기였지만, 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을 했다는 점에서 헌정의 승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였을까. 대통령이 국민 다수의 열망을 배반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위기였지만, 탄핵을 통해 민의를 관철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승리이기도 하다.
그런가? 정말로 승리했나? 한국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만신창이가 된 나라에서 지반침하는 계속되고 싱크홀은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가 한 칼럼에서 묘사한 대로 싱크홀은 단순한 도시 재난이 아니다.
2018년부터 2660일 동안 싱크홀이 1349건 발생했는데,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관련 당국은 지반침하 안전 지도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칠 줄 모르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싱크홀이 발생한 끝에 불법 계엄이라는 대형 정치 싱크홀이 발생했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자기 목전의 이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태의 미봉에 급급할 뿐. 한국이란 나라의 근본적인 지반침하에 대해서는 논의를 회피한다.
대신, 한국의 위기를 몇몇 개인의 문제나, 특정 정당의 문제나, 여야 대립의 문제나, 헌법 조항의 문제로 환원한다.
그러나 싱크홀은 원인이 발생한 장소와 실제로 붕괴가 일어난 장소가 다른 법. 한국은 지반침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싱크홀의 나라다.
그러니 물을 수밖에. 한국이란 대체 무엇이냐고. 한국의 위기를 몇몇 개인의 문제나, 특정 정당의 문제나, 여야 대립의 문제나, 헌법 조항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기 위해 물어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문제가 보이는 지상에만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지하에도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물어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목전의 위기가 뿌리 깊다는 사실을 환기하기 위해 물어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문제임을 강조하기 위해 물어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물어서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
계엄군의 난입으로 부서진 국회 내부 출입문. ©시사IN 박미소
물론 궁금하다.
왜 계엄이 시도되어야 했는지. 그런 시도를 감행한 사람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그런 시도를 가능하게 한 조건은 무엇인지. 뚜렷해진 우경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어야 하는지, 대통령 임기는 몇 년이 되어야 하는지. 대통령 집무실은 어디여야 하는지. 이 많은 사회적·정치적 질문에 지식인들은 답할 것이다.
정답을 알든 모르든 답할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한다는 것은 그 문제들의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고, 발언을 작심한 이상 아는 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섣부른 정답을 내놓기 전에 물어야 한다, 한국이 무엇이냐고.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한국을 모른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한다.
섣부른 정답을 내놓기 전에
물론 궁금하다.
이 위기를 넘어설 방법이 무엇인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경제적 쇠락을 막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인구를 늘릴 수 있는지, 증세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지방 소멸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대학입시 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대학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연금은 누가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와 한·일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이 많은 정책적 질문에 대해 난립한 대통령 후보들은 답할 것이다.
정답을 알든 모르든 답할 것이다.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것은 그 문제들의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고, 출마한 이상 아는 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섣부른 정답을 내놓기 전에 물어야 한다, 한국이 무엇이냐고.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한국을 모른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와 한·일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묻기 전에, 아니 묻는 동시에, 우리와 한국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한국을 한국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한국이란 공동체를 지탱해주는 규범은 무엇인지, 고통을 감수해가며 지킬 가치는 무엇인지, 한국이란 가건물을 지탱할 지반은 어떤 상태인지 물어야 한다.
그렇게 계속 물어서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 전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한국이 무엇인지 계속 물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충분히 모른다는 인식에 도달해야 한다.
우리는 실로 모른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양질의 역사 서술이 없기에 우리는 한국의 과거에 대해 잘 모른다.
식민지 역사학으로 인해 과거가 왜곡되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과도한 민족주의로 인해 과거가 왜곡되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사이비 역사학으로 인해 과거가 왜곡되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가 바뀌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분절된 사실에만 집착할 뿐 정교한 서사를 소홀히 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거대 서사에만 집착할 뿐 세세한 사실을 충분히 정리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우리는 한국의 역사를 잘 모르기에 한국을 잘 모른다.
우리는 실로 모른다.
모두가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권위가 없기에 우리는 한국의 현재에 대해 잘 모른다.
전통과 권위라는 이름의 아버지는 죽었기에,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버지는 죽었지만, 아버지 없이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다.
서로 지킬 규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기에, 우리는 현재를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다.
함께 지킬 도덕이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변질되었기에, 우리는 환멸 없이 현재를 살아갈 자신이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법원을 때려 부수었기에, 우리는 법원의 권위를 누릴 자신이 없다.
헌법 조문이 어떻게 바뀌든, 헌법이라는 근본 규범이 흔들리고 있기에, 우리는 질서를 유지할 자신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인도할 규범을 잘 모르기에 한국을 잘 모른다.
말하고 듣고 쓰는 일에도
우리는 실로 모른다.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기에, 우리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잘 모른다.
“하면 된다”라는 구호를 통해 모두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불균질한 것이었지만,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거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군부독재 타도”라는 구호를 통해 모두가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것이었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하겠다는 거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구호를 통해 모두가 통일을 이루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통일에 대한 각론은 달랐지만, 남북통일을 원한다는 거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구호 속에 모두가 도덕적이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도덕은 위선적인 것이었지만, 도덕의 가치에 대한 거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우리는 함께 실현해나갈 가치가 없기에, 한국의 미래에 대해 잘 모른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를 때, 성숙한 사회라면 그래도 할 일을 알고 있다.
성숙한 사회는 가치와 정체성을 창출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성숙한 사회는 잘 말하고 잘 듣고 잘 쓰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가치와 정체성을 창출하고 갱신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말하고 듣고 쓰는 일에도 지반침하가 진행 중이다.
모두가 민주주의와 자유와 정의를 외치지만, 모두가 다른 것을 상상한다.
민주주의를 통해 독재를 추구하고, 선거를 통해 구세주를 뽑으려 하고, 정의를 통해 특권을 누리려 든다.
보수를 자처하면서 갈아엎기를 원하고, 진보를 외치면서 퇴행을 꿈꾸고, 패배를 자인해야 할 순간에 승리를 선언한다.
모두가 뜻 모를 고성을 질러대지만, 아무도 경청하지 않는다.
제대로 말하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가치 창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모른다는 것이다.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할 언어가 학대당했으므로 우리는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기에 대화할 수 없고, 대화할 수 없기에 합의할 수도 없다.
이처럼 합의할 수 있는 청사진도, 지향해야 할 가치도, 대화를 가능케 할 언어도 부재한 오늘의 상태를 자연상태(state of nature)라고 부르자. 늘어나지 않는 자원을 두고 아귀다툼이 격화되는 상태, 질서가 있는 듯하지만 질서가 무너지는 상태, 사회가 있는 듯하지만 사회가 붕괴하는 상태, 같은 것을 보는 듯하지만 다른 것을 보고 있는 상태, 같은 것을 듣는 듯하지만 다른 것을 듣고 있는 상태, 모두가 말하지만 아무도 소통하지 않는 상태. 이 암울한 상태를 자연상태라고 부르자. 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성숙한 사회를 이루려면, 정책에 대한 논의를 넘어 가치와 정체성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맞은 올해 4월16일 선체가 거치된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렸다.
©시사IN 신선영
광명 신안산선 지하터널 붕괴 사고 소식과 함께하는 세월호 참사 11주년에, 이 글을 쓴다.
11년 동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때도 원인을 한곳에서 찾다가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한국 전체가 세월호라는 사실에 직면하지 않아서 또다시 위기를 맞지 않았나. 한국 전체를 문제 삼지 않는 한, 위기는 싱크홀처럼 오는 법.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지반이 내려앉는 법. 갑자기 뚫린 검은 구멍 속으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는 법. 이 끔찍한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한국 전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자연상태를 벗어나 성숙한 사회를 이루려면 한국 전체를 문제 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지반침하’ 땅 위에 서서 묻는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의 연재할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