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영남 순회 일정 도중 대구로 향하던 길을 돌이켜 서울로 돌아갔다.
이른바 ‘경주 회군’과 단일화 파행을 지켜보는 대구 민심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5월6일 포항 죽도시장을 찾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시민과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시사IN 김수혁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와 당 지도부가 경부선을 오르내리는 술래잡기를 벌였다.
양측은 김 후보가 당의 공식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부터, 무소속 한덕수 예비후보와의 단일화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 왔다.
단일화 협상에 응하지 않고 영남지역 일정에 오른 김 후보를 설득하기 위해 지도부가 대구행을 택했지만, 김 후보는 돌연 일정 중단을 선언하고 서울로 돌아가 버렸다.
서울로 돌아간 김 후보는 한 예비후보와 전격 회담을 가졌지만 사실상 결렬됐다.
김문수 후보는 5월6일부터 1박2일 동안 영덕·포항·경주·대구·부산을 방문하는 영남지역 순회 일정에 올랐다.
일정은 전날부터 순탄치 않았다.
국민의힘은 당 소속 대선 후보의 선거 지원 대신 5월5일 밤 8시부터 단일화 문제를 의논하기 위한 비상 의원총회를 열었다.
지도부는 의원총회가 진행되던 중 심야에 김 후보와 만났다.
당무 우선권을 주장하는 김 후보 의견을 받아들여 선대위 구성을 결정하면서 갈등이 봉합되는 듯 보였으나, 다음날 아침 다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5월6일 오전,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예비후보 양측이 참석하는 단일화 추진을 위한 첫 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김 후보 측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김 후보 측은 입장문을 발표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후보와 상의 없이 단일화 추진 기구를 만들고 5월10일 전당대회를 돌연 소집한 점 등을 지적했다.
“지도부가 김 후보를 사실상 당의 공식 대선후보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5월5일 밤에 이어 6일 오후 2시부터 비상의총을 열고 김문수 후보를 압박했다.
전 당원을 대상으로 단일화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목표 시한으로 정한 오는 5월11일 이전에 단일화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비대위원장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5월6일 김문수 후보의 포항 방문 현장에서 한 남성이 김 후보를 향해 단일화를 촉구하는 피켓(가운데)을 들어보이고 있다.
©시사IN 김수혁 영남 일정 내내 김문수 따라다닌 ‘단일화’ 질문 5월6일 오후 1시경부터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 입구에는 취재진과 시민, 지지자 200여 명이 모여 김 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영덕 산불 피해 현장을 방문한 김 후보는 이철우 경북지사와의 오찬 일정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는 김 후보에게 조속한 단일화를 당부하며 “지금 (죽도)시장 가봐야 당에 피해만 간다”라고 말했지만 김 후보는 “단일화를 안 한다는 이야기는 안 했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문수 후보는 예정보다 20분 가량 늦은 오후 1시22분께 죽도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문수 후보가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인들과 만나는 와중에도 현장에선 단일화를 둘러싼 상반된 분위기가 감지됐다.
한 남성은 경호원의 제지를 뚫고 김 후보 뒤쪽으로 접근해 종이 박스로 만든 피켓을 펼쳐 보이며 “후보님, 뒤에 좀 보세요!”라고 외쳤다.
피켓에는 ‘양보하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문수 후보가 떡집을 방문해 떡을 맛보고 있을 때는 바로 맞은편에서 ‘시간이 없읍(습)니다.
빨리 단일화하세요’라고 적힌 피켓이 등장했다.
김 후보는 개의치 않는 듯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려 보이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
시장 유세를 마친 김 후보는 예정돼 있던 기자들과 질의응답 없이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차에 몸을 싣고 포항을 떠났다.
다음 방문 장소인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는 국민의힘 김대식·엄태영 의원이 김문수 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국민의힘 소속 초·재선 의원들의 대표로 김 후보를 찾아왔다.
단일화 협상에 나서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두 의원은 김 후보의 도착을 기다리며 “날씨가 왜 이렇게 춥나”, “국민의 힘 날씨가 안 좋다는 얘기다” 같은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김문수 후보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50분이었다.
그런데 이 무렵 서울에서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김 후보의 이날 마지막 행선지인 대구로 향하는 KTX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문수 후보 캠프를 비롯한 현장 분위기가 조용히, 대신 급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컨벤션센터 내부를 둘러보며 경주 APEC 정상회담 준비 상태에 관한 설명을 들은 김문수 후보가 오후 4시10분 기자들 앞에 섰다.
작심한 듯 양복 안주머니에서 준비해 온 원고를 꺼내든 김 후보는 “당이 대선후보에 대한 지원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기습적으로 전국위원회와 전당대회를 소집했다.
이것은 지도부가 정당한 후보인 저를 강제로 끌어내리려 하는 시도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후보로서 일정을 지금 시점부터 중단한다.
서울로 올라가서 남은 여러가지 현안 문제에 대해서 깊이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한 뒤 별도의 질의응답 없이 돌아섰다.
자리를 떠나려는 김문수 후보에게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보좌진, 경호원, 기자들이 뒤엉키면서 혼란이 빚어졌다.
김대식·엄태영 의원과 주낙영 경주시장 등이 김 후보와 함께 서둘러 기자들을 피해 화백컨벤션센터 101호로 문을 닫고 들어갔다.
10분 가량 대화를 나누고 나온 김 후보는 몰려드는 취재진을 뒤로 하고 오후 4시26분 현장을 떠났다.
대신 김대식·엄태영 의원이 남아 기자들과 추가로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김 의원은 일정 중단 계획에 대해 “아까 처음 들었다”라고 밝혔다.
김 후보 캠프 관계자는 “당이 전 당원 대상 단일화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정 중단을 마음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가 일정 중단을 선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구로 향하고 있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도 발길을 돌렸다.
김 후보의 상경 소식을 접한 직후 권성동 원내대표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전역에서 하차했다.
먼저 좌석표를 구한 권 원내대표가 떠났고 권 비대위원장은 입석으로 서울로 돌아갔다.
이후 권 원내대표와 김기현 의원 등이 김문수 후보를 재차 설득하기 위해 자택 앞을 찾아 밤 11시 무렵까지 기다렸지만 끝내 빈손으로 돌아섰다.
김문수와 ‘쌍권’ 행보에 엇갈리는 대구 민심 5월6일 김문수 후보는 원래 영덕-포항-경주를 거쳐 영남 지역 최종 도착지로 대구 동성로와 수성못 인근 등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급히 방문 일정이 취소된 대구 지역 시민들이 국민의힘 ‘단일화’를 바라보는 민심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5월7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만난 상인 양연화 씨(74)는 “국민의힘에서 결정돼 나온 후보는 누구든 찍어준다는 생각이다”라면서도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차원에서 생각하면 한덕수가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 후보의 행보에 대해서는 “어차피 만나야 할 거 왜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 될 사람이라면 그런 것도 다 끌어안아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김재환 씨(67)는 “한덕수와 김문수 사이에서 (지지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문수가 원래는 단일화를 하겠다고 해 놓고 이제 와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영 괘씸하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일을 그르쳤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영림 씨(61)는 “그전까지는 한덕수를 지지하고 있었는데 어제 벌어진 일을 보고 김문수 지지로 돌아섰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문수는 당에 기탁금도 내고 치열하게 경쟁해서 당선됐는데 지도부의 무례함이 지나치다.
‘쌍권(권영세·권성동)’이 김문수를 무시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갑수 씨(62)는 “국민의힘이 자당 후보를 먼저 보호해야 하는데 거꾸로 된 것 같다.
김문수가 어렵게 후보가 됐는데 숨 고르기도 안 한 사람을 자기들 마음대로 단일화로 끌고 가려고 하니 반발이 생길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역시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김문수가 ’쌍권‘에게 너무 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그쪽으로 쏠린다”라고 덧붙였다.
계엄을 계기로 가족 전부가 국민의힘으로부터 등을 돌렸다는 김주성(52)씨도 국민의힘 지도부를 겨냥해 “한동훈도 그렇고 그 전에 이준석도 그렇고 친윤이 당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게 다 보인다”라고 말했다.
5월7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한덕수 예비후보와 김문수 후보가 단일화 관련 회동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서울로 돌아간 김 후보가 지도부의 개입 중단을 전제로 5월7일 오후 6시에 한덕수 예비후보와 단독으로 만나겠다고 밝히면서 마침내 양측의 회담이 성사됐다.
한 예비후보는 회담을 앞둔 오후 4시30분 성명을 내고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선 본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라며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양측이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회담은 사실상 결렬됐다.
보수진영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파행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김문수 ‘경주 회군’의 전말, 그리고 엇갈리는 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