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2일 제주도 한 중학교에서 40대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유족들은 사망 전까지 학생 보호자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서이초 사건 이후로도 교육 현장의 변화는 요원하다.
고(故) 현승준 교사의 유해가 안치된 제주 양지공원 납골당. 노트에 제자들의 추모 메시지가 남아있다.
©시사IN 김동인
현승준씨는 1978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 제주도 서귀포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승준씨는 제주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었다.
그가 선택한 인생은 교육자였다.
제주대학교 사범대(과학교육과)를 졸업한 후 제주 시내에 위치한 A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두 살 연하인 아내와 결혼해 두 아이를 키웠다.
훗날 동문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를 ‘무척 착한 사람, 조용하고 섬세한 사람’으로 회고했다.
학교에서는 과학 동아리를 운영하며 학생들을 챙겼고, 함께 일했던 기간제 교사들과도 꾸준히 연락할 만큼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살폈다.
그에게 학교는 월급이 나오는 직장 이상의 의미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야근을 해도 초과수당을 신청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유가족은 “평일에는 집에 와서 쓰러져 자기 일쑤였고,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 일했다”라고 말했다.
약 20년간 한 학교에서 근속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제자 중에는 그처럼 교사가 된 이들도 있다.
그러나 2025년 5월22일 새벽, 그가 일생을 바친 학교에서, 현승준 선생님은 숨을 거둔 채 발견되었다.
그날 현승준 선생님의 교무실 책상 위에는 가족에게 남기는 편지가 놓여 있었다.
편지에서 현 선생님은 최근까지 계속된 B 학생 가족의 악성 민원 때문에 심적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
올해 3학년 부장을 맡은 현 선생님은 결석과 학칙 위반을 거듭하는 B 학생 문제로 괴로워했다.
B 학생에게 생활지도를 했지만, B 학생의 보호자 역할을 하던 친누나가 이를 문제 삼으며 사태가 심각해졌다.
B 학생 보호자는 밤낮없이 현 선생님에게 전화하며 민원을 제기했고,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욕감이 들 만한 문자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3월부터 시작된 B 학생 가족의 악성 민원은 5월20일까지 계속되었고, 다음 날 밤 결국 현 선생님은 유명을 달리했다.
장례를 마친 직후인 5월25일 일요일, 현 선생님의 자동차를 가지러 학교에 들른 가족들은 또 한번 무너져 내렸다.
그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토치와 부탄가스, 번개탄 따위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함께 보관 중이던 영수증에는 번개탄 구매 시각이 5월20일 오후 5시26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B 학생 보호자로부터 마지막 문자를 받은 지 22분 후였다.
비록 사용한 흔적이 없는 물품들이었지만, 현 선생님의 스마트폰 메시지 기록과 영수증 기록을 대조해보았을 때,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어떤 고통과 고민을 이어갔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현 선생님의 유가족은 이런 말을 남겼다.
“현승준 선생님에게 학교는 ‘내 삶을 인정받는 곳’이었다.
어쩌면 억울해서라도, 마지막 선택을 내릴 때 그 공간(학교)을 선택한 게 아닐까 싶다.
”
현승준 교사가 약 20년 간 일한 제주시 A중학교 정문. 입구에 추모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시사IN 박미소
현승준 선생님의 죽음은 2023년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 이후 2년 만에 다시 반복된 교육 현장의 비극이다.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은 당시 전국적으로 교권 침해에 대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과잉 민원과 학부모의 갑질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공적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이후 교권 5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아동학대처벌법)이 개정되는 등 시스템 개선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 선생님의 사례는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가 충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중등교사 77.8% “전화번호 공개한다”
당장 논란이 되는 것은 교사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 공개 문제다.
안심번호 활용 등 제도적 보완책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 교사 개인 연락처로 학부모(또는 학생 보호자)가 연락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현승준 선생님 사망 직후인 6월4일,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이 현직 중고교 교사 1만95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77.8%가 학생 또는 학부모에게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한 교사들은 교육 현장에서 교사 개인의 연락처를 공개할 것을 구조적으로 강요당하고 있고, 공식적인 민원 대응 창구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가상번호나 앱을 통해 학부모와 연락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학부모들이 스팸이나 광고 전화로 오인해 받지 않는 경우도 많고, 각종 평가 관련 공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톡방 메신저 사용이 강제되는 상황도 빈번하다는 것이다.
공적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적 채널을 통해 발생하는 각종 민원과 갈등은 오롯이 교사 개인이 처리해야 하는 과제가 된다.
여기서 ‘고립’의 문제가 발생한다.
현승준 선생님의 유가족도 고인이 사망하기 전까지 많은 징후가 있었지만, 학교에서 이를 제때 파악하기는커녕 민원의 책임을 오롯이 고인이 떠맡는 구조였다고 지적한다.
개인에게 쏠리는 악성 민원은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는 공포’를 일으킨다.
유상범 제주교사노동조합 교원국장은 “개별 교사 입장에서는 ‘이 부모가 언제 전화해올까’라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교사가 민원에 대응하려면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정제된 언어로 응답할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번호로 쏟아지는 민원은 그렇게 대응하기가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학교 민원 처리 과정을 공적 시스템으로 보완하는 이른바 ‘학교민원처리지원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6월21일부터 시행되지만, 법 시행을 위한 준비는 더딘 상태다.
교육부는 6월11일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교권보호 및 악성민원 대책마련 정책간담회’에서 “현재 학교 민원 처리 방법·절차를 마련하기 위한 기초연구를 위탁했다.
8월까지 의견 수렴 등을 추진하고, ‘학교 민원 처리 계획’은 2025년 하반기 중 마련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개정된 법 시행과 별개로, 교육 당국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응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승준 선생님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인 5월14일, 교육부는 ‘2024학년도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학교 민원대응팀 및 교육지원청의 통합민원팀을 구성·운영하도록 하고, 민원상담실·녹음 전화기 등 안전한 민원처리 여건 마련도 추진해왔다”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5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제주 현승준 교사 사망 추모 및 악성 민원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보미 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위와 같은 교육부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며 이렇게 말했다.
“교육부는 ‘민원대응팀을 운영 중’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많은 교사들은 민원대응팀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있다.
고인이 소속된 제주도교육청의 경우,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단 2건의 민원만 통합민원대응팀에서 처리했다.
법적 조치로 이어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
모든 학부모가 악성 민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악성 민원을 한번 경험한 교사들은 그 여파가 오래 뒤따른다고 증언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초등학교에서 2학년 학급을 담당하는 한 교사는 제도와 현장의 괴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번 그런 경험을 한 뒤에는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다.
교보위(교권보호위원회)로 끌고 가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최악의 경우 학부모 측이 아동학대로 고소를 하는데, 법적으로 맞대응하더라도 변호사 비용 등을 오롯이 교사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재판에서 진다면 교직에서도 물러나야 한다.
악성 민원과 끝까지 다툰다는 것은 교사 입장에서 잃을 게 더 많은 일이 된다.
”
6월14일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열린 ‘제주 교사 추모 및 교권 보호 대책 요구 전국 교원 집회’. ©시사IN 이명익
1년4개월 만에 다시 거리로 나온 교사들
현승준 선생님의 비극은 교사들이 다시 거리로 나오는 기폭제가 되었다.
6월14일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제주 교사 추모 및 교권보호 대책 요구 전국 교원 집회’가 열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92개 교원 단체와 노조는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현승준 선생님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순직 인정’과 함께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을 보호하고, 학교 민원 응대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며,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이날 집회는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이후 1년4개월 만에 열린 전국 단위 집회였다.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은 잇따른 교사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교육 현장의 현실에 개탄했다.
유가족들은 현승준 선생님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에 대한 책임을 명백하게 밝히길 원하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은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다.
사건이 발생한 A 중학교를 감독하는 제주도교육청은 사건 발생 이후 줄곧 ‘경찰 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감사를 미뤄왔으나, 6월16일 유족과 제주교사노조,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간의 면담 끝에 다음 날 진상조사단을 출범시켰다.
현 선생님이 사망한 지 27일 만이다.
현승준 선생님이 사망하게 된 과정에서 겪었던 심리적 압박과 고통을 밝히기 위한 ‘심리 부검’도 유가족들의 요구 사항 중 하나다.
현 선생님이 유서에 직접 언급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기록도 있지만, 문제가 된 B 학생의 보호자를 법적으로 처벌받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당시에도 경찰이 동료 교사와 학부모 등 68명을 조사했지만 끝내 범죄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한 채 사건이 종결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심리 부검 결과 등을 통해 고인이 사망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극도의 스트레스가 발생했다는 의견만 받을 수 있었다.
6월17일, 제주 양지공원에 마련된 고인의 납골당에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현 선생님의 아내가 쓴 편지가 꽂혀 있었다.
“언제나 든든한 남편이자 친구 같은 다정한 아빠로 우리 가족을 지켜주어서 늘 고마워.” 현 선생님 카카오톡 프로필의 마지막 사진도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이 생일을 축하해주는 장면이었다.
살면서 제주를, 학교를, 가정을 떠나본 적 없는 한 교육자의 생과 사는 한국 사회 전체에 큰 과제를 안겨주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주를 떠나본 적 없는 한 교육자의 삶과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