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개에게 배운다
김나미 지음, 판미동 펴냄
“내가 개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내 영혼을 구원한 순간이었다.
” 30여 년간 구도의 길을 걷던 종교학자가 홀연히 유기견 보호소를 세웠다.
개 농장과 도축장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개들은 그의 새 가족이 되었다.
철창 안에 있던 개들이 풀냄새를 맡고, 바다가 보이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동물보호 활동을 통해 10년간 3000마리를 구조했다.
저자는 ‘인생의 의미’ ‘진정한 행복’이 학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개들과 함께하는 순간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작은 생명은 변치 않고,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하며,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오랜 배움 끝에도 닿지 못했던 진리를 가장 낮은 자리의 생명들이 가르쳐주었다”라고 고백한다.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보호소를 정리하면서 “개들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픈 노견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다.
어느 날 미래가 도착했다 우숙영 지음, 창비 펴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기술의 힘을 빌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을 경험할수록 인간에 대한 질문은 늘어간다.
우리만의 것이라고 믿어왔던 기억과 특징을 ‘정확히’ 재현하는 존재가 2025년 지금 여기에선 더 이상 SF적 상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이를 AI 기술로 되살리는 것이 남은 가족에게 도움이 될까? 왜 사람들은 인공지능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걸까? 애도 기술부터 돌봄 로봇, 딥페이크, 사이보그까지 AI 기술의 최전선 현안들을 담은 이 책은 논쟁적이고도 흥미로운 질문으로 가득하다.
그저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란 이분법적 경고가 아니라, 다양한 실제 사례를 경유해 ‘나의 일’로 AI 시대를 고민하도록 한다.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린 도쿄 김석원·윤지하·전은정 지음, 목수책방 펴냄 “자연은 한순간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 언제부터인가 여행지에서 굳이 명소를 방문하지 않는다.
삶과 맞닿아 있는 일상 풍경이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렇게 찍어둔 사진 속에는 꽤 자주 ‘초록’이 남았다.
〈그린 도쿄〉는 아예 그 초록을 여행의 이유로 삼아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는 가이드북이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도시 도쿄의 가로수, 공원, 정원 등 녹색 공간 100여 곳 목록이 빼곡하다.
조경가 김석원, 10년 넘게 도쿄에서 일하며 산책이 취미인 윤지하, 목수책방 대표 전은정이 세심하게 선택한 공간들이다.
널리 알려진 곳부터 (2024년 기준) ‘핫’한 장소와 나만 알고 싶은 곳까지 아낌없이 담았다.
기존 여행 정보에서는 조연 취급받던 공간들이 이 책에서는 당당히 주연이 됐다.
한국에 남자가 너무 많아서 민지형 외 지음, 라우더북스 펴냄 “남자를 어떻게 처리하지? 죽여? 살려?” 저자들 이름을 보면 저절로 손이 간다.
민지형·임소라·류시은이 소설을 쓰고, 정재윤·미역의효능·들개이빨이 만화를 그렸다.
이제 페미니즘은 지겹다고, 남자도 힘들다고,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시대에 이 책은 건조한 통계 하나로 시작한다.
“2023년 11월1일 기준 ··· 남자가 여자보다 3만명 더 많아, 성비(여자 100명당 남자의 수)는 100.1이다.
” 이 수치는 30대에서 112.7명으로 최고점을 찍는다.
남자 112.7명이 태어날 동안 여자는 100명만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놈을 죽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민지형)’ ‘남자 패는 만화(들개이빨)’ 같은 과감한 제목이 달린 글과 만화를 묶어 낸 출판사의 용기가 대단하다.
극야 일기 김민향 지음, 캣패밀리 펴냄 “아가야 슬퍼하지 마라. 우리는 모두 빛이란다.
”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으로부터 도망치듯 떠난 곳은 미대륙 최북단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이었다.
우트키야비크, 원주민 언어로 “우리가 눈부엉이를 사냥하는 곳”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은 이 지역은 한겨울이면 60일 넘게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이어진다.
북극 마을에서 보낸 65일의 영원과도 같은 밤, 그곳에서 상실의 고통을 잊고자 했던 저자는 뜻밖에도 어둠과 고요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직면한다.
시린 보랏빛 하늘, 얼어붙은 북극해를 담은 사진과 통곡하듯 써 내려간 글은 그 자체로 최선의 애도다.
충분히 보편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이 기록은, 살아가는 내내 상실을 반복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에 큰 위로로 다가온다.
네오콘 일본의 탄생 서의동 지음, 너머북스 펴냄 “왜 3·11은 퇴행의 변곡점이 됐을까.” 저자는 아베 신조로 대표되는 일본의 보수 우익 그룹을 네오콘으로 지칭한다.
이들이 이끈 일본 우경화를 해부한다.
변곡점은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3·11 이후 일본 사회는 네오콘 집권이라는 퇴행을 선택했다.
3·11의 20년 전으로 돌아가 탈냉전기 일본의 위기와 불안 속에서 우경화가 전개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탈냉전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신자유주의, 하토야마 유키오의 복지주의를 거쳐 아베 신조의 신보수주의로 귀착되었다.
저자가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닷새째 되던 날, 3·11이 발생했다.
이후 3년 동안의 취재가 내용에 생동감을 더했다.
한·일 협정 60년을 맞아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개들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새로 나온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