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6월17일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에서 김선춘 법과학교육연구센터 교수를 만났다.
©시사IN 이명익 왜 사는지는 몰라도 왜 죽는지는 안다.
적어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사람들은 그렇다.
독성학을 전공한 김선춘 국과수 법과학교육연구센터 교수(56)는 삶과 죽음이 남긴 얼룩들을 30여 년간 감정해왔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가치를 평가하듯” 사건 현장에 있었던 증거물이 실제 죽음(피해)에 미친 영향과 그 과정을 평가하는 일이 감정이다.
때로는 사건의 피해자가 개인이 아닌 국가일 때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약 사건이다.
“마약 사건의 피해자는 국가다.
개인이 투약한 마약이라도 공동체에는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독성에 노출된 개인이 서서히 죽어가듯 마약에 노출된 사회도 그렇다.
10대·20대 마약사범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신종 마약 유입이 급증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국과수가 수집한 마약 압수물 감정 결과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 3년여에 걸친 준비 끝에 2023년, 김선춘 교수 주도하에 국과수 최초로 〈마약류 감정 백서〉가 발간됐다.
1990년부터 대검찰청에서 발간하고 있는 〈마약류 범죄 백서〉에 이은,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두 번째 마약 관련 백서다.
김선춘 교수는 압수물 감정서에 기록된 문자들을 추출해 통계치를 계산하는 프로그램 개발까지 맡았다.
체계가 만들어져 있으면 누구든 계속 백서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 5월, 세 번째 〈마약류 감정 백서〉가 발간됐다.
김선춘 교수는 〈법독성 감정 백서〉도 기획해 발행했다.
역시 국과수 최초다.
올해 〈마약류 감정 백서〉에는 주목할 만한 몇 가지 국내 동향들이 소개됐다.
우선, 전자담배 기기를 이용한 합성 대마 남용이 젊은 층 사이에 늘고 있다.
“요즘에는 주사 흔적이 몸에 남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인기가 떨어졌다.
반면 액상 카트리지에 향을 첨가해 대마 냄새를 없앨 수 있어, 쉽게 의심을 피할 수 있는 전자담배로 합성 대마를 흡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번 커진 마약 시장은 다시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 그 외에 인기가 줄었던 속칭 클럽 마약, 케타민 유사체도 유통이 늘고 있다.
유행은 돌고 도는 법이다.
마약도 그렇다.
또 프로포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다른 종류의 의료용 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 프로폭세이트 등이 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펜타닐보다 더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합성 오피오이드, 니타젠류의 증가 흐름도 심상치 않다.
김선춘 교수는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활자의 힘을 믿는 그는 과학이 남긴 기록에 사회가 응답해줄 것을 믿고 있다.
이런 끈질긴 노력에 대한 응답으로 2024년, 국과수에 ‘마약과’가 신설됐다.
올해는 제1차 마약류 관리 기본계획이 실행되는 해이기도 하다.
생계형 공무원으로 국과수에 입사했다는 김선춘 교수는 범죄라는 얼룩을 통해 수십 년간 우리 사회를 감정해왔다.
베테랑 ‘감정사’인 그는 여전히 과학자로서 의무감을 마음에 품고 있다.
의심하고, 검증하고, 진실을 찾을 것. 오늘도 하얀 가운을 걸친 과학자가 연구실 구석에서 진실을 길어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답을 해주길 기다리며.
“마약 범죄 피해자는 국가” 마약 백서가 필요한 이유 [사람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