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대대적인 이민자 체포 이후 미국 각지에서 반대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민자 추방 정책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정치적 승부수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실장은 강력한 이민자 단속과 체포를 강조하고 있다.
©REUTERS 6월6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서류 미비 이민자를 체포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세 곳에서 대대적인 작전을 개시했다.
체포에 반대하던 시민과 ICE의 충돌이 벌어지고, 100여 명이 현장에서 체포됐다.
다음 날 계속된 체포 작전으로 시위대가 불어났고, 충돌은 격렬해졌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시위대 해산을 위해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했고,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돌과 유리병, 폭죽 등을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은 시위대를 ‘반란군’이라고 규정하며, 6월17일 현재까지 주 방위군 4000명과 해병대 700명 투입을 명령했다.
연방정부의 강력 조치에 반대하던 캐런 배스 로스앤젤레스 시장은 극단적 충돌을 막기 위해 주요 시위 지역에 야간 통행금지 명령을 내렸다.
6월6일부터 6월11일까지 엿새간 충돌로 500여 명이 체포됐고, 주 방위군 동원 명령 권한을 두고 트럼프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강력한 이민자 단속과 체포는 이전부터 예고됐다.
5월21일 트럼프의 최측근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실장은 ICE 간부들과의 회의에서 이민자 체포가 지지부진하다며 질책했다.
그리고 ‘하루 3000명 체포’라는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했다.
이미 트럼프 취임 이후 하루 평균 650명을 체포하면서 이전 정부에 비해 두 배 정도 성과를 내던 ICE는 이후 더욱 무리하기 시작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ICE 부국장이 이민자 체포 과정에서 현장에 있는 이민자의 가족, 동료 등 “부수적인 체포”도 가능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토안보부는 ‘피난처 도시(sanctuary jurisdictions)’ 500여 개를 공개하면서 “피난처 도시 정치인들은 불법체류 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법 집행기관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라며 체포에 협조할 것을 압박했다.
‘피난처 도시’는 자체 법과 조례로 이민자 보호를 규정하고, 연방정부의 단속에 적극 협력하지 않아 이민자의 체포 위협이 낮은 자치단체를 말한다.
6000명 수준인 ICE 직원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치단체의 경찰력 동원과 정보 협조를 끌어내려는 의도다.
6월 첫째 주 ICE는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피난처 도시에서 집중적인 체포 작전을 벌였다.
대대적인 작전으로 6월 첫째 주에 매일 2000명씩 체포하자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격해졌다.
특히 로스앤젤레스는 인구의 절반이 히스패닉계이고, 체포가 집중적으로 시행된 동네는 히스패닉 인구가 70% 수준이어서 더욱 강하게 저항했다.
6월17일 현재 로스앤젤레스 도심 내 정부와 시위대의 충돌은 소강 국면에 접어든 상태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민자 체포 반대 시위대를 ‘반란’과 ‘침략’으로 규정하면서 더욱 강경한 집행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민자 문제로 인한 국내 소요 사태에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반란진압법(Insurrection Act)과 외국인 적대법(Alien Enemies Act)을 계속 언급한다.
이에 민주당 소속 리처드 블루멘솔 연방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로스앤젤레스 시위를 구실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심지어 계엄령을 선포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2020년 말, 대통령선거에서 패한 트럼프가 계엄령을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계엄령에 대한 우려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강경한 이민자 정책은 트럼프 정부가 지지층을 유지할 마지막 수단처럼 인식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율 38%(퀴니피액 대학 조사)로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이민자 정책은 43%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포함한 외교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연방 공무원의 대규모 해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관세 확대, 하버드 대학을 포함한 교육기관의 다양성 정책(DEI) 폐지가 법원 및 여론에 의해 속도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민자 정책은 트럼프에게 유일하게 믿을 만한 카드가 됐다.
이민정책은 트럼프의 정치적 승부수 6월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이 로스앤젤레스 연방 건물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AFP PHOTO 공화당원 87%가 이민자 추방 정책에 대해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트럼프는 이민자에게 ‘불법’과 ‘범죄 집단’ 이미지를 심으며 반대 세력을 약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이민자 정책에 전면적으로 반대하지 못한 채 ‘이민자 인권’이나 ‘부당 체포’ 등을 주로 지적하며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024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미네소타는 ‘피난처 주’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주 당국이 연방 이민 당국에 협조하고 있다고 강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요 도시의 도심 지역에서 그동안 일부 노숙자와 이민자로 인해 치안이 불안했던 점 때문에 트럼프의 이민자 추방 정책에 동조하는 시민들도 많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 고혜영씨는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번(로스앤젤레스 시위) 충돌의 여파가 미치는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민자 추방 정책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지지율이 반등할 만한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 언론은 트럼프 정부가 강력한 이민자 추방 정책으로 국정 동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계속하리라 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과 관세로 인한 물가 인상,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유가 급등도 트럼프 정부가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는 또 하나의 위협이다.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모든 입법 사항을 하나로 묶어서 의회에 제출한 1116쪽짜리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의 통과도 순탄치 않을 듯하다.
공화당의 ‘작은정부론자’들은 트럼프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한다며 공개적으로 수정을 요구했다.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강경한 이민자 정책은 마지막 보루가 됐다.
6월14일 로스앤젤레스 시위의 연장선으로 반트럼프 50501 운동(50개 시위, 50개 주, 하나의 운동)에 전국 각지에서 시민 약 500만명(주최 측 추산)이 결집했다.
시민들은 ‘왕은 없다(No Kings)’라는 구호로 트럼프의 강경 정책을 비판했지만, 트럼프 정부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자) 추방을 달성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타주 시위에서 시민이 총격으로 사망하는 등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있고, 그에 따라 트럼프의 선택지도 더욱 줄어들게 됐다.
계엄령 선포설까지··· 트럼프 정부의 최전선 된 이민자 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