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소는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 살아온 대표적 가축이다.
©최태규 제공
소셜미디어에 갑자기 소가 ‘플로우’를 탄다.
소가 호기심 많다는 이야기와 영상이 줄을 잇는다.
적어도 가상의 소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소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니 덮어놓고 반갑다.
소가 ‘귀엽다’ ‘사랑스럽다’ ‘똑똑하다’로 이어지다 ‘육식을 줄여야겠다’ ‘비건이 돼야겠다’까지 온통 소에 우호적인 타래가 이어진다.
소라는 동물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닌데 왜 하루아침에 이 사람들이 소를 좋아하게 된 건지 궁금하다.
소가 호기심이 많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발견으로 느껴지는 걸까? 원래 소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이때다 싶어서 고백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새로운 ‘소’를 만들어가는 걸까?
나는 10여 년 소를 만지는 수의사로 살았다.
당연하게도, 취미나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소가 아니라 고기가 되기 위한 소의 질병을 검사하고 치료했다.
소 수의사의 역할은 소의 안위를 챙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료를 통해 농가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한우는 크게 번식우와 비육우로 나눈다.
생후 1년 반이 된 암소는 인공수정으로 새끼를 갖기 시작한다.
전국에서 쓰는 정액은 전부 농협에서 기르는 씨수소에서 빼 얼린 다음 유통한다.
인공수정이 성공하면 아홉 달 열흘 후 새끼가 태어난다.
새끼를 낳고 두세 달 안에 다시 임신을 시키는 것이 소위 공장식 축산의 생산성 목표다.
비육우는 생후 7~8개월령에 거세 수술을 하고 30개월 즈음에 도살한다.
그 시간 안에 700~800㎏의 체중으로 자라야 하고, 근육 안에 지방이 잘게 박히는 ‘마블링’을 만드는 게 ‘비육’의 목표다.
그렇지만 농부와 수의사가 소를 돌볼 때 매일 마주하는 존재는 돈이 아니라 눈 앞에 살아 있는 소의 몸이다.
소는 사람보다 체온이 높아 손을 대면 가슬가슬한 털 아래로 피부가 뜨끈하다.
세상에 난 지 한 달도 안 된 송아지는 날 때부터 자주 아프다.
늦봄에 태어나던 조상종과 달리 연중 번식하게 된 탓이기도 하고, 어미가 풀 대신 영양이 과다한 농후사료를 먹기 때문에 송아지가 먹는 젖이 소화하기에 부담스러운 탓이기도 하다.
몸 상태에 따라 설사나 기침을 하기도 하고 숨이 거칠어지기도 한다.
수의사는 그 질척한 분비물을 만지고 날숨의 냄새를 맡고 그들의 혈관을 찾아 바늘을 꽂는다.
반투명한 수액줄 안에서 수액과 피가 물감처럼 섞이면 쑥 들어갔던 소의 눈이 슬슬 생기를 띠곤 했다.
겁이 많아 동물병원에 데려가기 어려운 소는 대부분 농장에서 진료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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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겁이 많고 매우 커서 동물병원에 데려가기 나쁘다.
그래서 진료는 대부분 소가 사는 농장에 차를 타고 들어가서 이루어진다.
차에서 내리면 소들은 일제히 긴장하며 내 차를 쳐다본다.
낯선 방문객의 움직임이 조금 크거나 빨라지면, 횡대로 얼굴을 마주하던 소들은 다 같이 순간적으로 앞다리에 힘을 주면서 뒤로 물러난다.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피식동물(야생에서 주로 잡아먹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일단 피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자들의 후손이라 그렇다.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소들은 아직 피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 큰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리며 조심스럽게 사람에게 다가서는 장면에 어떤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같다.
소의 호기심이란 인간이나 개나 고양이의 호기심과 그리 다를 것 없다.
바퀴벌레도 파리도 호기심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똑똑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사람과 좋은 경험을 많이 한 결과로 사람과 조금 더 가까워진 소들은 그 호기심이 우리의 눈에 더 잘 보인다.
동물단체 ‘동물해방물결’에서 돌보고 있는 홀스타인종 소 다섯을 만나보면 소가 어떤 동물인지 좀 더 잘 알 수 있다.
이들은 개와 어린이와 한 울타리 안에서 놀 수 있는 소들이다.
동종의 동물이 도살되는 동안 이들은 사람과 사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신임 대통령의 정책공약집에는 375페이지 중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11개의 동물복지 관련 공약을 적어놓았다.
그나마도 공약의 대상은 동물이 아니라 ‘동물 반려인’이다.
그중 7개가 개나 고양이에 대한 내용이다.
실험동물과 ‘국가봉사동물(동물이 어떻게 봉사를 한다는 건지 아직 나는 이해를 못했다)’, 퇴역 경주마에 대한 공약이 하나씩 들어갔고, 나머지 하나는 법 제정과 ‘동물복지 진흥원’을 설립하겠다는 이야기다.
농장에서 고기가 되기 위해 길러지는 동물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그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
정책공약집 발표 일주일 전에 SNS로 발표했던 동물 공약에는 그래도 “동물복지 인증 농장 지원을 확대하겠다”라며 “축종별 농장동물 복지 가이드라인을 실천하는 농가에는 직불금 지급을 추진”한다고 했는데 정책공약집에서는 빠졌다.
해당 페이지에 여백이 많아서 다섯 줄은 더 적을 수 있는데, 아무래도 고기가 되는 동물 이야기에는 유권자의 관심이 적어서일까. 이 정책을 버린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은 소의 눈망울도 정책에 반영되기를 바란다.
소의 눈망울이 인간에게 하는 말 [임보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