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범정부적으로 수립하고 산업재해 감소를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사고 사망’의 1.5배에 해당하는 업무상 ‘질병 사망’에 대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9월23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서울의 한 공사 현장을 불시 점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취임 직후부터 이재명 정부는 산업재해 감소를 위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범정부적으로 수립하며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기치 아래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하고자 하는 매우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 생각한다.
언론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엔 언급조차 되지 않던 건설업의 사망사고가 한 건만 나도 여러 언론에서 대서특필한다.
여러 전문가가 나와서 다양한 감소 대책을 언급하고 정치인이나 정부는 다시 한번 산재 감소 및 예방의 의지를 재확인한다.
다만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해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현 정부의 범정부적 노동안전보건 종합대책이 정말 모든 부문에서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을까?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손상을 주는 유형은 크게 ‘사고’와 ‘질병’이 있다.
따라서 산업재해란 크게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으로 구분한다.
작업과 관련해 사업장에서 급작스러운 상해를 입는 것을 업무상 사고라 하고, 유해 요인에 노출되어 질병으로 병에 걸리는 것을 업무상 질병이라 한다.
사고의 원인은 떨어짐·넘어짐·깔림·뒤집힘·부딪힘·물체에 맞음·무너짐·끼임 등이 있다.
업무상 질병은 크게 ‘직업병’과 ‘작업 관련성 질환’으로 구분하는데 전자는 작업환경 중 유해 인자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질병(진폐·소음성 난청 등), 후자는 업무 요인과 더불어 업무 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질병(요통·뇌심혈관계 질환) 등이다.
산업재해를 줄이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을 동시에 줄이고 예방해야 한다.
산업재해 지표는 매우 많지만 빈번히 쓰이는 지표는 ‘사망 만인율’이다.
우리나라는 1만명당 사망률인 ‘만인율’로 나타내는데, 사망 만인율은 ‘업무상 사고 만인율’과 ‘업무상 질병 만인율’의 합이다.
해외 집계보다 낮은 질병 사망, 왜?
〈그림 1〉은 2010년도 이후 우리나라 사망 만인율을 나타낸 것이다.
2010년의 사망 만인율 1.36(총 사망자 수 1931명)에서 점차 하락해 2022년에는 1.1(2223명), 2024년에는 0.98(2098명)로 낮아졌지만 지난 14년 동안 감소하는 추세는 매우 완만한 편이다.
특기할 점은, 2016년을 기점으로 사고 사망자 수보다 직업병 사망자 수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016년에는 사고 사망자 수가 969명, 직업병 사망자 수가 808명으로 사고 사망자 수가 많았지만, 2024년에는 사망자 총 2098명 중에서 사고 사망이 827명(39.4%), 직업병으로 인한 사망이 1271명(60.6%)이다.
즉, 현재 우리나라 노동 현장의 사망자는 사고로 인한 사망보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산업재해에서 직업병 사망이 사고 사망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2023년 국제노동기구(ILO) 통계에 따르면 1년에 약 293만명이 사업장에서 사망하는데, 이 가운데 업무상 사고 사망이 33만명, 업무상 질병 사망이 260만명 정도로 질병 사망이 약 7.9배 많다.
산재 사망 원인의 우선순위는 순환기계 질환(33%), 악성종양(암)(28%), 호흡기계 질환(15%), 업무상 사고(12%), 전염성 질환(7%) 순이다.
우리나라는 업무상 질병 사망이 2017년부터 업무상 사고 사망을 추월하기 시작해, 2023년 기준 업무상 사고 대비 업무상 질병 사망자 수의 비율이 1.5배가 되었다.
그에 비해 ILO 자료에 따른 전 세계 통계에서는 그 차이가 약 7.9배로, 업무상 질병 사망이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나라는 아직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잘 인정하고 있지 않거나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직업성 암을 예로 들어보자. 〈그림 2〉는 2022년과 2023년 우리나라 전체 암의 신규 진단, 암 사망자와 직업성 암으로 승인된 건수를 나타내고 있다.
신규 암 진단 건수 중 직업성 암 승인율은 2022년 약 0.14%, 2023년 0.10%이다.
직업성 암을 추정하는 방법으로 인구집단 기여 분율(attributable factor)을 적용한 연구가 여럿 있다.
2021년 필자의 연구실에서 게재한 논문에는 한국·프랑스·영국·중국의 과거 연구를 종합하여 한국의 직업성 암 발병 규모를 추정하였다.
이를 요약하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전체 암 가운데 작업장의 유해 인자로 인해 발생하는 암에 대한 기여율은 1.5~4.7%로, 연간 직업성 암이 4249~1만674명 발생한다.
전체 암 사망 중에서도 2.7~8.9%를 차지해 연간 2929~7030명이 직업성 암으로 사망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앞서 〈그림 1〉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업무상 질병 사망(암뿐만 아니라 작업장에서의 전체 질병으로 인한 사망)의 공식 통계는 2024년 기준 1204명으로, 직업성 암 사망 추정치(2929~7030명)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안전사고에만 치중
새 정부 들어 많은 분야에서 비정상적 일들을 정상화하려는 정책과 행동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노동안전 종합대책도 그중의 하나다.
사고 사망률 목표를 설정하여 사고 만인율을 OECD 평균 수준인 0.29로 낮추는 것을 가시적 정량 목표로 하고,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 역량 강화, 취약 노동자 집중지원, 원청 책임 강화, 공공기관의 솔선수범, 일터 민주주의, 지방자치단체와의 연계로 안전 사각지대 해소, 노동안전의 사회적 기반 강화, 안전 투자가 이익이 되는 구조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 정책은 현재 우리나라 산재 사망의 과반에도 못 미치는 ‘안전사고 사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전종합대책의 정량적 목표인 ‘OECD 평균 수준인 산업 사고 만인율 0.29’는 ‘사고 만인율’이다.
이는 업무상 질병 사망을 제외한 채 산업재해에서 점차 비중이 작아지고 있는 업무상 사고 사망에 한정된 것이다.
정부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면서 교묘한 눈속임(프레임 전환)을 하는 것은 아닐까? 고용노동부 장관의 연설이나 노동안전 종합대책에서도 정부가 언급하는 산업재해가 사실상 ‘업무상 사고’에 한정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고용노동부 장관 브리핑의 서두에 있는 내용이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으며, 살려고 나간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무입니다.
산업재해는 노동자의 생명뿐만 아니라 기업과 산업 전반의 생산성 저하 등 국가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끼칩니다 (···) 산업재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합니다(9월15일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안전한 일터 브리핑’).”
9월15일 관계 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서도 〈그림 3〉 〈그림 4〉 같은 내용이 서두에서 나타난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브리핑과 범정부 종합대책 모두 처음에는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이야기한다.
특히 노동자의 생명권을 언급하며 산업재해가 심각하므로 이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바로 이어 산업재해 사망을 줄이는 방법으로 ‘사고 사망’만 언급하며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반 국민은 산업재해 사망(업무상 사고 사망+업무상 질병 사망)과 산업 사고 사망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를 것이라 가정하고 있거나, 현 정부 임기 내에 성과를 내기에 적합한 가시적인 사고 사망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눈에 보이는 안전사고에만 치중한 정부의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결코 작업자의 생명과 건강을 100% 담보할 수 없다.
이미 대책의 제목(노동안전 종합대책)에서 표방하고 있듯이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지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론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전 윤석열 정부에서는 산업안전보건 정책이 거의 없거나 후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도 유사한 목표(2022년까지 산재사고 사망 만인율을 50% 감소)를 설정했지만 결국은 실패하였다.
당시 이미 산업재해 사망 중 업무상 질병 사망이 업무상 사고 사망보다 많았음에도 정부는 사고 사망에 치중한 정책을 펼쳤다.
사업장의 질병 사망(직업병에 의한 사망)을 감소시키는 일은 여러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점이 많고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그 어떤 정부보다 중시하며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가, 산업재해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함이라고 강조하면서 절반에도 못 미치는 대책을 세우고 국민을 오도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어렵다고 안 하면 안 된다.
단기간 성과를 보기 어렵다고 손 놓고 있어서도 안 된다.
어렵지만 새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그리고 진정으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정책과 법을 만들고 시행하기를 촉구하고 또 기대한다.
현 정부의 ‘산재 대책’ 이대로면 노동자 절반도 못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