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범죄 조직의 한국인 납치·감금 피해 규모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2030 청년 남성들은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등 범죄 단체 조직원이 되어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10월18일 캄보디아에 구금되어 있던 한국인 64명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로 들어오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입국 게이트가 열리자 김성훈씨(가명·25)가 목을 빼고 바라보았다.
캄보디아에 구금되어 있던 64명이 국내로 송환된 10월18일, 김씨는 친구와 함께 새벽 4시부터 공항에 나와 대기했다.
2년 전 캄보디아로 돈을 벌러 떠난 형은 그동안 연락이 쉽게 닿지 않았다.
마침 경찰 호송차로 향하던 인파 속에서 성훈씨가 형을 찾아냈다.
“형!” “성훈아, 어머니한테 연락했어? 형이 미안해!” 짧은 인사 직후 성훈씨의 형은 경찰에 양팔이 붙들린 채 곧장 호송차가 있는 출구로 향했다.
경북 예천군 출신 대학생 박 아무개씨(22)가 캄보디아에서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 이후 청년의 잇따른 납치와 실종 문제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박씨는 7월17일 해외 박람회를 간다며 캄보디아로 향했으나 연락이 두절되었다.
박씨 가족은 범죄 조직으로부터 ‘돈을 보내면 풀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박씨는 8월8일 현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의 유해는 사망한 지 74일 만인 10월21일, 국내로 송환되었다.
캄보디아 범죄 조직의 한국인 납치·감금 피해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10월22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가정보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한국인 범죄 가담자는 약 1000~2000명으로 추산된다.
이재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영사안전국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캄보디아 내 한국인 취업 사기·감금 신고 건수는 총 572건이다(〈그림〉 참조). 남성이 513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연령별로는 20대 217명, 30대 170명으로 2030 청년층이 대부분이었다.
10월18일 송환된 64명 역시 대다수가 20·30대 남성이었다.
이들이 캄보디아로 향하게 된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내외 각종 취업 게시판에 올라온 해외 TM(텔레마케팅) 및 채팅 업무 구인 게시물을 통해서다.
아직 삭제하지 않은 구인 게시물을 보면, 조직들은 항공권과 숙식 제공 및 월평균 1000만~4000만원 이상 고소득을 약속하며 감금·폭행 없이 안전한 직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텔레그램 아이디를 통해 상담 및 지원을 받는다.
또 다른 경로는 지인을 통한 고수익 해외 취업 권유다.
이번에 사망한 경북 예천군 출신 박씨 역시 범죄 조직 모집책인 대학 선배의 소개를 통해 캄보디아로 향했다.
이 밖에 여행 동행자를 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글이나 서류를 전달하는 간단한 건당 알바 구인 글을 보고 캄보디아에 가는 사례도 있다.
“인신매매·강제노동·고문 결합된 조직범죄”
다양한 경로로 캄보디아로 향한 한국인은 범죄 조직이 제공한 항공권으로 캄보디아에 입국한 뒤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긴 채 납치·감금되어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주식 리딩방 사기 같은 범죄의 조직원이 된다.
범죄 조직으로부터 탈출하는 한국인을 구조해온 정명규 캄보디아 한인회장은 10월19일 〈시사IN〉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그간 구출한 한국인을 보면) 합법 취업·여행을 명목으로 입국했다가 현지에서 ‘업무 전환’ 압박을 받는 유형과, 처음부터 불법임을 대략 알고 한두 달만 돈 벌겠다는 마음으로 오는 유형이 공존한다.
채무·학자금·단기투자 손실 등 경제적 압박이 공통적인 입국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범죄 단지에 갇힌 한국인이 저지르는 범행 수법은 비슷하다.
〈시사IN〉은 최근 1년간 캄보디아에서 각종 사기 범죄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서울동부·대전·부산·울산·대구·춘천지법 1심 판결문 7건을 확인했다.
이에 따르면 이들은 피해자를 유인하는 콜센터 상담원, 번역조, 범행에 사용할 대포통장이나 조직원을 모집·관리하는 모집책 등의 역할을 맡았다.
전화를 통해 수사기관·금융감독원·은행 직원 등을 사칭하여 피해자에게서 돈을 뜯어내고, 데이팅 앱 등을 통해 이성 교제를 가장한 뒤 송금을 요구한다.
중국인 조직원이 작성한 주식 리딩 문구를 한국어로 번역하거나, 교수나 증권회사 직원 등 주식 전문가를 사칭해 허위의 거래 앱을 설치하고 투자금 및 수수료 명목의 돈을 송금하도록 하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조직원이 된 이들은 범죄 단지 내에서 경찰 수사에 대비해 만든 행동강령을 따라야 한다.
이에 따라 조직원들은 철저히 가명으로 호칭하며 서로 본명을 알지 못하고, 정해진 근무시간 내에 실적이 부진할 경우 강제로 야근을 해야 했다.
또한 상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단지 밖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대다수 가담자는 “출국 전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몰랐고 속아서 갔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고 징역 2~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부산지법은 피고인 4인에 대해 2년6개월의 징역형을 내리며 다음과 같이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이 사건 범행은 다수 피해자들에게 중대한 경제적 손해를 가하고, 피해 회복 또한 쉽지 아니하여 그 사회적 해악이 매우 크다.
이러한 범행은 다수 가담자가 각자 분담한 역할을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수행함으로써 전체 범행이 완성되는 특징이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단순한 행위만 분담하여 가담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죄책은 무겁게 평가하여야 한다.
더구나 피고인들은 해외에까지 가서 범행을 저질렀는데 이는 그 죄책이 국내에서 행한 범행보다 무겁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피고인들에 대하여 그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
이들 중 일부는 실적을 쌓아 고액을 손에 쥐며 적극적인 ‘가해자’가 되기를 택한다.
그러나 적극적인 가해자뿐만 아니라 납치·감금으로 ‘피해자’가 되었는데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는 이들도 있다.
현지에서 폭력 피해를 입은 동시에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사기 범죄에 가담하며 이미 수사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10월18일 캄보디아에서 송환된 한국인 피의자 중에서도 상당수가 “한국에 돌아가면 잡혀들어간다”라는 두려움으로 한국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 범죄에 가담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든 몰랐든, 이미 단지 내에 감금된 한국인이라면 업무를 거부할 경우 강제노동과 폭행·고문을 당한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6월26일에 발간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캄보디아 전역에 대규모 범죄 조직이 최소 53곳 포진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은 ‘고수익 해외 일자리’로 속여 데려온 사람들의 핸드폰과 여권을 빼앗고 대형 건물에 가둔 뒤 전기충격 봉, 총기 등으로 무장한 관리자를 두고 감시한다.
잡혀온 사람들이 할당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전기충격·폭행·수면 금지 등 가혹 행위가 뒤따른다.
국제앰네스티는 캄보디아 사기 범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이것은 그저 사기를 당한 불쌍한 사람들의 사례가 아니라 인신매매·강제노동·고문이 결합된 조직범죄다.
”
캄보디아로 향한 청년들, 왜 갔고 왜 안 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