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을 담당했던 문지석 검사는 지청 지휘부가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사건은 검사들 간의 진실공방으로 비화했다.
10월15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 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문지석 광주지검 검사가 쿠팡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 관해 발언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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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인 근로자들이 200만원 정도 되는 퇴직금이라도 신속하게 받게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던 공무원들이 있다면 저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잘못에 상응하는 처분을 받았으면 좋겠다.
” 10월15일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문지석 광주지방검찰청 부장검사가 흐느낌을 억누르며 한 말이다.
문 검사는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재직 당시, 쿠팡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의 담당 검사였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 배경에 당시 자신의 상관들에 의한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당시 부천지청장이었던 엄희준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와 문 검사를 함께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렀다.
2023년 5월26일, 쿠팡의 물류 부문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쿠팡CFS)는 자사 물류센터의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적용하는 퇴직금 관련 취업규칙 조항을 개정했다.
근무 기간 중 4주 평균 주당 노동시간 15시간에 미달하는 기간이 생기면 근속일수 산정을 처음으로 되돌리는 이른바 ‘리셋 조항’이었다.
급여의 성격 역시 퇴직급여보장법에 근거한 퇴직금이 아니라,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닌) 단기 사원에게 호혜적으로 지급하는 ‘퇴직금품’이라고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계속 근로 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퇴직급여를 지급하며, 계속 근로 기간 산정 시에는 퇴직일로부터 역산하여 근로자의 4주간 평균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기간을 제외한다’고 규정되었던 기존 내용이 취업규칙 개정으로 ‘일용직으로 최초 근로한 날로부터 마지막으로 근로한 날까지의 기간이 1년 이상이고, 해당 기간 동안 4주 평균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인 경우 퇴직금품 지급 대상이 된다’로 변경됐다.
취업규칙이 바뀌면서 퇴직급여 지급 대상과 액수가 축소되자, 노동자들의 진정 및 고소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특별사법경찰관으로 수사를 진행한 경기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 근로감독관은 쿠팡CFS 대표이사의 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가 인정된다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2025년 4월28일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문지석 검사는 이 과정에서 당시 지청장이던 엄희준 검사와 김동희 차장검사가 담당 부장인 자신의 기소 의견을 묵살하고, 대검찰청 보고 과정에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된 핵심 증거를 고의로 누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지석 검사가 국정감사에 출석한 올해 10월15일 직후인 10월17일, 엄희준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문 검사의 주장에 반박하는 글을 게시했다.
이 사건에서 고소를 제기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퇴직급여보장법이 정하는 퇴직금 지급 대상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쿠팡CFS 측을 불기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엄 검사 주장의 요지다.
특히 엄 검사는 취업규칙 개정 이전부터 쿠팡CFS 측이 법적으로는 지급 의무가 없음에도 일종의 민사 계약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해왔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사 차원과 별개로 형사처벌을 위한 기소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시사IN〉이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간사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경기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 근로감독관 의견서는 이 부분을 다르게 판단했다.
의견서는 “형식상으로는 비록 일용직 근로자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일용 관계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어온 경우에는 상용근로자로 보아야 한다”라고 판시한 대법원 93다26168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해 “1일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다거나 다음 날 출근 여부가 확정되어 있지 않았다고 해서 퇴직금 지급의 전제가 되는 근로자의 계속성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봤다.
쿠팡CFS 내부 문건 속 지침
앞서 문 검사는 수사 과정에서 쿠팡CFS의 취업규칙 개정 자체가 유효한지에 주목했다.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하여,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을 경우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직접 들어야 하며,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 의견서의 수사 내용에 따르면 쿠팡CFS 측은 취업규칙 개정에 앞서 2023년 5월경 1개월간 평균 일용노동자 수를 9137명으로 계산하고 9277명의 동의를 근거로 취업규칙을 변경했으나, 이 시기 해당 사업장에서 고용한 전체 일용노동자 수가 5만4846명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집단 토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점, 출근 시간을 앞두고 1분 정도 변경 내용을 공지했을 뿐 충분한 설명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개정 취업규칙의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10월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엄희준 광주고검 검사. ©시사IN 박미소
페이스북을 통해 엄희준 검사 등을 공개 비판하며 그간 문지석 검사에게 조력해왔다고 밝힌 윤지영 변호사는 〈시사IN〉과 통화에서 “(엄 검사가) 노동법을 제대로 모르거나, 기록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법정 퇴직금 문제는 계속 근로 여부가 중요하긴 하다.
(이 사건의 고소인들에 대한) 법정퇴직금 지급 여부는 다툼의 여지가 있는 건 맞다”라면서도 “문제는 근로기준법이다.
(개정 취업규칙이 무효라면) 기존 취업규칙에 따라서 ‘약정 퇴직금’으로 정한 돈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근로기준법상 금품 미지급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5월16일 문 검사는 대검찰청에 엄희준·김동희 검사를 상대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에는 두 사람이 고용노동청의 쿠팡CFS 압수수색 집행 결과 확보한 핵심 증거와 개정 취업규칙 효력 유무에 대한 판단을 의도적으로 누락한 채 대검에 사건을 보고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사건은 검찰 내부 관행에 따라 ‘중요 사건’으로 취급돼 기소 여부 결정 전 대검 보고가 이뤄졌다.
문 검사가 말하는 핵심 증거란 “일용직 사원들에게 연차·퇴직금·근로기간 단절의 개념을 별도로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으며 이의 제기 시 개별 대응함”이라고 기재된 쿠팡CFS 내부 문건이다.
내부 문건은 취업규칙 개정 이전인 2023년 3월27일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 검사는 이 문건이 쿠팡CFS가 ‘내부 협의를 거쳐 일용직 근로자들에 대한 퇴직금 지급 의무를 면탈하고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조직적으로 시도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봤다.
두 차례에 걸쳐 이 문건을 중심으로 한 핵심 쟁점이 누락됐다고 문제 제기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 검사 입장이다.
실제 부천지청의 불기소 결정서에는 퇴직급여보장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을 뿐, 개정 취업규칙 효력이 무효일 소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문지석 검사는 기소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는 데 반드시 따져봐야 하는 쟁점이고, 수사 검사 입장에서는 기소해야 할 근거인데도 지휘부가 이 부분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엄 검사는 이프로스에 올린 반박글에서 문 검사의 의견서를 대검에 보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10월23일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문 검사는“(김동희) 차장이, 대검에서는 부천지청의 공식 의견서 외에는 접수나 검토할 수 없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문지석 검사는 김동희 차장검사가 사적 친분이 있는 쿠팡CFS의 변호인인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의 권 아무개 변호사와 사건에 관해 상의했다고 보고, 진정서에 이 부분에 대한 감찰과 조사 요구 또한 담았다.
대검은 문지석 검사의 진정서 접수 이후 다섯 달 동안 결과를 내놓지 않다가 10월20일 인천지검 부천지청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논란이 커진 이후 문 검사와 함께 10월15일 열린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정종철 쿠팡CFS 대표는 취업규칙을 개정 전으로 되돌리겠다고 밝혔다.
부천지청이 불기소한 퇴직금 미지급 사건의 고소인 8명 중 한 명은 항고를 결정했다.
‘쿠팡 퇴직금’이 촉발한 국감장 검사들의 결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