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 첫 내한 '종이 동물원'으로 세계 3대 SF상을 석권한 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가 15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첫 내한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인공지능(AI)을 사용해서 인간이 어떤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꿈을 꿉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한다거나 AI로 인해 인간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달라질지에는 관심 없어요. 제 관심은 AI가 없었을 때는 들려줄 수 없던 이야기를 인간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제이지요." 세계적인 공상과학(SF) 작가 켄 리우(49)가 15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단편소설 '종이 동물원'으로 SF의 노벨상 격인 휴고상, 네뷸러상에 세계환상문학상까지 석권한 중국계 미국 작가다.
AI 해커를 주인공으로 한 신작 출간을 앞둔 그는 AI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에 주목했다.
그는 "기술을 인간과 구별되는 악이라거나 위협으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며 "기술은 인간 본성의 한 표현"이라고 했다.
SF가 사랑받는 이유도 "기술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 SF의 역할 역시 미래를 점치거나 기술적 전망을 내놓는 데 있지 않다.
그는 "SF 작가로서 저는 미래를 예측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신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SF의 효시로 꼽히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시체에 생명을 준다는 설정은 현실과 동떨어지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여전히 그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프랑켄슈타인'이 상징하는 바 때문"이라며 "'프랑켄슈타인' 괴물은 기술과 발전, 현대를 상징하고 있으며, 작가는 미래를 예측하려 한 게 아니라 신화를 말하려 한 것"이라고 했다.
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는 "미국인인 내가 쓰는 작품은 자동적으로 미국 문화에 속해 있다"며 "(미국인 아버지와 '우편 주문 신부'인 중국인 어머니가 나오는) '종이 동물원' 역시 미국 이야기의 일부분"이라고 했다.
황금가지 제공 SF에서부터 환상문학, 대체 역사, 전기소설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작품 세계를 선보인 그는 역사적 사건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북두')이나 일본 731부대 희생자('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 등에 과학적 상상을 덧대 소설로 써왔다.
그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기에 역사에 관심이 많다"며 "아주 짧은 시간에 현대적 국가를 이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던 한국의 이야기는 저에게 깊은 감동을 줬고, 그 과정을 더 깊이 이해해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이야기의 원천은 "공동의 무의식"에서 비롯한다고 했다.
그는 "삶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쓴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이 아니"라며 "최대한 많은 자극과 영감을 얻기 위해 과학 콘퍼런스에 자주 참석해 기술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중국 서북부 간쑤성에서 태어나 11세 때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래머,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조세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 전업 작가가 됐다.
그는 "15년 동안 다른 직업을 갖고 늘 글을 쓰고 있었는데, 글쓰기가 점점 중요한 일이 되면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며 "비록 글쓰기는 프로그래밍이나 변호사 일처럼 경제적으로 많은 보상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 자체로 저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