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조희대 사퇴' 강공에 강한 우려
"개별 사건 판결로 사법부 흔드나"
"신중한 논의 하자는데 수장 나가라니"
'삼권분립 와해 심각' 우려도
여권의 사퇴 압박을 받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입을 굳게 다문 채 퇴근하고 있다.
뉴시스
여권이 15일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사법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위헌 논란 속에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사법개혁 속도전을 강행하던 여권이 사법부 수장의 거취 문제까지 거론하자 우려 섞인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법안 논쟁을 뛰어넘어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이 유지될 수 있을지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선 법관들의 시선은 여당의 일사불란한 '대법원장 사퇴 압박' 배경에 쏠렸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대법원장이 갑자기 반헌법적 행위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자업자득'을 논하며 사퇴하라는 것은 결국 지난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파기환송(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사건)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도 "여권은 지속적으로 개별 사건 판결을 갖고 사법부를 흔들고 있다"며 "이런 구도가 이재명 정부 내내 계속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판사들 사이에 퍼져있다"고 전했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과 △이 대통령 사건 대법 파기환송으로 사법부 불신이 커졌다는 여권 주장에 대해선 법원 내부 시선이 엇갈리지만, 이를 이유로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는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여권이 대법원장 사퇴 카드까지 꺼내 들면서 사법개혁 논의가 제도적 논의의 궤도를 벗어나 '개별 법관 공격'으로 비화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사법부 내부에선 내란특별재판부와 사법개혁 5대 추진 과제 등 쟁점 사안에 대해 여당이 '위헌 논란'을 돌파하기 쉽지 않다 보니 '거취 프레임'으로 전략을 바꾼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전국법원장회의는 지난 12일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며 신중한 국회 논의와 공론화를 당부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과 각급 법원장들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한 여권의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달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모습.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현안을 설명하는 모습.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조희대 대법원장이 올해 5월 서올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선고를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 왕태석 선임기자 · 연합뉴스 · 대법원
판사들 사이에선 여권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성토도 나왔다.
한 부장판사는 "전국 법원장이 일선 법관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논의하자는 메시지를 내놨고 사법부도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반성을 내놨는데, '대법원장 나가라'고 응수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갸우뚱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도 "제도 개혁에 대해 충분히 공감대를 만들고 의논하자는 사법부에 대고 수장 사퇴를 압박하는 상황을 답답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며 "국민들이 직접 겪을 기초적인 사법질서를 흔드는 문제에 대해 차분히 논의하자는 게 그렇게 잘못된 메시지냐"고 되물었다.
법원 바깥에서도 거대 여당이 삼권분립과 헌법정신을 허무는 데 너무 거침이 없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압도적 다수 의석을 믿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기존 질서도 다 필요 없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건 전체주의나 혁명 상황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통령실 발언이 취소되긴 했지만, 삼권분립의 취지를 생각하면 '대법원장 사퇴' 요구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발언"이라며 "거꾸로 대법원장이 '대통령이 사임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나라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9월 12일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입장
▲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을 위한 사법부의 중대한 책무이자 시대적 과제이므로,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여 추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폭넓은 논의와 숙의 및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함
▲ 특히, 최고법원 구성과 법관인사제도는 사법권 독립의 핵심 요소로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므로, 그 개선 논의에 있어 사법부의 참여가 필수적임
▲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통해서만 존립 가능하므로,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함. 이에 사법부는 사법개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국회와 정부, 국민과의 소통에 열린 자세로 임하는 한편,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을 위한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구현을 위해 노력할 것임
대법원장 사퇴 요구 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