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로 대표되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수용체 작용제가 체중을 줄이는 약을 넘어 인간 본능의 과학을 푸는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욕구를 나타낸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위고비로 대표되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수용체 작용제가 체중을 줄이는 약을 넘어 인간 본능의 과학을 푸는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식욕을 조절하는 GLP-1이 뇌의 동기 부여와 각성을 관장하는 오렉신(orexin) 시스템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이 잇따라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는 GLP-1과 오렉신의 상호작용을 해석하면 식욕과 수면 같은 기본 욕구가 어떻게 생겨나고 사라지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기본 욕구를 약물로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전망한다.
15일 학계에 따르면 뇌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오렉신은 단순히 잠을 조절하는 신호가 아니라 깨어 있음, 식욕, 에너지 사용, 보상 행동까지 아우르는 본능 시스템의 핵심 조절자로 주목된다.
최근 전세계 과학자들이 오렉신의 역할을 다시 조명하기 시작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사전논문공개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에 전전두엽 뉴런을 조작해 수면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특정 뉴런을 잠시 꺼두면 자연스러운 수면과 유사한 뇌파가 나타났고 깨어 있는 정도와 잠의 깊이까지 조절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수면 욕구의 생물학적 기초가 대뇌피질에 있다는 증거”라며 “뇌가 스스로 잠과 깸을 조절하는 통로를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런 회로가 오렉신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GLP-1과 오렉신이 함께 작동하면서 하루 생활 리듬과 행동 패턴까지 통합적으로 조절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전두엽이 수면·각성 신호를 직접 조절한다는 사실은 오렉신이 행동 본능 전체를 조율하는 ‘핵심 스위치’일 수 있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는 분석이다.
손종우 KAIST 교수는 "사람의 배고픔과 포만감 등 다양한 욕구를 조절하는 정교한 시스템이 ‘GLP-1–오렉신 축’에서 작동하는 원리는 최근 학계에서 주목하는 주제"라며 "신경과학자들은 이를 '본능의 스위치'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이 GLP-1–오렉신 체계에 주목하는 이유는 식욕과 수면 같은 기본 욕구를 넘어 보상 행동과 각성 상태까지 아우르는 뇌 회로의 열쇠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연결점은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한 연구에선 시상하부에는 배고픔을 유도하는 세포와 억제하는 세포가 따로 있지만 오렉신은 의외로 이 가운데 식욕 억제 세포를 자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으로는 식욕이 꺼져야 하지만 이 세포 내부에서 함께 작동하는 ‘식욕 촉진 스위치’가 켜지면서 오히려 음식 섭취가 늘어나는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겉으로는 제동이 걸렸지만 실제로는 가속이 붙은 셈이다.
손종우 KAIST 교수는 “GLP-1 계열 약물은 이런 복잡한 뇌 회로를 조율해 단순히 포만감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먹고 싶은 욕구 자체를 재설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학계는 이 회로를 비만뿐 아니라 체중이 지나치게 줄어드는 질환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암 환자에게 흔한 악액질 같은 병적 체중 감소에서는 오히려 오렉신 신호를 강화해 식욕을 되살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손 교수는 "같은 회로를 질환의 양쪽 끝에서 서로 다르게 이용하는 치료법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사들도 오렉신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 다케다제약의 오렉신 작용제 오베포렉스톤은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앞두고 있다.
영국 센테사 파마슈티컬스의 ‘오렉신142’는 임상 1상에 진입했다.
글로벌 빅파마들은 GLP-1, 포도당의존성인슐린 분비 촉진 폴리펩타이드(GIP), 오렉신을 동시에 겨냥하는 다중수용체 작용제를 개발해 ‘현대형 비만치료제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병용 투여로 약물 용량을 줄이면서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식욕·에너지 대사·각성 상태를 통합적으로 조절하는 전략이다.
손 교수는 “GLP-1 계열의 성공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앞으로는 오렉신 등 뇌 신경펩타이드 타깃 약물이 함께 쓰이는 복합 요법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런 연구가 단순히 비만 치료에 그치지 않고 암 악액질처럼 체중이 지나치게 빠지는 질환에도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GLP-1 수용체 작용제가 단순한 ‘체중 감량 약’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을 과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줄리 브로에 오노레 노보 노디스크 한국법인 선임이사는 지난달 한국뇌신경과학회 국제학술대회(KSBNS 2025)에서 "식욕과 수면은 생존을 위해 진화한 강력한 본능으로 이를 안전하게 조절할 수 있는 약물은 정신의학·신경과학·대사질환 치료에 모두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식욕·수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