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특성 따라 '인공지능 시대 대응'과 '정보 보안' 가치 충돌 양상
'범정부 AI' 추진 속 자체 AI 구축 움직임도
ⓒChatGPT 생성 이미지
정부가 생성형 AI 시대에 부처마다 다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 시대에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생성형 AI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과 보안 우려로 이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공존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4월13일 58개 중앙행정기관과 전국 18개 지방자치단체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기관별 생성형 AI 업무 활용 실태를 확인한 결과, 5월8일까지 회신한 75개 기관의 답변 간에는 부처마다 간극이 있었다.
각양각색 정부의 생성형 AI 정책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
펠리페 밀론(Felipe Millon) 오픈AI 연방 판매·마케팅 책임자는 지난해 10월 미국 텍사스 알링턴에서 열린 정부 AI 회담(GovAI Summit)에서 연사로 나서 이처럼 밝혔다.
지난해 미국 연방정부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1757건의 인공지능 활용 사례를 공개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정부 부처가 생성형 AI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공무원들에게 이용료를 지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제주도는 챗GPT 등 생성형 AI 유료 서비스 사용에 올해 55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서울시도 5200만원을 편성했다.
경상남도·충청북도·세종시·광주시·울산시도 각각 1000만원에서 최대 약 4270만원까지 이용료로 지출한다.
충청남도와 경기도는 사무관리비를 활용해 민간 생성형 AI 서비스 이용을 지원한다.
일부 중앙행정기관도 관련 예산을 확보했다.
기상청은 올해 약 1000만원을 챗GPT 구독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인사혁신처도 지난해 7월 약 450만원을 들여 챗GPT 등을 이용한다.
공무 활용을 위한 생성형 AI 교육도 많다.
대부분의 행정기관은 인사혁신처가 발간한 '업무 효율성 향상을 위한 인공지능 활용 가이드'를 교육 자료로 삼았다.
6개 중앙행정기관과 6개 지방자치단체는 자체 교육을 실시했거나 계획하고 있었다.
반면 보안 문제를 이유로 민간 생성형 AI 사용을 차단한 기관도 있다.
국세청은 기관 내 인터넷에서 모든 생성형 AI 서비스 접속을 차단해 사실상 서비스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국방부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세부 정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한 정부 관계자는 국방부 역시 생성형 AI 활용을 막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 기관은 생성형 AI 사용을 장려하지도 않지만 막지도 않아 공무원 각자가 희망할 경우 자비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기관에는 지자체뿐만 아니라 △특허청 △통계청 △조달청 △외교부 △병무청 △대통령경호처 등 정보 보안이 예민할 수 있는 부처도 포함돼 있다.
2025년 2월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PC에 한 생성형 AI 사이트가 차단돼 있다.
ⓒ연합뉴스
내부·개인정보 유출 우려
정부가 해외 민간 생성형 AI 서비스를 사용할 경우 민감한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가정보원 지침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다.
생성형 AI 사용을 차단한 국세청은 국정원의 국가정보보안기본지침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지침 66조는 비공개 업무자료를 △내부망 PC와 서버 △기관장이 지급한 휴대용 저장매체 △공식 소통 수단 등을 통해서만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민간 생성형 AI 서비스는 인터넷을 통해 자료가 처리된다.
특히 챗GPT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Azure)에 데이터를 저장하는데, 지침 41조는 민간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국내에 위치한 시스템과 관리주체를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은 "생성형 AI는 방대한 데이터·신기술을 적용하는 특성을 고려했을 때 클라우드컴퓨팅 범주에서 제외"한다면서도 "제66조에 따라 (공무원은) 생성형 AI에 비공개 자료를 입력하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챗GPT 운영사인 오픈AI는 서비스와 데이터의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챗GPT 이용약관과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보면 오픈AI는 이용자가 제공한 콘텐츠의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이용자가 어떤 정보를 전송할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적었다.
더 높은 보안이 적용되는 '팀 요금제' 영문 사업자 약관에도 "서비스 이용이 안전하다는 어떠한 진술이나 보증도 하지 않는다"고 명시됐다.
원칙적으로 공무원은 한정된 업무에만 챗GPT를 사용할 수 있다.
대부분 기관은 행정안전부가 배포한 '챗GPT 활용방법 및 주의사항 안내'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안내서는 인터넷상에 널리 공개된 자료를 수집할 때만 챗GPT를 활용하라고 권고한다.
또한 대외 공개용 자료를 작성할 때도 비공개 정책 정보나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도록 주의를 요구한다.
자료 분석이 필요한 경우에도 직접 데이터를 입력하지 않고, 엑셀 등 업무용 프로그램 사용법이나 업무 자동화 프로그램 코드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부산시는 관련 윤리 지침에서 개인정보 비식별화·암호화 조치를 의무화했으며, 의사결정이 완료되지 않았거나 공표되지 않은 정보를 입력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기상청은 생성형 AI 서비스 이용 시 비공개 정보나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적 사용이 실제로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일부 기관 공무원은 내부망과 인터넷 접속이 둘 다 가능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어, 비공개 정보가 생성형 AI에 입력되는 것을 강제적으로 막기 어렵다.
기관 내부 자료가 이미 민간 생성형 AI에서 처리되고 있는 정황도 있다.
전라남도는 생성형 AI 교육자료에서 챗GPT를 보고서·제안서·계획서·회의록 작성에 활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충청남도는 "분석이 필요한 데이터를 (챗GPT에) 제공하고 분석을 요청할 수 있다"고 교육했다.
경기도가 2024년 2월 소속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성형 AI 사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직원들은 주로 정보·자료 수집, 보고서·말씀자료·시나리오 작성에 생성형 AI를 활용했다.
서울시는 2024년 생성형 AI를 활용한 업무 사례 425건을 수집·분석해 '신기술 이용료 활용 사례집'을 발간했으나, 서울시 관계자는 "(생성형 AI에 입력한) 프롬프트 안에 사업 내용 같은 게 좀 많이 들어가 있어 직접 공개해 드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공개할 수 없는 내용은 생성형 AI에 입력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질의에 이 관계자는 공표된 내용만 입력했지만, 입력 내용 공개를 원하지 않는 (공무원) 분들이 있을 수 있어 비공개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는 보안 문제를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범정부 생성형 AI'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2027년까지 각 부처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범정부 생성형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중앙 정부는 개별 부처가 독자적으로 생성형 AI를 구축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취재 결과, 다수 지자체가 자체 AI 구축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는 3월 '경기 생성형 AI 플랫폼 구축 사업'을 위해 긴급 용역 입찰을 공고했으며, 기초금액으로 약 131억원을 제시했다.
전라북도도 자체 생성형 AI 시스템 구축을 위해 GPU 서버 구입비로 3억원을 편성했다.
처음 맞는 AI 시대에 시행착오는 불가피하지만, 정부 차원의 통일된 기준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경진 인공지능법학회 회장은 "지금은 초기 단계이니 열린 마음으로 활용과 개발을 병행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막연히 '전부 사용하자'거나 '아예 사용하지 말자'는 식의 논의는 적절치 않다"며, "여러 사례를 토대로 허용할 수 있는 부분과 금지해야 할 부분을 가려 구체적인 가이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안 우려가 적은 국내 서비스를 사용하라는 제언도 있다.
김진형 인공지능민간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보안 등 문제점도 상당히 많아 정부 입장에서는 쓰라고 그럴 수도 없고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어 곤혹스럽다"며 "신뢰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이 빠르게 (정부용 생성형 AI)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생성형 AI 발전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어 우리나라에는 기회"라며 "정부용 서비스를 금방 만들기는 힘들겠지만, 그동안 국내 기업이 이미 상용화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2025년 4월17일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생성형 AI별 행정 활용 방안 등에 대한 교육이 도·시군 공무원 및 공공기관 데이터 유관부서 인원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경기도 제공 이미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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