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제작·유통되는 불법 사제 총기들
비비탄총 개조해 자신을 추격하는 경찰관 살해 사건도 발생
우리나라는 총기 소유와 제작, 유통이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
사냥 등을 목적으로 소지할 경우에는 지극히 제한된 종류와 탄종으로만 허가받을 수 있다.
이때도 보관은 관할 경찰관서에 해야 한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 등 유해조수 포획을 목적으로 총기 반출이 가능하지만 관리가 엄격하다.
만약 불법으로 총기를 제작하거나 소유·판매할 경우 '총포·도검·화약류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3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지난해 기준 개인과 법인이 경찰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보유 중인 총기는 총 10만6678정으로 파악되고 있다.
  허가받지 않고 불법으로 총기를 소유한 사람도 상당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진신고 결과 총기 481점, 실탄 등 6만3930점을 포함해 총 6만6458점이 수거됐다.
경찰청이 매년 불법 무기 자진신고 기간을 정해 불법 총기류를 수거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총기 소유자가 적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유품 등 옛날 총을 가지고 있더라도 불법 무기 자진신고 기간이 아닌 시기에 적발되면 무허가 총기 소지로 처벌받을 수 있다.
  2016년 10월21일 사제 총기를 제작해 경찰관 1명을 살해한 성병대가 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으로 모의총포를 유통하던 업체로부터 압수한 총기 ⓒ서울경찰청 제공 지난 6월, 모의총포 820정 적발 그런데 심각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개인이 사제 총기를 제작하거나 시중에서 대량 유통되는 모의총기다.
지난 6월 서울경찰청은 쇼핑몰 사이트와 플랫폼 등에서 모의총기를 판매한 업체와 판매자들을 적발하고 압수수색했는데, 여기에서 약 2억2000만원 상당의 권총과 소총 등 모의총포 820정이 무더기로 나왔다.
이번에 적발된 모의총기는 겉으로는 실제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비비탄을 발사하는 에어소프트건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모의총기들의 파괴력은 상당했다.
현행법(총포화약법) 등에 따른 법적 기준치는 1m 거리에서 A4 용지 5장을 관통하는 수준인데, 이들이 판매한 제품은 법적 기준치의 7배에 달하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실제 비비탄을 넣고 발사했을 때 유리잔을 깨고 캔도 관통했는데, 사람이나 동물에게 쏘면 큰 부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였다.
또 총구에 '컬러파트'를 고정해 부착해야 하는데 이것이 없거나 쉽게 뗄 수 있었다.
  이런 총기는 소지만 해도 불법이고 공공장소에서 가지고 있으면 공공장소 흉기소지죄로 가중처벌될 수 있다.
이번에 적발된 모의총기는 대부분 대만이나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파악됐다.
모의총기는 범죄에 악용되거나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실제 A씨(47)는 2020년경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가스식 모의총기 1정과 쇠구슬(발사체) 여러 개를 구입한 후 B씨에게 겨누며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고, B씨의 차에 수차례 쇠구슬을 발사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제 총기도 쉽게 제작할 수 있다.
유튜브나 인터넷 등에 있는 관련 정보를 통해 총기 제작이 가능하다.
불법체류 외국인인 C씨(40대)는 2022년 4월 온라인 쇼핑몰에서 쇠파이프, 망원경, 쇠구슬, 에어컨용 압축기 등을 구매한 후 압축기에 쇠파이프 등을 연결해 쇠구슬을 발사할 수 있는 사제 총기를 만들었다.
그는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 전봇대에 앉아있는 새를 향해 쇠구슬을 발사했다가 주민의 신고로 붙잡혔다.
C씨는 "만들어 보관만 했을 뿐"이라고 했으나 경찰은 범죄 목적을 의심했다.
  D씨는 2005년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저격용 총의 제원을 뽑아 설계도면을 직접 만든 후 자신이 운영하던 공업사 기계를 이용해 총열과 기관부, 몸통, 소음기까지 완벽하게 재연한 저격용 총을 만들었다가 입건됐다.
경찰이 해당 사제 총의 성능을 실험한 결과 실제 총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2021년 5월에는 외국에서 총기 부품을 몰래 들여와 사제 총기를 만들어 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여기에는 현역 군인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미국 총기 사이트에서 구입한 총기 부품을 60여 차례에 걸쳐 국내에 몰래 들여왔다.
부품은 스프링, 플라스틱으로 세세하게 나눠 자동차 부품이나 장난감 등으로 위장해 세관의 감시를 피했다.
이후 인터넷 동영상을 참고해 총기 부품을 조립해 소총과 권총 등을 만들었다.
불법 수입한 화약과 모형탄으로 공포탄을 제조해 사격 연습을 했고, 옛 미군부대 사격장을 돌아다니며 금속탐지기 등으로 분실된 실탄 7발을 수집했다.
이들의 주거지와 사무실에서는 권총 5정, 소총 1정, 모의총기 26정, 실탄 등 불법 총기류 138점이 나왔다.
모두 총기 번호가 없는 '유령 총'(고스트 건)이었다.
  2016년 10월19일 서울 강북경찰서에서 공개한 오패산 터널 총격 사건의 범인 성병대가 만든 사제총 ⓒ연합뉴스 일련번호 없는 '유령 총' 등은 감시 사각지대 사제 총을 제작해 경찰관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2016년에 발생한 일명 '오패산 터널 총기난사 사건'이다.
범인 성병대(46)는 강간으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후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시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한 후에는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성씨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했다가 손해만 봤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자 강간 사건 때 자신을 수사했던 경찰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품으며 깊은 망상에 빠진다.
급기야 경찰관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2016년 5월 거주지 인근에서 회칼 4자루를 구입한 후 범행하기 쉽도록 개조했다.
그는 또 리볼버 권총 형태의 비비탄총을 구입해 살상용으로 개조했다.
총기 제조와 개조 방법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학습했다.
성씨는 평소 자신의 거주지를 알선한 부동산중개업자 이아무개씨(여·67)가 자신을 경멸한다고 생각해 앙심을 품고 있었는데 그를 먼저 죽이기로 한다.
성씨는 이씨를 살해한 후 오패산으로 도주하다가 그를 추적해 오는 경찰관까지 죽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2016년 10월19일 오후 6시20분쯤 성씨는 퇴근하는 이씨를 뒤따라가 사제 총을 꺼내 조준 발사했으나 총알이 빗나가 지나가는 행인의 복부를 관통해 부상을 입혔다.
당황한 성씨는 쇠망치를 꺼내 휘둘렀고 이씨가 쓰러지자 도주했다.
두개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은 이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성씨는 계획대로 강북구 오패산으로 도주했고, 강북경찰서 번동파출소 소속 경찰관 2명이 현장에 출동했다.
이들은 처음 폭력 사건으로 신고돼 방탄복을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성씨는 조수석에서 하차한 김창호 경위를 향해 사제 총을 발사했다.
김 경위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얼마 후 사망했다.
같이 출동한 경찰관 한 명은 재빨리 순찰차 뒤로 피하면서 무사했다.
이후 성씨는 경찰관들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제압됐다.
검거 당시 성씨는 헬멧을 쓰고 방탄복을 입고 있었으며, 그가 소지한 가방에서는 사제 총기 17정, 칼 7자루, 사제 폭탄 1개가 나왔다.
이 사건은 민간인이 제작한 사제 총기에 의해 경찰관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성씨는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사제 총기를 제작할 수 있다.
실제 총기나 모의총기를 구입하지 않고도 온라인을 통해 총기 제작 방법과 설계도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유튜브에는 총기 제작이나 폭탄 제조 과정을 담은 영상이 자세하게 나와 있을 정도다.
총기에 전혀 문외한이었던 성병대도 이런 방식으로 학습해 사제 총기를 다량 제작할 수 있었다.
  3D 프린터로 사제 총기 제작, 대책 시급 유사한 콘텐츠가 온라인에 넘쳐나면서 당국이 접속 차단, 삭제 등 시정조치를 취해도 계속해서 교묘한 방법으로 게시되는 실정이다.
모형 총기나 총기 부품의 유통경로도 다양해지면서 이를 원천적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근에는 3D 프린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설계도만 있으면 총기뿐 아니라 살상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입체적인 사물을 그림처럼 복사할 수 있는 3D 프린터는 플라스틱부터 금속까지 다양한 소재로 정교한 사물을 만들어낸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금속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무기나 무기 부품 제작이 어렵지 않다.
진짜 총기처럼 일련번호가 없는 '유령 총'이어서 정부의 감시망에서도 자유롭다.
2022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선거 유세 도중 총에 맞아 사망했는데, 이때 사용된 사제 총기도 3D 프린터로 급조한 것이다.
해외에서도 극우 정치단체, 테러단체 등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한 사제 총기가 테러에 사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영화 속 가상현실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현행법은 완제품 총기 규제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3D 프린팅 등을 활용한 총기 부품의 제작이나 유통 등에 대한 현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3D 프린팅 등 신기술을 이용한 불법 무기 제작이나 유통 등을 규제하고 차단하는 법 개정이 요구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D 프린팅 제작 총기 테러방지 3법'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이 법안은 3D 프린팅 등 신기술로 만들어진 총기류에 대한 테러 위험성을 조사·분석하는 사업을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허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D 프린팅 사제 총기가 제작·유통돼 테러에 이용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도 안전관리 대책에 추가했다.
대한민국이 '총기 청정국'이라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지금도 누군가 모형 총을 살상용으로 개조하거나 사제 총을 만들어 몰래 보관하고 있을 수 있다.
조직폭력배 등 범죄조직이 회칼 대신 사제 총기로 무장할 수도 있다.
단속을 피해 완성형이 아닌 부품을 분리한 채 눈속임을 하면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총기보다 은밀하게 제작되거나 유통되는 사제 총기 등에 대한 단속과 관리·감독, 이에 따른 후속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